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윤의 엄마는 영국에서 온 선교사 손님이 주었다며 사각형의 작은 티테이블을 집에 가지고 왔다. 그 손님은 엄마의 미용실 근처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백인 여성으로 그녀의 이름은 제인이었다. 제인은 머리를 하러 엄마의 가게에 올 때면 종종 홍차 티백을 가지고 왔다. 그녀는 홍차를 마시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며 엄마에게 홍차를 권하곤 했다. 처음에 엄마는 홍차를 마시면 느껴지는 쓴 맛에 영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여느 때처럼 믹스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그러다 비가 오던 10월의 어느 날 믹스커피가 없어 홍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엄마는 그때 홍차의 맛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 때문에 다소 쳐지고 우울했던 마음을 쓰디쓴 홍차가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윤의 엄마는 홍차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제인이 미용실에 올 때면 홍차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3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제인이 고향인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제인은 자신이 사용하던 티테이블을 윤의 엄마에게 선물로 주었다. 동그란 원형 모양의 짙은 브라운색의 티테이블이었다. 엄마는 티테이블을 거실 창가 쪽에 두었고 두 개의 의자가 바깥을 향하도록 배치를 하였다. 일과 가정을 남편 없이 오롯이 혼자 감당하는 삶이 버거웠지만 엄마는 차를 마시는 시간들 덕분에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일상을 건강하게 꾸려나갈 수 있었다.
엄마의 홍차 사랑에 영향을 받은 윤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야자를 한다며 캔커피를 마실 때에도 혼자서 홍차를 보온병에 싸와 마실 만큼 차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윤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녔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사실 경영학 자체가 엄청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취직하기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한 전공이었다. 윤은 중학교 때 IMF를 겪었는데 윤은 당시 엄마의 미용실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어렵지는 않게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윤의 친구들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윤과 가장 친했던 지은이는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급하게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도피성으로 간 이민이라 지은이는 이민을 떠난다고 말한 그다음 날 바로 가족들과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학원 친구였던 미주는 중소기업에 다니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해고되는 바람에 가족 전체가 아버지 고향인 경상도 어느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그렇게 IMF는 어린 윤에게 친구들과 갑작스럽게 헤어지는 아픈 경험을 주었고 윤으로 하여금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대학에 가서도 윤은 고등학교 때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결국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취직했다. 다행히 회사는 윤의 집과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고, 윤은 집에서 통근하며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윤의 또래 친구들처럼 어느 정도 돈을 모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맞벌이를 하며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러한 윤의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입사를 하고 한 달 남짓이 되자 윤은 본인이 그렸던 삶과 실제의 삶이 꽤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은 기업에서 제조하는 제품을 미국 시장에 판매하는 해외영업 부서에서 일을 했는데 그 일은 윤에게 전혀 흥미를 주지 못했다. 제품은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제품이었는데 윤은 제품에 흥미를 가지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재고관리를 위해 매일 봐야 하는 엑셀 시트에 눈과 머리가 아프곤 했다. 윤이 담당한 제품은 회사의 주력 상품은 아니었지만 10년째 꾸준하게 판매되는 효자 상품이었다. 그래서 윤의 주된 역할은 재고가 없어 판매를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고관리를 하고 매출관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품은 꽤나 자주 재고가 없었고 윤은 생산지인 중국 공장과 판매지인 미국 법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정신없이 일을 하곤 했다. 어떤 날은 중국 공장에 문제가 생겨 급하게 출장을 가서 일을 수습하기도 했다.
윤은 이 일을 하면서 종종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윤은 직장에서 열정이나 애착을 느끼기 어려웠다. 윤은 당뇨병에 관심이 없었고 의료기기에도 관심이 없었고 미국 시장에도 관심이 없었다. 물론 그 직장에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이름'이 있었고 매달 들어오는 '돈'이 있었다. 실제로 윤은 취업을 준비하면서 운 좋게 세 군데에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었다. 윤은 그 세 개 회사 중 가장 매출액이 높고 연봉이 가장 높은 회사를 선택했다. 윤의 엄마 역시 내세울 것 하나 없던 집안에 본인의 딸이 최초 대기업 입사자가 된 것에 자부심을 가졌던 터라, 윤은 자신의 선택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윤은 실제로 입사를 하고 일을 하면서, 그러니까 7일 중 무려 5일을 일이라는 것에 시간을 쓰게 되면서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점점 깨닫게 되었다. 일말에 흥미조차 느끼지 못하는 일을 하면서 회사가 주는 '이름'과 '돈'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기르고 그렇게 짧게는 20년 길게는 30여 년을 일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왔다. 게다가 수직적인 기업의 문화 역시 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윤의 팀은 5명의 팀원과 1명의 관리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윤을 포함한 팀원들은 관리자였던 부장보다 빨리 출근해야 했고 그가 밥을 먹자고 해야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퇴근 역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계약서에는 9시에 출근하고 18시에 퇴근한다고 적혀있었으나 윤은 부장이 집에 가지 않는 이상 퇴근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날은 갑자기 회식이 생겨 밤 12시에 집에 가기도 했다. 윤은 그러한 문화가 불편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회사를 그만두자니 그 선택 역시 쉽지는 않았다. 마음이 답답하고 문화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만두어버리면 그다음은? 윤은 그다음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윤에게는 돈이 필요했고 그만큼의 돈을 줄 수 있는 곳은 회사뿐이었다.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던 윤은 답답한 마음을 누른 채로 회사를 계속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