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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Apr 02. 2022

밤에 서울로 돌아온다는 건

서울의 야경이 선명해진다는 것


일정이 있어서 지방에 갔다가 저녁 시간에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 고속도로의 느낌을 좋아한다. 조금만 지나면 익숙한 동네와 포근한 잠자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안도 외에도, 서울이라는 장소로 오늘이 가기 전에 다시 왔다는 사실이 나에게 알게 모를 뭉클함을 안겨준다. 


평소엔 핸들 아래쪽을 잡고 운전을 하지만, 그럴 때는 한껏 멋을 부려서 핸들 위쪽을 잡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 채 자뻑에 빠져본다. 동승자가 있으면 미친X 소리를 들으면 되고, 없으면 혼자 미치면 된다. 이래나 저래나 안전운전인건 똑같으니깐. 허윤희 누나의 선곡에 따라 기분이 싱숭생숭 해지는 밤.



밤에 서울로 돌아오는 게 왜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이상하다. 지방에서 며칠 자고, 낮시간에 서울로 돌아오는 건 그 느낌이 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밤에 운전을 할 때도 그런 느낌은 없다. 오직, 밤에 서울 톨게이트나 한강 다리를 건너올 때만 그렇다. 반포대교인지, 영동대교인지 모르겠지만 색색의 오렌지 빛깔을 맞이할 때면 더욱더.


직접 운전을 하지 않고, 기차나 버스로 돌아와도 마찬가지의 느낌을 받는다. 저 멀리 강변역 테크노마트가 보이는 올림픽대교, 63빌딩이 보이는 한강철교를 건너와도 같은 마음인 것. 가방을 뒤에 메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천천히 플랫폼에 내린다. 발바닥이 닿는 땅의 느낌이, 짙은 공기의 냄새가 좋다. 아무래도 나는 변태임이 확실하다.



태생적으로 서울 사람은 아니라서, 유년기를 지방에서 오래 보냈지만, 서울이 아닌 다른 모든 지역에서 한번도 그런 감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 지방이랑 서울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뭘까? 음... 깨어 있다는 것? 서울은 밤 10시가 되어도 여전히 불빛이 반짝이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곳.


저기 널려있는 화려함 속에서 내가 만들어낸 조그만 빛 한줄기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사회생활에 많이 지치고, 힘든 날이 많아도 내 인생은 저렇게 아직 반짝이고 있어, 하면서. 



흔한 일은 아니지만,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올 때도 밤시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비행기 차장 밖의 서울 야경이 눈에 점점 가까워지고, 불빛이 더욱더 선명해질 때, 나는 기장님이 너무 빠르게 착륙하지 않고 조금 더 선회해줬으면 어떨까, 하는 매우 에너지 비효율적인 상상을 하곤 한다. 기름값 더 낼 것도 아니면서.


여행을 갈 때는 주로 낮에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멀어지는 서울의 야경을 본 적은 한번도 없다. 오직 밤에, 가까워지는 반짝거림만이 가슴속에 깊이 남는 것. 여행을 하면서 가장 좋은 순간은? 이라는 질문의 답은 항상 서울로 돌아오는 저녁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지만, 동승자에게 미안해질까봐 차마 말을 하진 못한다.


착륙을 하겠다는 기장님의 안내방송이 나올 때부터, 솜처럼 부드러운 착륙 솜씨와, 마지막까지 완벽한 주차 솜씨를 느끼는 내내, 나는 창밖을 보며 머릿속으로 하나의 노래만 부르고 있다. 마골피의 비행소녀.



어둠 속을 떠나 비행기는 이제 어딘가에 내려요.

낯설은 도시는 사실 많이 두렵지만.

저기 어딘가에 내가 아는 사람 손 흔들고 있을까.

마지막의 인사를 해요.


안녕, 기억 안녕. 입술로 되내어 보네.

사랑해, 라는 단 한마디.

안녕, 추억 안녕. 너무나 눈물이 나요.

영원히, 그댈 사랑해요.



공항 리무진 버스의 계단에 올라서면, 그제야 원래의 현실로 돌아온다. 휴,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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