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orest Green
Jun 21. 2024
개인 날도 있고
흐린 날, 비 오는 날도 있듯
내 신앙의 여정 또한 한결같지 못함을 느낍니다.
삶이 고달프다, 고달파.
어설픈 감상을 담은
얼굴 표정 관리하는 것도 역겹고
나와 같아 보이는 타인들의 위선도 지겹고
맞추고 참고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 삶 속의 식상한 일상들이 지루해
선을 위장한 탈선을 나도 모르게 준비하다가도
그것마저도 살기 위한 내 애착에 근거한
몸부림이란 걸 깨닫게 되면
고질병처럼 나타나는
새처럼 날아가버리는 내 생존의 애착들.
꺼져 버리고 싶은 나의 전인.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
아니 이미 죽은 존재처럼 살아온 상한 심령이라
더 이상 낮출 뭔가조차 없다면
제가 갖추어야 할 이 세상에서의
신앙적 자세는 어떤 건지요.
엄살일 수도 있겠지요.
중학교를 졸업 못한 것도 아니고
밥을 굶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학비를 못 내는 것도 아니고
직업이 없는 것도 아닌 ,
도대체 뭐가 부족하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 없지만
왜 이리 오랜 시간 동안 난 갈급함에 초조하고
작은 제 모습에 자신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천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
사회적 습성과 규례, 인간적 도리로
너무 철저히 살려고 노력하는 나.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이 아닌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날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 터질 것만 같습니다.
끝장을 봐야죠.
그때, 그날, 한 번에 날라 갈 그 순간을
그리 짧지 않은 인생 전부를 걸며 기다린다는 것이
성질 급한 제겐 쉽지 않은, 고문이네요.
'진리로 인해 자유하라 하셨고
그럴 수 없느니라'로 마친
예수님의 비유 말씀
저는, 나의 노력과 수고만 있다면 나의 영육은
점점 더 젊고 건강하게 살아 숨 쉴 것만 같아
세상 적 삶의 애착을 내려놓지 못한 채
내 안에서 살아계신 영의 존재에 대해서는
거의 잊고 살고 있음을.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그리할 것임을 너무 잘 압니다.
결국 살아 있다는 것은
죄의 연속이고
예수님의 덮으심의 은혜 없이는
구원받지 못할 면목없는 부끄러움.
이론은 머리에서 이해가 가지만
너무 아이러닉 해서
숨 쉬지 않는 죽은 몸으로
살 영을 느끼고 싶은 충동은
가슴에서 죽질 않습니다.
그래서 고독했었습니다.
내 모습 지금 이대로
주님이 주신 내 자리에서
내 모든 걸 버리고 하나님의 선만을 위해 산다 쳐도
온전한 믿음으로 가장한
나의 일상의 위선을 자각하는 한
저의 고독은 사라지지 않겠지요.
주님의 은혜만을 붙든다면
내가 느끼는 죄의식도
정리되어있지 않은 부엌도
가끔은 드러날 나의 수치도,
정죄하고 아파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직 전 멀었나 봅니다.
아직도 전
그분의 전적인 내 발 씻김에
나의 수고를 더하려 하는
겸손을 가장한 의로운 나로 인해
그 분과의 관계를 소원케 하는
우매한 인간임이 분명하네요.
아! 너무 심플하고 쉽지만
또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머리에서 쥐가 나네요.
10-09-13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