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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Oct 06. 2022

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매일 밤 10시, 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라디오를 처음 들었던 건 2011년이었다. 스윗 뮤직박스 이후로는 거의 듣지 않았다가 오랜만에 킨 라디오, 우연히 얻어걸린 주파수.


당시에 겨우 월 120만원 받으면서 시험과 과제, 조교, 연구실 업무 등등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대학원생이 밤에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나는 그중에서 라디오를 선택했다. 기숙사 독서실에서 유선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들으며 전공책과 오랜 씨름을 하곤 했다.


유튜브도 OTT 도 없던 시절, 나는 그저 밤마다 습관적으로 mp3 라디오를 틀었다. 인터넷 서핑도 하다 보면 지겹고, TV 도 없고, 밤에 할 수 있는 건 그저 감성에 빠지는 것뿐. 두 번인가 신청곡을 보내기도 했지만 당첨된 적은 없다.




하루의 끝을 정리하는 시간, 사람들과의 약속에서 헤어지는 시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거나 또는 잠시 떨어지며 손인사를 하는 시간, 그 모든 시간에 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가 있었다.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다가 혼자가 되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던 지하철에서도, 이별에 아파하며 한참을 밖만 바라보던 시내버스 안에서도, 취한 밤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오던 골목길에서도, 제주도의 여행지에서도, 이삿짐 박스를 다 풀지 못했던 입주 첫날의 컴컴한 밤에서도, 모든 날들에, 모든 젊음에 꿈음이 있다.



출처: CBS 공식 홈페이지


유튜브를 너무 자주 봐서 그런지 요즘은 눈이 부쩍 피곤해지는 것을 느낀다. 몸은 아직 쌩쌩하고 잠이 들지 않을 때면 가만히 눈을 감고 라디오를 듣는다. 11년 전, 그 목소리 그대로이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언젠가부터 변하는 것보다 변치 않는 것이 훨씬 더 좋아졌다. 매일 밤 10시에 다시 찾아오는,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93.9 주파수. 


어느 계절이나, 어느 날씨에나, 어느 감정이나, 어느 상황이나, 어느 장소에나, 언제나 꿈음이 있다. 항상 그 자리에. 그래서 10시가 되면 습관처럼 다시 93.9를 찾는다. 잠깐 선잠이 들었다가 깨면 나오는 목소리.



함께한 두 시간 오늘도 행복했어요. 허윤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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