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 지은 빛의 신전 마지막 이야기
<클로드 모네
-수련 연못(1915~26)/수련-풀의 숲(1914~17)/수련(1914~17)/수련 연못(1917~19)/수련 연못(1916~19)>
애당초 지추미술관은 모네의 수련을 띄워놓기 위한 장소로 구상되었다고 한다.
후쿠타케 소이치로는 보스턴미술관에서 <수련>을 마주쳤을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이 그림 앞에 섰을 때 이상하게도 그림이 나를 부르며 자신을 곁에 둬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예술의 섬 나오시마』 후쿠타케 소이치로, 안도 타다오 외. 박누리 역. 2013년)
그림은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겠지만 어쨌거나 그림을 손에 넣은 후쿠타케 소이치로는 안도 타다오에게 이를 위한 미술관을 지어 달라 의뢰하고 모네, 터렐, 드 마리아, 타다오의 ‘빛’이 각자, 또 함께 존재하는 공간으로 지추미술관이 탄생한다.
모네의 공간에 들어가기 전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아둔 후,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한다. 신고 벗을 때마다 끈을 묶고 풀어야 하는 롱부츠를 신은 여행객이 있었다. 정작 당사자는 차분히 끈을 조이고 있었는데 내가 괜히 안타까웠다. 터렐 작품 앞, 이우환미술관, 혼무라 지역의 이에 프로젝트, 테시마미술관 등 신발을 신고 벗어야 하는 곳곳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다. 기억하자. 나오시마 여행을 위한 필수 준비물은 신고 벗기 편한 신발이다.
벽에 걸린 유화를 감상하기 위해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다섯 점의 수련 그림이 걸린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납득이 된다. 본당으로 가려면 여러 관문을 으레 거쳐야 하듯 이곳에서도 모네의 수련을 만나기 전,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공간을 통과한다.
어둑함과 대비되어 새하얀 공간이 더욱 눈부시다. 인공조명 없이 자연광을 끌어들여 공간을 빛낸다고 하던데, 흐리거나 비가 쏟아지는 날은 어떠할지 궁금하다. 벽면만 순백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바닥마저 새하얗다. 직경 2cm의 작고 매끄러운 새하얀 대리석들이 바닥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신발을 벗게 한 거구나 납득한다.
아니, 바닥을 이루는 조약돌들이 검은색이었어도 신발을 벗어야 했을 것이다. 지추미술관 방문 전에 모네의 그림을 경건함이나 숭고함 등의 어휘와 연결해 생각해 본 일이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수련 사이를 거닐게 된다.
출입구가 벽을 분할하여 총 다섯 면의 벽에 수련 그림이 한 점씩 자리하고 있다.
모네의 수련이 가장 인상적인 미술관은 아무래도 오랑주리나 마르몽탕일 것이고 모네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는 공간은 지베르니일 것이다. 제임스 터렐의 팬이라면 지추미술관보다는 뮤지엄산이 더 기억에 남으리라. 월터 드 마리아는 지추미술관 덕분에 이름을 인지하게 된 예술가라 다른 작품이나 장소와 비교할 수 없지만 그의 팬들은 미국 뉴멕시코나 뉴욕으로 떠나는 긴 여정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 지추미술관은 모네나 터렐, 드 마리아를 각각 생각했을 때 가장 첫 번째로 떠오르는 대표 미술관은 아닐 테지만 이 셋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세상 유일무이한 미술관이다.
‘안 본 눈’을 사고파는 세상이 아직은 도래하지 않았으므로 무의미한 의문이지만, 궁금하다. 아무 정보 없이 지추미술관을 방문했다면, 이 미술관이 땅 속에 묻힌 미술관이라는 것을 알아챘을까? 각 층에서 이어지는 삼각형 안뜰에서 볼 수 있는 쾌청한 하늘과, 바다와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미술관 카페 때문에 상상도 못 했을 듯하다.
여행 계획에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은 동행인이 있다면, 아무 정보도 알려주지 않고 미술관에 데려가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에 넌지시 비밀을 속삭여보자. 우리가 있는 이 공간이 땅 속인 걸 눈치챘느냐고. 인공조명이 아닌 자연광만으로 밝혀진 곳인 걸 알았냐고. 지나온 길을 다시금 천천히 되돌아가게 되겠지. 지상과 지하의 경계를 더듬으며 천천히 미술관을 나오며 자꾸만 뒤돌아 보고야 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