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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의 시간 Jan 12. 2024

변두리 찻집, 그리고 윤

“저 찻집 가봤어?"

"아니, 근데 저 가게 낮에 세 시간이나 쉬더라고. 그리고 혼자 온 손님만 받는다나 뭐라나. 젊은 사람이 돈 벌 생각이 없나 봐."

"그러게, 정말 특이한 가게야. 아니면 그 젊은 여자가 건물주일 수도 있지"

"아니야, 건물주는 아니라던데? 그래도 돈이 많으니 저렇게 사는 거겠지? 돈 많은 게 아닌데 저렇게 사는 거면 나중에 후회할 텐데.. 젊을 때 바짝 벌어야 나중에 편하게 살지 않겠어?"

"그러게. 저러다 몇 달 못 가서 문을 닫겠지 뭐."

"응 아니면 돈 잘 버는 남편이 있어서 취미로 하는 걸 수도 있지."

동네 사람들은 찻집을 지나가면서 수군거렸다.


서울 변두리 E동에 '마이 리틀 티타임'이라는 찻집이 있었다. E동은 산자락 밑에 자리하고 있었고 서울 전역을 여기저기 누비는 버스들의 종착지이기도 하였다. 다행히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공원이 하나 있어 E동 사람들은 그곳에서 운동을 하고 쉼을 얻곤 했다. 공원의 서쪽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3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찻집은 그 건물 1층에 있었다. 원래 건물 1 층에는 부동산중개소와 김밥집이, 2층에는 작은 교회와 태권도장이, 3층에는 보습학원이 있었다. 다들 10년은 넘게 그 자리에서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1년 전 김밥집이 문을 닫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김밥집 아주머니가 암에 걸려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 후 몇 달간 비워져 있던 김밥집 자리에 어느 날부터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더니 찻집이 들어왔다. 찻집의 이름은 '마이 리틀 티타임'이었다. 건물은 꽤나 낡았지만 찻집은 리모델링을 새로 한 듯 말끔했다. 10평 남짓의 공간에 테이블 5개, 그리고 의자가 테이블마다 1개씩 있었다. 또한 다섯 개의 의자들은 실내 정원을 향하거나 창가를 향하고 있었다. 음악은 대개 클래식이었고 한쪽면은 식물들로 실내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실내정원 반대편에는 책장이 있었는데 주로 소설과 그림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찻집은 오전 8시에 문을 열었고 오후 2시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오후 5시에 다시 문을 열어 저녁 8시 무렵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월요일, 화요일에는 문을 닫았다.


이 찻집이 다른 찻집과 유난히 달랐던 점은 1인 손님만 받는 것이었다. 동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게에서 차를 마실 수가 없었다. 손님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왜 손님을 가려 받느냐며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동행자와 따로 앉으면 차를 마실 수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조용히 찻집에 들어와 한두 시간 머무르다 갔다. 그들은 차를 즐겼고 책을 읽기도 했고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다가 가곤 했다. 그렇다고 손님이 많은 건 아니었다.


찻집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윤이었다.

윤은 체구는 작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윤의 어머니는 경기도 어느 변두리 마을에서 30년째 미용실을 운영해오고 있었다. 윤은 어렸을 적부터 일하던 엄마의 모습이 익숙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집 대신 곧장 미용실에 갔었고 거기서 놀다가 학원을 다녀오곤 했다. 윤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용실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미용실에 오는 손님들에게 매주 금요일마다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윤이 대학에 입학할 무렵부터 20여 년을 지속한 일이라는 점에서 윤의 어머니는 꾸준한 사람이었다.


이렇듯 윤은 나눠주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를 보는 것이 익숙했다. 어느 날 윤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손님들한테 점심 만들어주는 거 힘들지 않아?"

"힘들지. 근데 그것보다는 기쁨이 더 커."

"그렇구나. 그래도 나눔을 20년 지속한다는 건 쉽지 않은데 말이야."

"누군가에게는 삶이 고통일 수 있잖아. 나도 너희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 사는 게 막막했거든.... 먹고살려고 미용실을 열었는데 장사를 해 본 것도 아니라 실수 투성이었지. 그런데 그 시기에 슈퍼집 가연이 엄마랑 세탁소집 찬이 엄마가 우리 가게에 반찬도 가져다주고 과일도 가져다주고 했었거든. 그때 그 엄마들이 나눠주었던 음식들이 힘이 되었던 것 같아. 윤이 네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에 나도 좀 여유가 생기니까 우리 가게 오는 손님들한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더라고. 손님들 덕에 우리가 아빠 없이도 이렇게 세월을 잘 견뎌왔잖아. 보답하고 싶기도 했고 또 그 한 끼가 손님들한테는 살아갈 힘이 될 수도 있으니까. “

엄마는 덤덤하게 말하였다.


윤의 아빠는 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가세가 기울었고 엄마는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엄마는 결혼하기 전에 잠깐 배워둔  미용기술을 다시 살려 미용실을 열었다. 여유자금이 많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보험금이 있어서 미용실을 열 수 있었다. 엄마는 손님들이 원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해주었고 가격은 저렴한 편이었기에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손님들은 처음에는 머리를 하러 엄마의 미용실에 갔지만 점차 마음을 위로받으러 미용실에 갔다. 엄마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었고 먼저 나서서 조언을 하지도 않았으며 말을 다른 손님들에게 옮기지도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손님들은 엄마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그 덕분에 윤과 엄마는 부자는 아니지만 어렵지는 않게 살 수 있었다. 윤은 열심히 일하는 엄마 덕분에 피아노, 태권도, 글쓰기 등 배우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배우면서 자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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