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감시원 11

by 소인


쑥국

우 노인 논두렁에서 쑥 캔다. 꽃 시샘하는 바람 양지뜸 햇발과 씨름하는데 평생 논밭 삶던 갈퀴손으로 보드란 쑥의 허리 분지른다. 엊그제 하우스서 얻은 파가 대파 아니고 양파라 하니 장날 타처 장꾼 얼어 터진 얼굴 짠해 대파 모종이라고 샀는데 크는 꼴 보니 양파였단다. 남 속이고 복 받겠냐고 끌끌 혀 차며 쑥 캔다. 등짝 쓰담은 햇살 뜨끈한데 우 노인 손 멈추고 시물시물 웃으며 쑥 가져가란다. 에이, 놔두소 손사래 치며 달아나는 논둑에 활활 쑥색 인심 돋아난다.


자두농장 배 씨가 왔음에 틀림없다. 벌써 세 번째다. 원앙이 실개울에 온 후로 카메라 담으려고 온 신경을 곤두세웠는데 계속 허탕이다. 사람 살지 않는 골짜기 과수원 밭뙈기 자두농장뿐이라 이른 봄 찾는 이 없다. 상처한 배 씨 겨우내 방 지키다 소일거리 자두 농사 정성 쏟는 거다. 사랑한 아내 돌보듯 이른 봄부터 자두나무 밑동 긁어 거름 내고 여름 내내 풀 베고 소담스러운 열매 주렁 할 때까지 힘주는 거다. 필시 배 씨 트럭 지나자 예민한 원앙 암수 짝 지어 다른 물길 찾아 자릴 떠난 거다. 수놈의 부채 같은 깃털 정말 근사하다. 깎아놓은 목조각 같다. 물 위에 가만 떠 있어도 놈들은 빛이 난다.

약 먹기 위해 점심 몇 숟갈 뜨고 천변으로 나갔다. 이틀 째 장염으로 고생 중이다. 먹은 거 없이 물만 좍좍 쏟아내니 하늘이 핑글핑글 돈다. 아내는 더러운 얘기 그만 좀 하라고 지청구지만 내가 불행하다고 불행을 박박 문대 씻거나 버릴 수 없듯이 행복도 언제까지 곁에 묵혀둘 순 없는 게 삶이란 거다. 슬픔이나 고독, 이혼과 상처 등을 끔찍하게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혼도 이혼도 행복한 삶을 위한 선택이다. 삶이 삶이기 위해선 행복과 슬픔이 적당히 녹아 있단 걸 인정해야 된다. 언제까지 맑은 하늘이면 농사는 누가 짓나. 비바람과 천둥 번개가 훌륭한 농사꾼이란 사실은 고금의 필부도 익히 아는 농법이다.

아, 봄꽃 시샘하는 쌀쌀맞은 바람에 노랗게 물오른 버들개지 시위하듯 낭창댄다. 큰형은 호드기 장인이었다. 버드나무 여린 가지를 잘라 비틀면 껍질이 쏙 벗겨졌다. 원통 모양의 껍질 끝을 연필 깎는 칼로 살살 긁어 겉껍질을 일 센티미터쯤 벗겨 납작하게 눌러 불면 신기하게도 피리소리가 났다. 난 따라 하다 망치기 일쑤여서 큰형이 만들어준 호드기를 친구들 앞에서 자랑스레 불곤 했는데 나중엔 모두 큰형이 만들어준 호드기를 불어댔다. 하긴 그때쯤이면 호드기 피리에도 싫증 나서 다른 놀이를 찾을 무렵이지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는 거울과 나의 차이다. 거울은 나를 보여주지만 난 거울 속의 날 보는 거다. 대상과 의지의 차이랄까. 보이는 풍경과 보는 풍경도 마찬가지다. 액자의 사진처럼 보이는 풍경은 시들하게 풀 죽은 전언일 뿐이다. 풍경을 보는 내가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역사가 이루어진다. 내가 네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면 넌 내게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호명의 발화자는 나지만 소리를 해석하고 선택하는 건 네 의지의 몫이다. 물론 선택에 따르는 호의와 환대, 그리고 상대의 말에 경청하는 건 기본이지만. 버드나무의 입장에서야 봄 잘라내는 발칙한 놈이겠지만 낭창대는 버드나무 가지로 호드기 만들어 분다면 세상은 피리소리로 가득 찰 거다. 아마 지구 밖에서도 들릴 거다.


