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어둠에 잠긴 계곡엔 물소리 요란했다. 새소리도 물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어젯밤과 오늘 오전까지 내린 비로 작은 계곡의 물이 모여 휴양림 한가운데를 사납게 후벼 파며 흐른다. 밝은 날 제일 위쪽 임산도로부터 샅샅이 살펴야겠다. 특히 아래쪽 숙소 뒤편의 임연부(林緣部) 경사면의 식생매트가 깔린 곳은 풀이 나지 않아서 폭우가 내리면 토사 유실이 우려되는 곳이다. 법면에 심어놓은 맥문동은 아직 활착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라 연약 지반이다. 물길은 생긴 대로 지형을 만들며 개울을 이룬다. 곳곳의 토목공사는 인위적인 구조물을 만들어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과는 배치된다. 큰 물이 지나고 나면 피해를 헤아려 보수작업이 수반되어야 한다. 자연은 스스로 원래의 자리를 고집한다. 그래서 인간의 손길이 지나면 자연 파괴로 이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 차례 비로 계곡물이 불어났다.
밤새 물소리 들으며 잤다. 첫날 야근보다는 익숙한 느낌이다. 다섯 시에 깼다. 눅눅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숙소 주변과 야영데크 등을 순찰했다. 산림휴양관 목교 아래 배수구 하나가 토사에 막힌 것 말곤 다행히 우려했던 토사 유실과 산사태는 발견되지 않았다. 비에 젖었는지 산새도 조용하다. 멀리 산자락에 비구름이 부옇게 걸렸다. 자정 넘어 당직실에서 푹 잔 덕분에 첫날만큼의 피로감은 없다. 주차장과 정문 주변을 둘러보고 안내실로 돌아왔다.
자가 격리 10 일째.
퇴근하는 길은 축축하게 젖어 있다. 전용도로 가에는 콩과 식물이 늘어뜨린 가지로 도로를 더듬는다. 소형차의 불빛이 따라오더니 쌩 하게 소리 내며 내 차를 추월한다. 라이트를 켠 걸 보니 어둠살에서 출발한 듯하다. 로컬푸드 매장 지나 쓰레기매립장 입간판이 나타난다. 봉화군은 음식물쓰레기를 소각하지 않고 매립한다. 한 번은 길을 잘못 들어 매립장 입구에 간 적이 있다. 파리가 들끓고 악취가 진동하는 경사지에서 두 사람이 쓰레기 위에 방수포를 덮고 있었다. 음식물쓰레기는 산을 이루고 있다. 숨을 참고 겨우 차를 돌려 빠져나왔다. 매립지를 관리했던 담당 공무원을 만날 기회가 있어 물었더니, 봉화군은 시골이라 대부분의 음식물 찌꺼기는 각 가정에서 텃밭이나 구덩이를 파서 묻어 썩힌다고 한다. 그나마 주택이 밀집된 읍내나 면소재지의 경우 나오는 음식물쓰레기의 양이 소각로를 가동할 만큼의 양이 나오지 않는단 설명이었다. 소각로를 멈추지 않고 꾸준히 돌려야 하는데 양이 적어 자주 멈추면 제철소의 용광로처럼 재점화하는데 비용이 더 든단 거였다. 언뜻 이해 가면서 이해되지 않았다. 자꾸 쓰레기산을 만들고 이쪽저쪽 골짜기를 메워나가면 암모니아 가스층으로 덮인 산하는 언젠가 폭발하지 않을까.
임시숙소로 곧바로 가지 않고 집으로 갔다. 아이스팩을 먼저 가지러 갔다. 호박 덩굴손이 지붕에서 탈출해 허공을 거머쥔다. 바지랑대로 밀어 지붕에 도로 올렸다. 동그란 호박 다섯 개가 같은 크기로 자란다. 연두색 호박의 살결이 아침 흐린 광선에 반짝인다. 아이스팩을 담아 나왔다. 딸은 자는지 기척이 없었는데 얼마 후면 격리가 풀려 맘껏 활보하리라. 마지막 검진의 결과를 무턱대고 예단하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론 걱정스러운 것도 현실이다. 신규 확진자 중의 입국자 비율이 높게 나온 뉴스가 심심찮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청정국인 대만보다 유럽, 미국 쪽의 입국자지만 말이다. 딸은 담당 공무원의 감시(?)하에 철저한 격리생활을 버텨내고 있다. 체온계와 자가진단 앱으로 매일의 신체 상황을 전달하고 수시로 걸려오는 공무원의 전화에 응대한다. 어제는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공무원이 외출하지 말라고 해서 놀랐단다. 혹여 낮술이야 제 소관이지만 명료한 음성이 공무 수행에 적합하지 않을까.
오래된 빌라 앞 주차장은 낮을 제외 하곤 늘 만차다. 다행히 빈자리가 눈에 뜨였다. 아내는 잠 덜 깬 얼굴로 문을 열어주고 도로 방으로 들어간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드러누웠다. 오래 잤는데도 집에 오니 몸이 나른하다. 한둔은 아니라도 숲 속에 지은 집이라 그런가. 솔바람 소리 물소리에 시달린 탓인가. 연암은 대륙의 열하(熱河)를 건너며 불가시(不可視)의 갈등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는데, 난 고작 계곡의 물소리에 허우적대는가. 대인과 잡놈의 터울은 그래서 깊고도 넓은가 보다. 슬슬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