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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Green Jun 21. 2024

신앙/예방주사

가을에

초록이 붉게 변하고

물결처럼 흐르던 가을 하늘

가을의 낭만에 취하지 말자는 다짐은

삶의 구차함을, 아니 더 정확히 나의 보잘것없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그 어느 시점부터였죠.

 



겨울을 가장한 가을이 야속했었죠.

그리곤 애써 외면했었던 가을의 그것들

 

외면이란 뭔가 원하는지 말아야 하는 것을

간절히 소유하고자 하는 것.

그것을 맘껏 누리지 못하는

기대치의 사랑이란 역설임 알았을 땐

시간은 너무 빨리 흘렀고

순리처럼 덤덤한 일상은 그저

치러야 만 할 의무라서

오늘의 가을 하늘엔 시도 음악도 친구도

그리고 목적 없이 다다르고 싶던 낯선 곳에 대한 희망도 없네요.

 

산다는 건 내가 어슴프레 생각했던 그런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부터

지옥이 궁금해졌고 동시에 천국을 그리워했었습니다.

누릴 천국을 그리워하는 신앙생활도 기복을 바탕으로 한

잘못된 신앙이라 하셨습니다.

티끌의 존재로 아무것도 아닌 나로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는 감상들은 항상 내 자존적 위치를 확인하려 하고

은혜가 넘쳐흐르다가

엎어지고 깨지는 나의 궁핍한 영혼은 어찌해야 하나

속수무책입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를 되뇌어 봅니다.

때때로 밀려오는 혼돈은

가을의 단풍에 흠뻑 취해있어 깨어나지 못할 때

예고도 없이 내 휑한 목덜미로 몰려드는

매서운 겨울바람 같습니다.

 

삶은 이렇게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건 가요?

율법이 아닌 은혜로 받아들이기엔

저는 아직도 어린 아이임에,

아니 어쩜....

 

오늘 독감예방주사를 맞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꼭 예방주사 같습니다.

내 영혼이 곤고할 때

보이지 않는 그것들은 내 뇌에서 스스로 유기체가 되어

외면한 가을의 잔상을 가슴에 품고서도

편히 잠을 이룰 수 있게 하지요.

예전엔

이즈음에 찾아드는 개폼도 되지 않는

같잖은 생각들로 매해  힘들었었습니다.


주님의 가을은 어떤가요? 


10-10-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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