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 같던 것들의 변화
우리나라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지 이제 곧 1년이 되어간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연속 속에서, 코로나와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함을 인지한 인간들의 사투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생활 곳곳에 침투한 이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기는 절대 깨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기존 회사의 틀마저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것도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지금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완전히 바뀌어버린 회사생활을 정리해보았다.
직장인들이라면, 미래의 근무 환경으로 가장 먼저 상상하는 것이 재택근무가 아닐까 싶다. 미국 실리콘벨리의 제법 큰 IT 회사에 다니면서, 아침에 내 집 주방에서 커피 한잔을 내리며 토스트를 들고 내 방으로 출근하여 인터넷으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화상회의를 하는 그런 그림 말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도 한국에서 말이다.
재택근무를 사전에서 검색하면 ‘집에 회사와 통신 회선으로 연결된 정보 통신 기기를 설치하여 놓고 집에서 회사의 업무를 보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재택은 ‘집’을 한정하고 있는데, 우리 회사는 재택을 원격근무(remote wokr)라고 범위를 좀 더 확대하였다. 꼭 집이 아니어도, 다른 공간에서 회사일을 하면 인정해준다는 이야기다. 누군가 미래를 예측했는지 모르겠지만 대략 1년 전 즈음에 클라우드 pc가 도입되어 있던 터라 이번 재택근무에 대한 큰 혼란은 없었다.
다만 여태 출근해서 일을 하는 디자이너들의 컴퓨터는 회사에 워크스테이션 형태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고사양 작업을 집에서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경우가 있었고, 이마저도 집에 컴퓨터가 너무 낡은 경우도 있어서 때아닌 컴퓨터와 외장 디스플레이 구매 욕구가 샘솟는 사람들도 꽤 많이 보았다. 회사일을 위해 장비들이 필요한 것인데 개인비용으로 사용하는지 회사에서도 이 비용을 보전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해보게 되었다.
어라 집에서 해도 일이 되네?
처음 원격근무를 하게 될 때의 마음가짐을 잊을 수 없다. 왜냐면 회사를 출근해서 일하지 않으면 과연 일이 될까?라는 의구심이 항상 있었는데, 정말 그 의구심이 1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주 6일 근무에서 주 5일 근무로 바뀌었을 때 일부 사람들이 나라 경제 망한다고 이야기했던 그때 상황이 떠올를 정도였다.
내가 오늘 재택근무 시에 해야 할 일들이 명확히 있다면, 재택근무도 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좋은걸 왜 도입이 안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봄)
출퇴근, 주차의 스트레스 해방
재택근무가 되면서 또 하나의 해방은 바로 출퇴근 전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난다는 점이다. 나는 서울 중심부에 살긴 하지만, 퇴근시간을 잘 못 맞춰 나와 교통지옥에 걸리면 집에 가는데 1시간 넘게 길 위에 보낼 경우가 많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세상 돌아가는 라디오 소식도 듣고 음악도 듣고 하지만, 재택을 하면 이런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릴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당연히 출퇴근이 없으니 자동차에 들어가는 유류비나 교통비가 매우 절약되었다.
회의용 화상 시스템이 도입된 지 한 20년은 넘었을 것인데 이 혁신적인 시스템이 활성화된 것은 아마 올해부터가 아니었을까... (이제야)
원래 회사에서 화상 미팅 시스템은 원거리에 있는.. 서울 부산 정도가 아니라 미국의 클라이언트나 연구소를 연결할 때 주로 사용하는 시스템이었고, 이 시스템을 컨트롤할 줄 아는 인력도 찾기 매우 힘들어서 회의실 중앙에 먼지만 쌓여가는 그런 계륵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화상시스템은 지금 없어선 안될 핫템이 되었다. 사업장간 이동, 대면이 모두 금지된 상태에서 일을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 것이다.
이런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대한 인식은, 비단 같은 회사 사람들 뿐 아니라, 외부 클라이언트들도 인지하여, 줌이냐, 웹엑스냐, 마이크로소프트 팀이냐 종류만 다 다를 뿐, 모두 화상회의 선택하고 있다.
화상회의를 통해서 디자인 시안도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클라이언트 미팅도 하고, 모든 걸 다 한다.
스케쥴을 잡고, 방을 개설하고 초대할 url을 보내고 하는 번거로울줄 알았던 과정을 그냥 내 머리와 몸이 다 소화해버린 것이다.
