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일기 15

by 소인

자가 격리 8일째.
보건소 담당자가 자가 격리자의 체온과 발열감, 기침(인후통), 호흡곤란(숨 가쁨)과 특이사항 등을 매일 체크한다. 격리자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질문과 답변을 들을 수 있고 담당 공무원은 성실하게 응대할 의무가 있다. 격리기간이 끝날 무렵 격리자는 마지막 진단검사를 받는다. 모든 일정을 담당 공무원의 안내에 따라야 한다. 확진자 발생이 수그러들자 각국에서는 규제 완화 정책을 썼으나 최근 다시 증가 추세에 있다. 일본은 매일 3,400 명의 양성 환자가 발생한다. 다시 가게 문을 닫고 학생들은 원격 수업으로 돌아가야 할 모양새다. 바이러스는 소멸되지 않고 끈질기게 인간 사회 곳곳을 파고든다. 마치 인간의 정신세계에 화인(火印)으로 찍힌 욕망의 바이러스처럼 인간을 통해 전염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자본주의의 부추김을 통해 세뇌된 인간의 뇌는 욕망을 떠나 하루도 생존할 수 없다. 너와 내가 바라는 이상은 실은 모양과 냄새만 다를 뿐, 같은 특질을 가진 닮은꼴이다. 너의 욕망을 내가 욕망하고 타인의 시선을 관종 하는 게 두터운 습속이 되었다. 좀비와도 같아서 한 번 깨물면 감염의 속도는 빛보다 빠르게 공동체를 물들인다. 지구의 탄생 이래 다른 종의 추월을 불허하는 인간종의 우월과 교만은 바이러스라는 미세한 정체에 의해 길이 막히고 말았다. 그런데 그것은 같은 얼굴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가면을 바꿔 쓰고 더욱 진화된 조직과 속도로 재차 공습을 감행한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서로를 격리한 채 사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쓰나미가 잦아들기를 바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시의 생존법과는 너무 다르게 살아온 나머지, 원래의 습속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자연과 우주, 미지의 대상마저 인간의 위계 아래로 설정해 점령, 지배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착각이었고 삶의 방식을 되돌려야겠다고 깨닫는 순간 우리는 너무 먼길을 지나쳐 온 것이다. 질주하는 무한 욕망의 운명은 스스로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해 탈선하는 길 뿐. 부서지고 깨져 선혈이 낭자한 내장을 드러낸 좀비...

휴양림에 손님이 묵지 않는 날은 야간조가 주간조로 바뀐다.
텅 빈 휴양림에서 불을 밝혀 전력을 낭비하고 공연히 야간 시급 1.5를 물 필요가 없단 뜻이다. 역으로 헤아리면 지자체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휴양림의 살림이 망해도 공무원과 기간제 관리인의 보수는 지급된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한 시간 잤다. 아침밥 먹고 나니 오늘 숙박 손님이 없단 전갈이다. 어정대다 시간만 흘렀다. 점심을 건너뛰고 한 시에 맞춰 출근했다. 일하기 전 소보루빵 한 개를 먹었다. 오후 근무는 밤 열 시 퇴근이다. 야간에 한 시간반 정도 자고 났더니 머릿속이 하얗다. 간밤의 일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아침과 오후 근무하는 동료 셋이서 퇴실한 방을 청소했다. 다음 달엔 일자리 공공근로 아주머니 넷이 청소일을 하러 올 예정이니 남자들이 객실 청소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무기계약직인 군청의 공무과 직원 한 명이 보충되니 일손을 덜어줄 것 같다. 오후에 출근하니 기쁜 소식 하나가 와 있었다. 새로 뽑은 더블캡 트럭이 페인트도 마르지 않은 얼굴로 주차장 구석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쓰레기 수거 등 가파른 휴양림 경사로를 오갈 때 요긴한 차량이다. 새 차를 타고 휴양림을 한 바퀴 돌았다. 사륜구동 더블캡. 겨울의 눈을 생각해서 장만한 거라는데 요즘은 눈이 내리지 않는 포근한 겨울이다. 로보캅처럼 생긴 새 차의 꽁무니에 배기가스 저감장치인 요소수 탱크가 달렸다. 기쁨은 잠시라더니 주말에만 쓰란다. 그것도 감지덕지다.

객실 청소를 하고 안내실 앞의 쓰레기 그물망을 쏟아 분리해 담았다. 일요일 오후 새로 생긴 휴양림을 구경 왔다는 사람들의 차가 속속 계곡으로 올라온다. 방을 보여주고 설명을 달자니 일에 지장이 생긴다. 아무려나 어떠랴. 이것도 관리인의 업무라고 생각하며 목소리에 정성을 기울인다. 휴일에도 휴양림 사정이 궁금한 공무원들이 들어왔다 나간다. 끄느름한 하늘에서 한줄금 쏟아질 기세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계곡은 폐장 뒤의 해수욕장과 닮았으나 파도소리 대신 산새 소리, 물소리가 바람에 섞여 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나. 선계(仙界)인가 생선 국물 질척이는 시장거리 한가운데인가. 선도 속(俗)도 살아 느끼는 이승의 무명이로구나. '지금 당장 행복해지지 않아도 좋다. 행복도 불행도, 우울도 불안도, 그 자체로 견디고 묵상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치유의 징후다. 진정한 치유란 급작스러운 해피엔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향한 오랜 집착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니까.' 작가 정여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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