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난 인생 뮤지컬.ᐟ
효율주의 인간의 깨달음
보통 사람들은 본인과 반대되는 사람을 신기해한다. 나 역시 그렇다. 내게 신기한 사람들은 봤던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보거나 같은 음식을 며칠이고 먹는 사람들, 한번 들었던 이야기에도 몇 번이고 반응해 주는 사람들이다. 같은 이야기를 두 번씩 하는 친구가 있으면 꼭 참지 못하고 중간에 ‘그 이야기 들었는데’하며 말을 끊는 사람, 그게 나다.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것도 오늘 먹은 음식을 내일 또 먹는 것도 싫어하는 나로서는 경험한 걸 반복하는 사람들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고 색다른 즐길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같은 걸 반복하는 건 너무 지겹지 않나? 지도 어플에 저장된 예쁜 카페 501개와 인스타그램과 각종 뉴스레터로부터 정보를 얻은 밥집 723개가 나를 기다리는데! 세상에 있는 모든 핫플레이스를 가려면 사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에 n차 관람 같은 행위는 어쩐지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키키를 만나기 전에는.
키키는 한 달 동안 다섯 번 본 뮤지컬로, 풀네임은 <키키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이다. 한 뉴스레터에서 새로 오픈하는 뮤지컬로 키키를 소개해 줬고 그때 마침 운명처럼, 연락하던 사람이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기에 바로 예매를 했다. 그렇다고 뮤지컬을 선택하게 만들어 준 사람과 운명이었던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은 단지 내가 키키를 볼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다리 같은 거였달까. 뮤지컬은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키키라는 인물이 병을 알아차리고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정신 질환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비하여 흥미진진한 노래들과 힙합이 주 넘버였고 관객과의 참여를 유도하는 신나는 분위기였다. 처음 그 뮤지컬을 본 날, 공연장에서 나와서 청계천을 걸으며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머릿속엔 온통 키키를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극에서 말하는 메시지를 한 번 더 곱씹고 싶었고 각 배우들이 어떤 감정으로 노래하고 대사를 뱉었는지 표정을 살피고 싶었다. 그래서 그 뮤지컬을 보고 나온 이후부터 공연 끝나는 날까지 계획되어 있던 모든 약속을 키키 보는 것으로 바꿨다. 친구들에게 재관람 할인 쿠폰을 주고, 심지어는 예매를 해 주면서까지. 마지막 공연은 배우의 연기를 페어별로 보면서 키키를 음미했다.
그때 알았다. 사랑엔 효율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는걸. 어떤 내용인지 뻔히 알면서도 계속 보고 싶었다. 어떤 장면에 사람들 웃는지, 어떤 대사를 하며 배우들이 눈물을 흘리는지, 또 어떤 넘버에 사람들이 환호하는지 느끼고 싶었다. 모든 넘버와 장면들이 머리에 재생이 되는데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뮤지컬의 실시간, 그 특수성 때문에 더 애틋했겠지만 공연을 보고 있으면서도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공연의 한 챕터, 한 챕터가 지날 때마다 속으로 남은 넘버를 세며 아쉬움을 삼켰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좋아하는 친구들은 매일 만나도 안 질리고, 좋아하는 음악은 반복재생해도 신나기만 했다. 좋아하는 시는 달달 외우고 다닐 정도로 하나를 죽어라 팠던 적도 있었다. 언제부터 좋아하는 걸 반복하는 사람들을 그저 비효율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것을 쫓아다니는 일도 신나고 흥미롭지만 좋아하는 걸 진득히 즐기는 일도 꽤 멋진 일이라는 걸, 그 속에서 발견하는 새로움이 가슴을 뛰게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앞으로 같은 걸 반복하는 사람을 만나면 잔뜩 신기해하며 그의 취향을 실컷 존중해 줘야지. 키키처럼 불현듯 찾아오는 사랑 한 줌을 열심히 음미하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