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다.
읍의 가운뎃길을 지나가면 눈에 뜨이는 사람이 없다. 큰 다리 건너 터미널 근처에 가면 맨날 서 있는 트럭 장수나 과일장수, 나머진 길 양쪽의 상점들이다. 이층 의원에서 진료를 마친 사람이 처방전을 들고 옆 건물 일층 약국으로 들어간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유리문 미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약사가 팔랑거리는 처방전을 받고 그것을 다시 고쳐 돌려보는 소리까지 들린다. 얼굴마담인 여약사가 자동인형처럼 살갑게 웃으며 한방차를 권한다. 대추 차거나 인삼차인데 대형 보온 통에 항상 들었다. 단추만 누르면 뜨거운 차가 콸콸 나온다. 조제약이 나오는 동안 무료한 짬을 후후 불어가며 달래는 거다. 어쩌다 손님이 없어 약이 일찍 나오면 셈을 치르고도 컵 속의 차는 남아 난감한 상태가 된다. 마셔버리자니 목구멍이 델 것 같고 버리자니 차를 따라준 자동인형에게 미안하고 어쩔 수 없이 수초 간 약봉지를 들고 차를 마신다. 보온 통이 놓인 판매대 앞으로 문방구처럼 자잘한 용품이 색색으로 쌓였다. 치실 도구, 목캔디, 미백치약, 때 비누, 항균비누 등이 마트 계산대 앞의 껌처럼 다닥다닥 붙어 눈길을 끈다.
약국 문을 밀고 나온다.
큰길 경계석 위 횡대로 폐기된 화분이 흙만 채운 채 늘어섰다. 더러 초록색이 보이는데 그건 풀씨가 날아와 싹을 틔운 거였다. 원래 화분을 꾸미던 화초는 흔적도 없다. 불과 수개월 사이의 일이거나 일이 년 동안의 변화다. 사람은 백 년 어간에 흔적을 감춘다. 화분처럼 무덤에 풀씨가 덮일 테다. 차 소리 대신 새가 울까 생각하는데 C면에서 달려온 버스가 터미널 차고로 느릿하게 들어간다. 천천히 만 김밥 꽁지에 단무지가 나온 것처럼. 김밥천국은 새벽 장사를 마치고 한숨 돌리는 모양인지 가게 안이 캄캄해졌다. 터미널의 기름한 이층 건물이 식은 김밥 같다. 버스정류장과 연이은 택시 승강장에는 세 대의 택시가 심심한 듯 서 있고 나이 든 기사들이 자판기 커피를 들고 어깨를 움츠린다. 읍의 골짜기로 가는 버스 손님을 기다리는 그들의 얼굴에 막 충혼탑 쪽에서 넘어온 햇살이 걸린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달인이 된 그들은 아무리 까탈스러운 손님이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장수처럼 대거리할 노련함이 배어 나온다. 빛나는 견장의 윗옷이 얇아 보인다. 삼십 년 전 우는 딸아이를 안고 택시를 타고 처가에 갔다. 밤길이었는데 아내가 안으면 울던 딸이 내가 안으면 울음을 그쳐 기사는 신기하다고 했다. 이십 분 거리의 처가는 지금은 흔적도 없다. 홀로 살던 장모가 처남집으로 들어가자 밭주인은 집을 밀고 집터를 밭으로 만들었다. 늙은 감나무도 그때 사라졌다.
장모는 옛집의 기억을 싫어했다.
아프던 막내 처남이 죽고 팔팔한 나이의 장인이 갑자기 세상을 뜬 곳이다. 허리 끊어져라 붉은 고추와 빨간 사과를 따던 노동의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내가 처음 유화물감을 사서 그린 첫 유화 그림도 처가의 옛집이었다. 눅눅한 변소 옆 공터에 우산만 한 토란 잎이 무성하고 돼지우리에는 트럭에서 떨어진 돼지가 꿀꿀대며 보챘다. 나중에 돼지는 동네서 잡아먹었다고 했다. 명절이면 내려가 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술을 마셨다. 장모는 전쟁 같은 귀향이 끝나고 바리바리 싸들고 떠날 때면 눈물을 찍었다. 그런 기억도 이젠 자취가 희미해진다.
