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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의 시간 Feb 16. 2024

두 번째 손님, 수

윤이 찻집을 연지 일주일 째 되던 날이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지난 일주일간 종종 테이크아웃을 하는 손님들은 있었지만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고 가는 손님은 다섯 명이 채 되지 않았다. 한적한 일요일 오전 한 손님이 윤의 찻집을 찾았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두꺼운 검은색 패딩을 입은 손님은 자리도 잡기 전에 주문부터 하였다. 

"아메리카노 샷 추가해서 한잔 주세요." 

윤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커피는 없고 차만 판매하고 있어요. 여기에서 메뉴를 확인하실 수 있으세요."

그러자 그 손님은 메뉴판을 훑어보더니 곧 다시 주문을 했다. 

"아… 그러면 녹차 주시겠어요?"

"네. 자리에 계시면 가져다 드릴게요."

"네, 고맙습니다."

그 손님은 주문을 끝내고 자리로 가 멍하니 앉아 식물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말하였다.  

"식물이 참 많네요."

"네, 제가 식물들을 좋아해서 이렇게 실내정원을 만들어봤어요."

"그렇군요."


손님의 이름은 수였다. 수는 식물들을 바라보다 문득 어제 병원에서 의사가 한 말을 떠올렸다. 

'우울증입니다. 그리고 불안도도 높고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 지표도 높은 편입니다. 앞으로 적어도 세 달간은 치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수는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의 증상을 병으로 진단을 받았으니 이제는 치료를 받으면서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수는 요새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10층에 살던 수는 베란다에서 밖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었다

'떨어지면 아플까.. 한 번에 죽을까...'

그런데 이제 병원에 갔고 병원에서 병으로 진단을 해주었으니 오히려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수는 IT회사에서 세일즈 업무를 하는 7년 차 회사원이다. 수의 평일 하루는 이러했다. 평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8시에 집을 나선다. 그리고 9시에 도착하여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낸다. 대개 저녁 8시나 9시경에 녹초가 되어 집에 오는데 수의 남편 역시 녹초가 되어 집에 오기 때문에 두 사람은 배달앱으로 음식을 시켜 먹거나 각자 회사 근처에서 밥을 먹고 집에 온다. 그리고는 씻고 청소하고 잘 준비를 하면 어느새 밤 10시나 11시가 된다. 그러면 수는 침대에 누워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수는 자주 이런 자신의 삶이 너무 단조롭고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쳇바퀴 같은 생활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해야 하는지 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의 깊은 내면에서는 답을 하곤 했다. 경제적으로 자유를 얻을 때까지는 이 생활을 해야 하고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는 답... 어쩌면 수의 인생에 경제적 자유는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수는 엄마를 부양할 수 있는 정도의 돈과 서울에 집 한 채를 갖고 싶었다. 신혼 초에 수는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갖는 것이 엄청난 욕심인 줄 몰랐다. 두 사람이 꾸준히 경제활동을 하면 자연스레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근 몇 년 새 급등한 아파트 가격을 보며 아파트 한 채를 갖는 것이 엄청난 욕심이 되어버린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와 수의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회사를 묵묵히 다니면서 돈을 열심히 모으는 것이었다. 수는 때때로 퇴사를 하고 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자산관리앱에 들어가 자산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확인했고 얼마나 더 모아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렇게 수는 자신을 부여잡으며 직장생활을 해왔다. 지난 7년여의 세월 동안 거의 대부분은 이렇게 꾸역꾸역 버텼다. 하지만 수는 몸이 피곤했을 뿐 죽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수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다섯 달 전부터였다. 수의 회사는 실적 악화로 조직개편을 했고 상당한 수의 사람을 정리해고하였다. 수는 30대라 정리해고가 되지는 않았지만 줄어든 인력에 이전보다 더 많은 고객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수는 일주일에 대략 10여 개의 고객사를 대면했고 50여 곳 이상의 고객사들과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비대면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업무량이 거의 2배가 되었고 수는 퇴근 시간이 점점 늦어져 어떤 날은 10시에 퇴근하고 또 어떤 날은 12시가 다 되어 퇴근을 했다. 주말에도 이틀 중 하루는 출근을 했다. 게다가 종종 갑질하기 좋아하는 고객들을 만나면 수는 그 하루가 너무 괴로웠다. 그들은 수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들을 수에게 요구하기도 하였고 요구사항을 자주 바꾸기도 하였다. 수는 그런 사람들을 대면할 때면 미안하지도 않은데 죄송하다고 했고 고맙지도 않은데 감사하다고 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수는 특정 사람을 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냥 사람이라는 존재가 싫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세 달 전부터 수의 삶에 세 가지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점심시간이 되면 수는 재빠르게 자리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가서 홀로 점심을 먹었다는 것이다. 수는 점심시간만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보호받고 싶었다. 또 다른 하나는 전화가 오면 심호흡을 크게 하고 '괜찮아'라고 혼자 위로의 말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마지막 변화는 주말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본래 수는 주말이 유일한 자유시간이라는 생각에 바쁘게 시간을 보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외부 강연에 참여하는 등 활발하게 주말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런데 이제 수는 주말에 집 밖을 잘 나가지 않았다. '어차피 월요일이 되면 수많은 인간들이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날 테니까.'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버티고 버티면서 회사생활을 하던 수는 남편의 권유로 정신과를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녹차 나왔습니다. 옆에 있는 쿠키는 제가 만든 초콜릿 쿠키인데요. 같이 드시면 더 맛있으실 거예요.”

