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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미 Apr 29. 2024

아빠가 아파, 암 이래

내 전화라면 덥석 받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느낌이 쎄했다. 어디가 아픈가? 아니면 무슨 일이 있나. 막내 이모에게 전화도 왔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우리 집에 오고 있다는 엄마. 평일에 찾아와서는 직장도 그만두었다고 한다. "너한테 할 얘기 있어서 왔어" 역시 내 촉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많이 아파. 암 이래"


다음 달 아빠의 소원이었던 장가계 여행을 예약해 두고 손꼽아 기다리던 우리 가족이 한 순간에 암 환자 가족이 되었다. 어쩐지, 늘 술을 좋아하고 고기를 좋아하던 아빠가 다이어트를 심하게 하는 것 같아 이상했다. 금주를 했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음주를 즐기던 아빠가 오랫동안 술잔을 기울이지 않아서 낯설었다. 운동을 하고, 다이어트를 해도 항상 몸무게는 그대로이던 아빠가 처음으로 핼쑥해졌었다. 내 모든 촉이 맞았다.


하지만 암 이라니, 그것도 간암 말기. 병원에서도 손 쓸 수 있는 것이 없어 항암 주사만 맞을 수밖에 없고, 시한부 1년을 선고했다. 몇 십 년을 늘 술과 함께 살아왔던 아빠가 아프지 않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술 마셔서 그렇지? 안 아픈 게 이상하지!' 학교 갔다 오면 늘 술에 취해 쓰러져 자고 있는 아빠가 있었고, 엄마는 늘 술 취한 아빠를 원망하고 가슴을 치던 지난 세월을 떠올렸다. '그놈의 술...' 평생을 술과 함께 하고, 엄마를 외롭게 하고 힘들게 아빠였다. '술'이라고 하면 치를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인생이었다. '결국 이렇게 됐네.' 1년 아빠가 떠나면 홀로 남을 엄마가 걱정됐다.


엄마를 집에 보내고 나서야 눈물이 나왔다. 누구보다도 가장 마음 아파할 엄마 앞에서는 내 무의식도 눈물을 참고 있었나보다. 아빠는 무엇이 그렇게 힘들어서, 그렇게 술에 의존했고 스트레스를 받았고 건강도 챙기지 못했을까. 우리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빠가 짊어온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길래 이렇게까지 아프게되었을까. 헤아리다보니 하루하루 죽음만 바라보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책도 사고, 유튜브, 블로그, 카페 찾아가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너무 감사하게도 희망을 찾았다. 자연 치유! 암은 죽는 병이 아니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산소 부족으로 죽는 거라고 한다. 나는 자연 치유를 믿기로했다. 걸을 힘만 있으면 암도 이겨낼 수 있다라는 말, 맨발로 걸어서 암도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믿기로 했다. 암 세포는 정상 세포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믿고 나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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