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안개가 걷히면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당 내다보니 온통 안개 천지다. 하얀 물기의 입자는 분명 하얀색인데 칠흑이다. 옆집의 처마가 조금 드러났다. 안개로 끊어진 길 더듬어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인다. 청소차가 지나가고 그 뒤를 악어새처럼 폐지 차가 따라간다. 밥 싸고 커피 끓여 집을 나섰다.
하이 골(鶴洞) 하늘에 까만 비닐 날아다닌다. 개 사육장 골짜기 미골이다. 가만 보니 까마귀다. 깍 깍 울며 맴돈다. 왁자한 참새떼 소리가 풀숲에서 뿜어져 나왔다. 쉴 새 없이 조잘대는 게 하굣길 여학교 앞의 분식집 같다. 눅눅한 기운이 배추밭에 깔렸다. 팔려나간 배추 지금쯤 푹푹 소금에 절여질 테고 빈 밭엔 치마끈 풀어놓고 달아난 배추 이파리가 학살 현장의 옷가지처럼 널브러졌다. 아까부터 까마귀는 불온한 상상을 몰고 다닌다. 가을은 사멸하는 계절이다. 풀이며 나무는 겨울을 준비하며 쇠락한 낯빛이다. 까마귀 떼가 사육사 지붕에 박쥐처럼 달라붙었다. 그러고 보니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보통이면 인기척에 악을 쓰며 짖어댔다. 吠는 개 짖을 '폐'. 개 犬에 찢어져라 벌린 입 口 하나만 붙이면 된다. 골 안개 걷히고 볕이 스미는 골짜기. 鷄鳴狗吠(계명구폐). 안개 벗어지고 둥근 해가 떴다. 닭 울고 개 짖어 번히 동튼지도 한참인데 미골 골짜기는 죽은 듯 고요하다.
개들은 다 어디로 숨었을까. 팔려갔나 탈출했나. 까마귀 한 마리 뼈만 앙상한 호두나무에 앉으려다 도로 날아간다. 마주친 시선 성가신 거다. 머리 위로 지나는 까마귀 중저음 목청이다. 한 삼사 십 년 담배 피운 골초의 음성 듣고 넘어오는지 까마귀는 점점 불어난다. 빈 밭에 어른대니 찢어진 비닐처럼 펄럭인다. 이승 떠나는 만장(輓章) 같다. 뭐 하자고 참새 저리 불협화음을 섞나. 깍 깍 째짹 짹짹! 물든 낙엽이 떨고 뽕나무 어깨 오싹 움츠린다. 골짜기 들썩거린다. 사달이 나긴 난 모양.
태양도 신도 인간도 삼가야 했다. 사달은 생명이 제공한 상황의 방증이다. 우연한 탄생과 더불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다름의 원인도 없었던 것에서 질서와 무질서가 나타나고 개념이 생겼다. 무(無)였던 것에서 유(有)가 나타난 건 우주의 아이러니다. 고로 인간도 아이러니적인 존재. 別有天地 非人間(별유천지 비인간)이란 암흑의 무였다. 인간이 없었으니 별유천지도 없었다. 비극일까 희극일까. 난해한 건 장자만이 아니다. 모두가 난해한 것 투성이다. 난해가 본질이었으니. 실패를 예감하면서 글을 쓰고 시를 쓴다. 인간은 표현하는 동물이고 이동하는 존재다. 이주하면서 머무는 순간 생각을 글로 쓴다. 달리는 말 위에서도 붓을 든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은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제자는 스승의 말이 증발되기 전에 침을 묻혀 적었다. 그러면서 말은 오염된다. 말의 전화(轉化)가 글이라면 글은 말의 자식이다. 말은 몸의 감정이 쏟아낸 표현이다. 언설이란 말의 논리를 나타낸 것 같지만 속내는 사상을 섞은 감정의 표현이다. 시대에 따라 사람을 살리고 죽였다. 그렇다면 글은 감정을 절제하고 차가운 이성을 옮겨 적을 수 있는가. '불립문자(不立文字)'란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이지 언어나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자는 도를 말하면 도가 아니라고 했다(道可道非常道).
우리는 이름 짓고, 생각하고 말하며 산다. 명명(命名)은 글자대로 목숨을 짓는 일이다. 이름 짓기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다문화', '이주 여성'은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차별어가 되었다. '인간들은 일상의 개인적 대화보다 광장에서 떠들고 외친다'에서 '인간'은 부정의 뉘앙스를 띠는 것처럼. 떠나온 곳을 모르고 현재를 검열하고 미래를 재단한다. 더럽고 어두운 지혜로운 자식들이 세상을 통치한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는 생각하는 인간, 만드는 인간에서 진화한 다. 예전의 놀이는 노동과 여가와 종교에 스며 구분 없이 섞였다. 요즘은 sns에서 논다. '좋아요' 하나만 터치하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허방 같아도 즐겁다. 그런가 하면 차단과 끊기는 영원히 단절되는 관계의 터치다. 존재감은 가상의 세계에서 빛을 발하며 우리를 살게 한다. 모두가 외로움에 떨며 골방에서 '좋아요'를 끝없이 외친다.
싸리나무 단풍이 지는 노루목 골짝에서 상을 펴고 점심을 먹었다. 즉석 미역국은 컵 하나가 적당량이다. 물이 많으면 싱겁다. 이맘때는 김치의 절정이다. 김장김치, 파김치, 무김치, 고들빼기가 서로 먹어 달라고 아우성이다. 군내 나기 전까지 김치 퍼레이드다. 세월과 온도에 버무려진 젓갈은 한반도 민중의 곰삭은 지혜다. 맛난 젓갈 하나로도 밥은 뚝딱이다. 철수한 과원(果園)의 사과나무 우듬지에 가을 해 닮은 사과가 달렸다. 얼고 녹다 눈 좋은 산새의 먹이로 생을 마친다. 며칠 사이에 잎사귀가 죄다 떨어진 늦가을 풍경은 처연하다 못해 슬프다. 비감한 느낌은 삶이라고 다를 게 없다. 나이 든 죄로 돈을 타는 노인은 청년에게 송구하다. 산다는 게 정말 미안하고 죄스러워 자살하는 게 아니다. 인간은 이동과 표현, 관계가 끊어지면 죽음과도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