양조장 사장은 막걸리가 잠긴다고 했다.
창고에서 보관하는 술이 거래처로 나가지 않는 걸 잠긴다는 표현을 썼다. 잠기는 건 침수, 정체, 갈앉는다는 의미인데 무거운 침묵처럼 느껴졌다. 자본과 노동이 생산한 물류는 돌고 돌아야 재화로 바뀐다. 정체는 단계의 중단인데 누군가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고 오줌을 싸야 새로 술이 들어갈 텐데 막걸리 소비량은 점점 떨어진다. 막걸리는 소주와 맥주로 대체되는 중이다. 노인이 줄어드니 그렇고 기계화된 영농으로 종일 땅을 뒤집거나 김매던 풍경도 사라졌다. 제초제 치면 다음날 논두렁 밭두렁은 노랗게 변했다. 오렌지 에이전트. 월남에서 미군의 치누크헬기가 약을 뿌리고 한국군 수색대가 정글을 헤치고 베트콩 마을을 덮쳤다. 나뭇잎이 말라버려 앙상한 나무 사이로 베트콩의 알몸이 드러났다. 한국군은 하늘에서 떨어진 노란 가루약을 몸에 바르고 팔다리에 비볐다. 해충, 모기, 나무 거머리가 달라붙지 않았다. 고향에 돌아온 그들은 고엽제에 시달렸다. 성불구가 되고 마누라가 달아났다. 뼈만 남은 고엽제 환자는 고기를 갈아먹었고 나라에서는 매달 연금을 두둑하게 입금했다. 월남전이 잊히는 동안 한국의 씨를 받은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얼굴이 닮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시집오고 일하러 온다.
읍사무소로 간다.
산불감시원 신청 서류가 두툼하다. 갈수록 선발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예전엔 하던 사람이 매년 산불을 감시했다. 서류 심사나 면접은 없었고, 체력 검정은 더더구나 전무했다. 그냥 이름만 써넣고 산불을 시작했다. 경기가 바닥을 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궁벽한 촌에서 겨울 벌이란 녹록지 않은 현실이 됐다. 너도 나도 산불을 신청했다. 선발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면접을 보고 서류심사를 하고 체력을 살폈다. 때아닌 변화에 육십 넘은 사내들은 공설운동장 트랙을 헉헉대며 달렸고 땅바닥이 코에 닿도록 팔 굽혀 펴기를 했다. 남성의 독점이었던 자리에 여자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극성스러울만치 꼼꼼히 따졌고 근무도 잘했다. 성비가 역전됐다. 대형 산불은 딴 동네서 일어났고 N읍 주변에선 자잘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수확기가 끝날 무렵 시작하는 산불은 모심기가 절정일 무렵 끝난다. 내성천 둑길에 희끗한 갈품이 날리고 진눈깨비가 바람에 날아가는 한겨울 지나면 풀 싹 오르고 봄꽃이 핀다. 늦가을과 겨울, 늦봄의 변화를 감상하는 건 자못 신비롭다.
N읍 사람들의 밥벌이는 다양하다.
밥벌이와 함께 그들의 삶도 낮게 소리 죽인다. 곤핍했던 산골이 길 뚫리고 물산이 오고 가며 변했다. 소란한 정치바람도 비껴가는 듯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쇠락한 왕조의 기질을 품고 있다. 아버지로 이어진 딸의 정서를 그리워하고 새로운 변화는 불순하고 버릇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철이면 좁은 바닥이 뒤집어진다. 혈연, 학연, 지연으로 똘똘 뭉쳤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제각기 후보를 응원한다. 상대편 후보를 비방하는 일은 되도록 삼간다. 어차피 선거 끝나면 형이고 후배다. 술집에서 누구의 험담도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한 사람 건너면 정보는 상식으로 흘러 비밀이란 남의 동네 얘기다. 대신 누구네 자식 잘되고 못되고는 반찬이고 안줏감이다.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감시하고 질투한다. 그러면서 등을 두드리고 어깨동무한다. 진부한 연대와 연민을 체면 구기지 않을 만큼 나눈다. 좁은 바닥에서 남녀의 치정이나 사소한 시비는 뉴스거리가 된다. 사나흘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 밥을 버는 일상은 지고의 행복이자 비루한 일생의 과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