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10시, 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라디오를 처음 들었던 건 2011년이었다. 스윗 뮤직박스 이후로는 거의 듣지 않았다가 오랜만에 킨 라디오, 우연히 얻어걸린 주파수.
당시에 겨우 월 120만원 받으면서 시험과 과제, 조교, 연구실 업무 등등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대학원생이 밤에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나는 그중에서 라디오를 선택했다. 기숙사 독서실에서 유선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들으며 전공책과 오랜 씨름을 하곤 했다.
유튜브도 OTT 도 없던 시절, 나는 그저 밤마다 습관적으로 mp3 라디오를 틀었다. 인터넷 서핑도 하다 보면 지겹고, TV 도 없고, 밤에 할 수 있는 건 그저 감성에 빠지는 것뿐. 두 번인가 신청곡을 보내기도 했지만 당첨된 적은 없다.
하루의 끝을 정리하는 시간, 사람들과의 약속에서 헤어지는 시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거나 또는 잠시 떨어지며 손인사를 하는 시간, 그 모든 시간에 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가 있었다.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다가 혼자가 되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던 지하철에서도, 이별에 아파하며 한참을 밖만 바라보던 시내버스 안에서도, 취한 밤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오던 골목길에서도, 제주도의 여행지에서도, 이삿짐 박스를 다 풀지 못했던 입주 첫날의 컴컴한 밤에서도, 모든 날들에, 모든 젊음에 꿈음이 있다.
유튜브를 너무 자주 봐서 그런지 요즘은 눈이 부쩍 피곤해지는 것을 느낀다. 몸은 아직 쌩쌩하고 잠이 들지 않을 때면 가만히 눈을 감고 라디오를 듣는다. 11년 전, 그 목소리 그대로이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언젠가부터 변하는 것보다 변치 않는 것이 훨씬 더 좋아졌다. 매일 밤 10시에 다시 찾아오는,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93.9 주파수.
어느 계절이나, 어느 날씨에나, 어느 감정이나, 어느 상황이나, 어느 장소에나, 언제나 꿈음이 있다. 항상 그 자리에. 그래서 10시가 되면 습관처럼 다시 93.9를 찾는다. 잠깐 선잠이 들었다가 깨면 나오는 목소리.
함께한 두 시간 오늘도 행복했어요. 허윤희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