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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May 22. 2023

나무 신체검사

나무의 키, 몸무게 자랑 

가장 부피가 큰, 가장 키가 큰, 가장 빠른, 가장 힘이 센 이러한 종류의 질문은 늘 저의 흥미를 끌곤 합니다. 그래서 토막 상식을 말씀드리면, 교과서에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침엽수는 레드우드 (115.92m, coast redwood; Sequoia sempervirens)라고 나오고 가장 키가 큰 침엽수는 말레이시아에 사는 라왕 (98.53m, yellow meranti; Shorea faguetiana)이라고 합니다 (주: 옛날 교과서에는 호주에 사는 유칼립투스(96m)가 가장 키가 큰 나무라고 나왔었습니다). 또한  캘리포니아에 사는 자이언트 세쿼이어(S. giganteum)가 가장 부피가 큰 나무(1,320 입방미터)로 알려져 있죠. 이 나무를 모두 목재로 만들면, 4인 가족용 나무 주택을 50채가량 지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너무 단순한 주제이고 재미 삼아,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을만한 지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공부를 하니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의 키를 재는 문제도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사람의 키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재듯 나무도 뿌리 끝에서 나무의 제일 높은 곳까지를 키로 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죠. 그렇다면 어떤 뿌리로부터 잴 것인지, 그 뿌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뿌리의 길이는 총합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가장 긴 뿌리의 길이가 맞는지 등등 사소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 더 많아졌죠. 물론 이런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 땅 위의 키를 말하는 ‘지상고’라는 용어를 쓰는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나무의 부피는 더욱더 복잡한 문제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나무가 식물 중에는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포세이돈의 리본 잡초(Poseidon’s ribbon weed (Posidonia australis))라고 불리는 식물은 181평방 킬로미터의 넓이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국제 규격상 축구장의 최대 크기가 0.00825 평방 킬로미터이니, 축구장 2만 2천 개의 넓이와 같은 크기가 되겠습니다. 식물의 범위로 보자면 자이언트 세퀘이어보다 포세이돈의 리본 잡초가 가장 부피가 큰 식물로 보는 게 맞았습니다. 그런데 식물이 아닌 목본식물(주: 목재로 쓸 수 있는 목부를 가지고 있는 식물)로 범위로 줄인다고 해도 “한 나무”라는 것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source: https://www.atlasobscura.com/places/pando-the-trembling-giant#:~:text=The%20Trembling%20Giant%2C%20or%20Pando,share%20a%20single%20root%20system.

나뭇잎이 노란색으로 예쁘게 물든 유타주의 사시나무 숲입니다)


미국의 유타주에서 사시나무(quaking aspen) 숲에 대한 대규모 연구가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나무들의 유전자를 채취하여 그 다양성을 알아내는 연구였죠. 그 연구의 결과는 매우 놀라웠습니다. Trembling Giant 혹은 Pando라고 불리는 이 숲의 각 수풀(grove)은 약 47,000그루의 나무가 같은 뿌리를 공유하는 같은 나무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 뿌리에서 47,000 개의 줄기가 올라온 겁니다. 앞으로 산에 올라가셔서 봄에 사시나무의 잎이 나거나 가을에 단풍이 지는 모습을 한번 잘 관찰해 보세요. 그러면 한 움큼의 나무들(?)이 같이 잎을 틔우고 같이 단풍이 지는 모습을 관찰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아 저 나무들(?)은 사실 줄기만 여러 개이지 다 같은 나무였구나 하고 나무 다둥이들의 진실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실제는 한 몸인 이 47,000 개의(?)의 나무줄기들은 한 그루인 것일까요? 아니면 47,000그루인 것일까요? 이 나무의 부피를 계산하려면 혹은 나무뿌리의 길이를 재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재야 하는 것일까요? 너무 바보 같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저도 아직 정답을 찾지 못한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가끔 아이들이나 집사람의 질문은 받으면 난감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지식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 질문의 조건을 물어보다 핀잔을 듣기 일쑤입니다. 근데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질문의 답이 조건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또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답니다. 저도 조건을 물어보지 않고 답을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을 이해하는 그런 날이 빨리 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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