윤이 수에게 차를 내어주며 말했다.

“네...”

수는 윤이 건네준 녹차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얼마 만에 마시는 차이지?...’

수는 차를 마시는 게 낯설었다. 수는 매일 커피를 마셨는데 적을 때는 두 잔, 많을 때는 여섯 잔 정도를 마셨다. 특히나 요즘에는 회사에 가는 것 자체가 두려웠기 때문에 매일 아침 브랜드 커피집에서 수가 좋아하는 라테를 사서 출근했다. 그럴 때마다 수는 라테가 자기를 지켜주는 친구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라테에 들어있는 우유는 아침을 먹지 않는 수에게 나름의 포만감을 주었고 카페인은 잠에서 좀처럼 깨기 어려웠던 수를 정신 차리게 해 주었다. 출근 후에도 수는 지치지 않고 일하기 위해 수시로 커피를 마셨다. 그때에는 주로 라테 대신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대개는 샷을 하나 추가해서 말이다.

이렇듯 커피에 익숙했던 수는 차를 마시는 자신이 어색했다. 녹차를 한 모금 마시니 무언가 개운한 느낌이 들었고 동시에 차분해졌다. 수는 스마트폰을 꺼내 지난주 일요일 저녁에 적은 메모를 읽어보았다. 메모장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죽고 싶은 밤이다. 죽고 싶다. 왜 사는 걸까.... 내일 또 한 주가 시작되고 나는 출근을 할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 일이 너무 많고 고객들은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그만두면 돈은 누가 버나... 쳇바퀴 같은 인생... 기대되는 게 하나도 없다. 죽고 싶다.’

수는 자신이 써놓은 메모를 자꾸만 다시 읽었다.

‘나 진짜 애쓰고 살고 있구나. 내가 봐도 나 정말 불쌍한 것 같아.’

수는 녹차 옆에 놓인 쿠키를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하고 촉촉한 초코의 맛이 수를 위로해 주는 듯하였다.

‘이렇게 카페에 와서 가만히 앉아있는 게 얼마만인지... ’

수는 대개 주말에는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만 일어나 집을 조금 돌아다닐 뿐, 대개는 누워서 잠을 자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봤다. 하지만 어제 정신과 의사가 수에게 운동이나 산책을 할 것을 권했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책을 하러 나왔다. 수는 집 앞 공원에 가서 30여분을 걸었다. 멀리 보이는 산과 공원에 가득한 소나무들이 수를 위로하는 듯하였다. 걷다가 어딘가 앉고 싶어 두리번거리던 수는 우연히 한 찻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화이트톤이면서 테이블과 의자는 나무로 디자인한 따뜻한 느낌의 찻집이었다. 

‘여기서 잠깐 쉬어가야겠어.’ 

찻집에 들어서자 다른 세계로 들어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의 세계는 바쁨과 경쟁과 돈의 세계였던 반면 이 찻집은 느렸고 고요했고 평온했다. 

수는 이 찻집이 주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수는 이 찻집 유리문에 쓰인 1인 손님만 받는다는 문구를 보았을 때 안도감을 느꼈다. 평일 점심에 수는 사람들을 피해 버스를 타고 가 혼자 점심을 먹을 만큼 사람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1인 손님만 오라 하니 수는 안도감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인간 알레르기에 걸린 것 같아.’

수는 혼자 중얼거렸다. 한 시간여를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창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고 우두커니 서있는 소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히 가세요. 평안한 밤 보내세요.” 

찻집 주인이 수에게 말했다. 수는 눈빛으로 인사를 한 후 집을 향했다.

‘아 드디어 월요일이 오는구나. 두렵다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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