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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Green Dec 21. 2019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나와 다른 인격체로 생각하지 못했다


뒤뜰 울타리를 하얗게 뒤덮은

재스민 넝쿨의 향기에 취하다 보면
마음의 자물쇠가 절로 열리고
풀리지 않던 문제들도 까맣게 잊게 된다.

산다는 건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며 

가능한  여건 속에서 내 역량만큼 

나에게 주어진 그릇을 비워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가끔 나의 그릇은 꽤 클 거라는 오만 속에서 허우적대기도 하였고 뒤웅박만 한

그릇을 한탄하다 우울해하기도 했다.


 이런 변덕의 강을

한 발로 징검다리 건너듯 살아오면서도

나의 인내심이 불평하지 않았던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헤치고 나온 시간들은 겹겹이 쌓여

산이 되고, 산맥이 되어 결국엔 하늘 같은 어떤 영예를 나에게 안겨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무의식은 열심만큼의 보상을 기대하고 있었고

것은  비워진 만큼 채워지게 될

환희로 가득 멀지 않은 나의 훗날이었다.


나와 자녀들의 관계는 어떠한가를 생각해 본다.

자식결코 나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나 자신이었다.
때론 나보다도 더 소중했고

남편이 굶은 몇 끼니보다도

다 큰 새끼들의 한 끼에 더 안달했다.
자식은 절대로 나를 떠나서 살 수 없을 것 같았고
아니 그렇게 되게 두어도 안된다고 집착했다.

사랑과 모성의 시너지가 만든 순리라고 생각했다.

십 대 중반을 넘긴 자식에게도

나의 이런 방식이 먹힐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비로소 나는 절감하고 있다.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것은 적어도 성인이 된 후에 생각해볼 만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치부해 왔다.

내 몸을 빌려 태어났을 뿐인

 나와 다른 인격체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식은 당연히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배우고 익힌 건 뭐든지 무리들 중 탑이어야 하며 누구에게도 지지 말라고 요구했다.


오늘 문득 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십 대의 나를.

그 당시 나의 많은 생각과 우정과 친분과 그리고 나름의 고뇌들을.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내 생각의 틀 속에 갇힌 독립된 인격체와

사랑으로 위장한 맞춤형 인간이란 나의 욕망을.  

이것이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때때로 일어났던 분쟁의 원인이었음도 오늘 난 인정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의 회한 만든

자식을 간섭하는 나의 일들은

내 어깨 위에서 책임과 임무수행이라는 당당한

이름표를 달고  자식의 고단한 일상을 만들고 있었다.


자식이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내 마음과 다르게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그들의 그릇은 그들 자의로 비워져 가야 한다는 너무 쉽고도 당연한 사실을

왜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채워진  빈수레로 왔다가

비워진 빈수레로 가는 역설의 이치가

모두에게 주어진 운명의 그릇이었다.

인생은 완벽히 채워 육체 요구를

담아두지 않고 마음으로 비워가는 과정다.

빈 곳을  채우려는 마음은

세월을 역행하고 싶은 불가능한 것으로

마실수록 목마르게 만드는 바닷물과 같다.

내 인생의 보상은 각각의 개체를

그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격려하는,

가벼운 마음만이 베풀 수 있는 사랑뿐 다.

그리고 사랑은 절대로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살아온 세월만큼 아직 다  비우지 못한 나는

오늘, 모처럼

땅 속으로 꺼질듯한 단한 육체와

봄비에 씻긴 듯 맑은 정신마주할 수 있었다.


재스민 향을 가득 품은 봄바람 위로가

내 어깨 위스친다.


2006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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