이런 화상 미팅 시스템은 기존 회의를 대체한 것뿐만 아니라 사내 강의나 심지어 신입사원 채용도 화상으로 대체했다. 올해 우리회사 디자이너 신입사원 채용 면접을 화상회의로 진행했다고 하며, 이렇게 선발된 인원들은 각자의 집에서 인턴 과제 수행 후, 입사가 결정되었고, 이렇게 선발된 신입 디자이너들에 대한 소개도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진행 했다.
*지난 10월말 진행한 사내 웨비나 후기 포스트
https://brunch.co.kr/@forchoon/427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과연 회사 회식을 강제로 참석하는 게 옳다. 아니다 라는 찬반 논쟁이 있을 정돌 회사 회식은 뜨거운 감자였다. 그런 논란이 코로나 때문에 자연스럽게 종식되어버린다. 현재 사내 방역지침으로 인해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면서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회식 자체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회사에는 복지예산이라는 것이 있다. 예산이라는 것은 연말까지는 다 털어야 하는 돈인데, 이렇게 갑자기 회식 금지령이 내리면 이 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생긴다.
그래서 요즘은 ‘랜선 회식’이라는 게 생겼다. 일정 시간에 웹엑스와 같은 미팅 시스템에 동시 접속하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각자 법인카드로 일정 금액을 긁고 회사 사람 대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실제로 지난주 우리 팀에서 랜선 회식을 했다. 오랜만에 팀원이 다 모이니 뭔가 마음이 짠한 생각이 들었다. 회사 비용으로 구매한 음식을 와이프와 함께 나눠먹으니 그 기분도 새로웠다.
좋든 싫든 한 해의 마무리는 꼭 추운 겨울 발가락 시림을 견디며 전 팀원이 모여 고기를 궈먹으면서 격려와 내년의 야심 찬 파이팅을 함께 헤야 한 해가 마무리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런 일상의 기쁨 조차 이제 한동안 가질 수 없게 되니 서글픈 생각도 든다.
재택근무로 인해 교통비보다 사실 더 많이 세이브되는 것은 매달 사원증으로 입금되는 식비 포인트다. 이 식비 포인트는 밥 먹을 때 사용하는 것 외에 사내에 있는 카페나 편의점을 통해 구매할 수 도 있었는데, 월 10만 원씩 들어오는데, 자연스레 회사를 안 가는 날이 점차 많아지다 보니 이 식비 포인트가 쌓이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사내 음식 공급업체 복지몰과 이 포인트가 연계되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코로나 상황이 계속된다면 재택근무일수에 따라 식비를 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 내에서 완전 대 선배님이신 센터장님께서 무려 37년의 디자이너 생활을 끝내고 퇴임을 하시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회사에서 가장 큰 대강당에서 센터 전 디자이너(600명)들이 모여 큰 박수와 함께 보내드렸을 텐데,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인해 행사 자체를 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인터넷 중계로 이 행사를 대체하며, 공유되는 url을 통해 집에서, 회사에서 중계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뭔가 짠하다. 그래도 오랫동안 근무하시면서 한번즈음 화려한 퇴임식을 상상해 보시진 않았을까... 롤링페이퍼를 작성하는데, 재택근무가 70%다 보니 작성할 후배들이 사무실에 없다. 작성해야할 공간들이 너무나 많이 남은 것을 보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1년도 안되는 시간, 코로나가 회사를 이렇게 바꿔놓을 줄이야...
이렇게 코로나로 인해 변화된 회사 생활을 정리하다 보니 이건 마치 과거에 언젠가 쓴 미래의 직장생활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 같다. 그런데 이런 일은 실제로 올해 나의 회사생활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아직도 이 상황이 와 닿지가 않는다.
여태 해오던 디자인 프로젝트는 확실히 화상회의와 같은 비대면의 상황보다 대면의 상황에서의 프레젠테이션이 진실되게 와 닿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코로나 상황이 지속된다면, 비대면으로도 진실과 감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계속해야겠다. 애플이 올해 개발자 콘퍼런스나 신제품 발표를 온라인 방식으로 바꾸며 세부적인 연출을 전통방식에서 영상기술이 가미된 프레젠테이션으로 바꾼 것을 참고해볼 만하다.
코로나 시대, 그리고 코로나가 끝난 시대 내가 바꾸지 않으면(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