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격리 9일째.
자가 격리 계산법은 입국 날짜 다음날부터 14일간이다. 그러니 딸의 자가 격리 종료일은 5+14, 19일 00시다. 14일을 만으로 계산하는 거다. 딸은 식료품을 충분히 공급한 덕에 집안에서 잘 먹으며 독거 중이다. sns로 대만의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받으며 늦잠을 자기도 하는 모양이다.
밤새 빗소리 들으며 잤더니 베갯머리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하늘에서 방울방울 떨어진 물기는 지붕을 적시고 들판을 적시고 마을을 지나 도시를 향해 흘러갔다. 청태가 낀 강바닥을 훑어 깡통, 스티로폼 조각, 깨진 병을 가볍게 들어 올려 수면에 띄웠다. 강돌을 씻어내며 붉덩물이 흘러간다. 지천에서 본류로 흘러드는 물은 온통 시뻘건 황톳물이다. 가풀막의 흙과 비료, 퇴비, 농약성분이 큰비에 섞여 떠내려간다. 조금이라도 엿살피면 지구의 땅과 하천은 똥 투성이다. 내가 사는 가난한 지방은 소와 돼지, 닭을 대량으로 키운다. 그들의 똥은 퇴비로 만들어져 전국의 논과 밭에 뿌린다. 빗물에 똥이 씻겨 내려간다. 장마는 계곡의 겨드랑이와 논밭의 사타구니를 훌훌 씻겨 구정물을 함부로 내다 버린다. 호수와 저수지의 하류엔 쓰레기와 잡동사니로 섬을 이룬 부유물 천지다. 물 바닥을 할퀴어 뒤집어놓은 물살 덕분에 갈앉은 침전물도 둥실 떠올라 몸을 비틀며 물살에 섞여 이동한다. 장마가 끝나면 세수한 얼굴처럼 말끔한 강의 물길엔 내장을 씻어낸 갈겨니, 피라미떼가 합창하듯 반짝이는 여울을 거슬러 오르고 산들엔 짙은 초록으로 성장(盛裝)한 수목이 햇볕과 바람의 애무를 희롱하며 맘껏 자랄 터다. 예부터 지구의 대기에 산소가 유입되면서 그러했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에 인간의 입김이 쏟아지면서 쓰레기가 쌓였다. 어떤 쓰레기는 문명이 되었고 어떤 건 폐허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종교의 믿음처럼 영속하는 존재란 전무하단 것이다. 우주 공간을 떠도는 지구의 쓰레기도 무한을 떠도는 인간의 영혼과 같다.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평범한 인간이야말로 극도의 악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아이히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고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고 아렌트는 호소했다. 우리는 인간도 악마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되느냐 악마가 되느냐는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코로나 이전에도 지성들은 꾸준히 삶의 방식에 대해 주장했다. 자본의 폭격으로부터 벗어나라고. 그러나 학습된 욕망에의 질주를 누가 멈추게 할 것인가. 포스트 코로나의 상황은 어떤 모습일까.
「빌뱅이 언덕」의 권정생 선생은 진정한 독서에 대해 선생다운 가르침을 남겼다. '인생에서는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 진달래는 진달래로서 아름답게 꽃 피기를 바라지 그 어떤 꽃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개나리도, 민들레도, 제비꽃도 각자의 꽃으로 아름답다. 새들도 마찬가지다. 꾀꼬리는 꾀꼬리대로 뻐꾸기는 뻐꾸기대로 아름답게 운다. 아이들이 시험공부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까지 하게 된 것도 교육 시책에 앞서 학부모들의 책임이 클 것이다. 진정 자신들이 인간 교육을 바란다면 아무리 강력한 교육 정책에도 반대하고 나섰을 것이다. 시험 점수 1등을 하고도 배부른 돼지밖에 되지 못하는 공부를 목숨 걸고 하는 것은 모두가 미쳤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의 책 읽기도 인간을 이탈하는 쪽으로 하게 된다면 오히려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남의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게 해달라고 비는 어느 기독교인들의 이기적인 기도는 바른 기도가 아니듯이, 인간 위에 군림하기 위한 독서도 진정한 독서가 아니다.' 모두가 미친 공부를 하고 미친 욕망을 갈구한다.
아침 먹고 아이스팩을 가지러 갔다. 격리생활 후 매일 되풀이하는 일상이다. 아이스박스 두 개로 식료품을 저장하는데 생각보다 냉장 효율이 떨어진다. 하룻밤 지나면 얼어서 딱딱했던 팩 속의 젤은 사정 끝난 물건처럼 흐물해졌다. 철철 내리는 비를 뚫고 집으로 갔다. 차에서 내려 우산을 펴고 박스를 꺼내는 동안 흠뻑 젖고 만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란! 중국어로 물에 옴싹 젖는다는 표현은 落汤鸡라고 한다. 국에 빠진 닭이란 뜻. 어쨌든 국에 빠진 닭의 꼴이 되어 마당에 들어섰다. 호박 이파리에서 딱딱 빗물 떨어지는 소리 요란하다. 지붕의 빗물은 홈통에 모아져 잔디밭 가운데의 배수관으로 줄줄 흐른다. 분꽃 하나는 약한 줄기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잔디로 처박혔다. 술꾼처럼. 지주대를 박고 허리를 묶었다. 나팔꽃이 주렁하게 피어 아침 인사를 한다. 오이를 두 개 땄다. 호박은 여전히 몸을 불리는 중이다. 딸은 고양이를 좋아하면서도 먹이를 주는 덴 게을렀다. 갈 때마다 사료를 채워주었다. 앞집 처마를 보니 아무도 없다. 녀석들은 어딘가에서 비가 긋기를 기다리는 중일 게다. 올해 유난스레 꽃을 많이 피운 치자나무가 빗물에 떤다. 앞집, 옆집, 뒷집, 우리 집 모두 지붕개량으로 양철을 덧씌웠기 때문에 빗소리가 요란하다. 따닥따닥 장작 타는 소리를 내며 빗물이 튀었다. 딸은 자는지 기척이 없다. 마당을 둘러보고 아이스팩을 채워 뛰어나왔다. 희부연 하늘에서 늑줄 주지 않고 노드리듯 비가 쏟아진다. 오늘부터 휴양림 숙박 손님 유무에 상관없이 근무표대로 야간근무다. 비 내리는 계곡의 까만 밤에 홀로 어떤 사유를 퉁퉁 불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