허 씨 아지매

돼지 막 내려다보이는 외주물집 육 남매 맏이 허 씨 아지매 걸 솥에 개죽끓인다. 요 며칠 얼비치던 봄 한 발 물러선 늦은 오후 매운 연기 찬바람에 춤춘다. 서울 살던 며느리가 산후 우울증으로 세상 뜬 건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어미 잃은 손자 벌써 일곱 살이란다. 큰 농사는 근동의 남동생 트랙터 몰고 와 다 해주고 옷 사 주는 셈 치고 품값 넉넉히 쳐준단다. 자다 세상 저문 서방 서운치도 않단다. 면에서 경찰 하는 남동생 찾아와 닭백숙 냄비째 퍼주며 곁불 쬐던 산불 아저씨에게도 대접 가득 내민다. 이래저래 살다 가면 된다고 인생 뭐 있냐고 아궁이에 젖은 고춧대 쑤시며 오늘따라 연기 왜 이리 맵냐고 눈가 훔치는 허 씨 아지매 손등이 갈퀴 같다.


망도골 우 씨

우 씨 아내와 감자 넣는다. 춤추는 비닐의 검은 물결 아내 헐렁한 바지에 봄바람 들어간다 장골인 우 씨 농사로 한몫 잡았었는데 뇌경색 한 방에 농사도 세월도 다 조졌다. 근동 타처 백 마지기 농사 강원도로 쌀 내고 튼실한 다꽝무 텔레비전까지 소문났는데 돈다발 술 다발 사는 재미 죽였는데 집채 만한 트랙터 숨죽인 채 뒤란 텃밭 감자 넣기 벅차단다. 추억의 신경마저 까맣게 타 죽었다는 망도골 우 씨 버들개지 봄물 오르고 양지뜸 제비꽃 헤벌어진 봄날 서울로 약 타러 간다고 무딘 신경 세우고 마누라 한숨 섞어 감자 넣는다.


적덕보

말해 무엇할까. 적덕보 물 바닥엔 민물조개 넙데데한 껍데기 뒹굴었다. 백로 왜가리 파먹은 형해만 남은 조개의 나이테 물 밖에도 물속에도 잠겼다. 삼사 십 년 전 전국의 하천 어디에 가도 토종 붕어와 민물조개가 잡혔다. 간간한 맛은 없어도 칼조개와 보리새우 넣어 끓인 매운탕은 별미였다. 수질오염에 버티지 못한 종부터 서서히 사라진다. 새 먹이 줄어들면 새도 머물지 못한다. 작년에 수달의 똥을 본 건 그나마 다행. 우렁이 알은 논에서 흘러나온 서양 우렁이다. 날카로운 바늘 주렁 하게 달고 배스의 옆구리 노리던 천박한 사냥꾼 보이지 않는다. 이 물엔 고기도 씨가 말랐나. 번듯하게 만들어놓은 어도로 큰 물 질 때 타고 오르는 고기 있을까. 소백산 줄기 문수산 상류 향해 기운차게 지느러미 털던 갈겨니 버들치 토종 붕어 가뭇하다. 윗물 길 막아 양식장 은어 쏟아놓고 여름마다 축제 벌어져도 우왁스런 손길 휩쓸어간 개울 쓸쓸하다. 물 맑아 바닥 투명해도 원폭 지나간 도시처럼 쓰레기 갈앉은 개천. 손 씻기도 불안한 물살이 무넘이 타고 좔좔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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