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orest Green Jun 21. 2024

신앙/가을

가을과  나

이번 비 그치면 이해의 가을도 가겠죠?


출퇴근 시 집 어귀를 지나 큰길로 접어들면

가로수들이 

가을을 또 겨울을 맞고 있네요.

이미 잎새를 다 떨궈낸 나무,

단풍이 적당히 물들거나

아직 푸르거나

그리고

사철 푸른 나무들.


전 나무를, 초록색을, 등산을 좋아합니다.

푸르르면 모든지 청렴하고 맑고 그리고 정말 푸름 그 자체라고 생각해서

저의 닉네임을 초록이라 지었지요.

나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누군가는 걸으며 사색하는 것이 좋아 등산을 좋아한다지만

전 정상에 올라  흘린 땀을 바람에 말리며

아랫 세상 바라볼 때의 

그 기분과 만족감이 좋아 등산을 좋아했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그 마저도 환경이 제대로 허락지 않았지만,


도시의 나무들도 아프네요.

한 여름 무성히 푸르게 자라던 잎새도

그래서 그 더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던 자비의 실체가

한 잎, 두 잎 비에 바람에 그리고 차가운 날씨에 

그 공덕 스스로가 아닌 섭리로 털려, 쓸려, 어딘가로 가네요.

한 겨울 동안 그들도 푸르렀던 한 때를 그리워하며

다음의 또 푸르른 고지를 위해 열심을 내겠지요.

사철 푸른 나무는 

미관과 교통안전을 위해

인간의 힘으로, 기계로 무성한 가지와 잎들이 잘려나가고.


저랑, 우매한 인간들의 꿈을 향한 헛발길질과 다를 바 없네요.

아닌 것을 알면서도 꽃을 피우고 푸른 잎을 내야 하는 세상 법칙 무시치 못하고

그러나 아파하며 스러지면서도 또다시 그렇게 생존해야 하는 운명들.

의인은 하나도 없고

의물 또한 없네요.

그래서 사람이고 그래서 피조물일까요?

인간이 세상에서 갖는 교훈은 

스스로를 합리화

의로움을 위한 명분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한때 푸르던 잎이 낙엽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보며

초록은 어쩜 항상 푸르고 싶다는 제 자존심이었음을,

놓지 못하는 자아, 해맑음을 포장하려 애쓰는 제 마음이란 사실을

또 다른 나에게 들켜버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숙면하고 싶다는 열망은 푹 잘 수 없다는 고통의 소리 침이고 

위가 아프면 내 몸속에 위가 어디쯤 있는지 체감하듯,

아픔이 있어야 문제를 깨닫듯

혼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내 영혼도 아파

그 존재가 갖고 있는 어렴풋한 문제들을 감지합니다.


병에 걸려 완치된다 한들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끝"이란 세상적 이치가

비가 올 것을 예고하는 이 가을 

회색 하늘 바라보는

제 가슴을 그저 우울하게 합니다.


2011.11.11

이전 14화 신앙/우매한 인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