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시외버스는 주요 도시마다 멈췄다.

영주에서 출발한 버스는 안동을 거쳐 아래쪽으로 달린다. 경주를 지나 울산이 마지막 목적지다. 예전엔 시내 중심가에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모였다 흩어지는 모습은 역이나 터미널에서 볼 수 있었다. 철로가 생긴 이래 기차와 상관된 사연은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많고 다양하다. 일본은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로서 한반도에 철로를 깔았다. 남북으로 연결된 기찻길을 따라 전쟁 물자와 군대가 중국으로 넘어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征明假道)고 했으나 선조가 거절하자 조선 강토를 피로 물들였다. 웃기는 건 왕이 달아난 궁궐에 들어간 민중은 기물을 부수고 불태웠다. 북진통일을 장담하던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을 버리고 도망간 것과 겹친다. 버스가 생겨 물자와 사람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수단이 되면서부터도 터미널과 사람의 역사는 고구마 줄기처럼 불어났다. 세계여행이 시작된 시점도 철로가 놓이면서부터다. 사람들은 열차를 타고 이국의 풍물을 구경하고 사람을 만났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존재고 재화와 용역도 행위와 이동을 반복하면서 늘어난다.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운동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가치가 무색하다. 한자리에 우뚝 멈춰 있으면서 가치를 띠는 건 대상에 관한 기억 때문인데, 인간의 역사는 운동을 매개로 이어졌다. 같은 장소에 군락을 이룬 숲이라고 해서 천날만날 그대로인 건 아니다. 생태계의 천이(遷移)로 해서 일정한 지역의 식물 군락이나 군락을 구성하고 있는 종들이 시간의 추이에 따라 변천해 갔다. 이것이 계속됨에 따라 생태계의 속성이 변한다. 일반적으로 맨땅을 그대로 방치하면 한해살이풀, 여러해살이풀, 양지성 수목, 음지성 광엽수림으로 점차 변한다.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무는 수십 년을 이동하지 않고 정주(定住)하다 수명을 다하는 것 같지만 나무는 천이라는 수단으로 수백 년을 거치며 이동하고 변화한다. 지구의 나이 130억 년 중에서 나무는 지구가 생긴 후 4억 년부터 나타났으니 한 장소에 고정된 나무를 보고 정주와 이동 운운하는 건 지구의 관점에서 보아도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물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팝콘 튀는 뜨거운 냄비 속에서 도덕 운운하며 물고 뜯고 싸우는 건 신이 보더라도 한심하기 짝이 없겠다.

안동을 지나 하회마을 아래쪽으로 달리니 산자락의 나무가 죄다 흑빛이다. 지난봄 대형 산불로 피해 입은 지역이다. 4월 하순에 안동시 풍천면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로 200ha 이상의 숲이 사라졌다. 1990년대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경북 울진까지 번졌다. 산림작업단 시절 불 탄 산지에서 숯덩이가 된 소나무를 베고 치우는 작업을 했다. 포격을 맞은 시가지처럼 폐허로 변한 숲의 맨살은 처참했으나 곳곳에서 도라지 고사리가 땅을 뚫고 올라왔다. 온몸에 불길에 그을린 상처를 하고 푸른 잎을 내미는 나무는 뿌리로부터 물을 빨아올리며 생존 투쟁을 하는 중이었다. 지존(地存) 작업을 하고 도시락을 먹으며 어린 묘목을 꽂았다.

작년 영남 내륙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느꼈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고대 신라의 냄새가 났다. 봉긋봉긋 거대한 족장의 무덤들, 신라시대 상징의 조형물 하물며 버거킹 체인점까지 기와를 올린 한옥풍의 건물이었다. 승객은 우르르 타고 내리며 조금씩 줄어들었다. 민소매 차림의 젊은 여성이 시원하게 보인다. 울산이 가까울수록 차는 밀리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바닷가에 기댄 도시라기보다는 조선소와 자동차의 도시로 기억하는 울산은 여느 도시와 다름없었다. 군데군데 공원과 관광지 안내판이 보였고 태화강을 안내하는 이정표 아래 수북하게 자란 풀이 더위에 늘어졌다. 시내로 들어가며 버스는 손님을 토해낸다. 기사에게 목적지의 이름을 말하며 터미널 전에 내려도 되냐고 물었다. 이 고장 사람이 아니라며 손사래 친다. 뒷자리의 여자가 터미널에서 내리는 게 가깝다고 알려주었다. 터미널은 한낮의 열기로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높다란 건물에 가려 바람은 멎었고 8차선 도로는 태양에 녹아나듯 흐물거리며 불기운을 뿜어냈다. 아까 여자는 대합실을 나서며 길 건너에서 택시를 타면 된다고 말하고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건너편 길가에 택시 두어 대가 졸고 있는 게 보였다. 오줌이 마렵고 목이 말랐다. 길 건너 다이소 매장으로 들어갔다. 딜러와의 약속 시간은 삼십여 분 남았다. 택시 타고 가면 늦지 않을 것 같다. 시장기가 돌았지만 약속을 지키고 나서 해결하기로 했다. 다이소에서 지갑에 넣을 수 있는 얇은 주머니칼과 음료를 샀다. 혈당을 염려해 단것과 칼을 샀는데, 동네 다이소 매장에서 사려고 망설인 걸 울산에 와서 산 거였다. 명함 크기의 접이식 칼은 일할 때 끈을 자르거나 비닐을 오리기에 좋을 것 같아 눈여겨본 거였다. 봉지를 풀거나 끈을 푸느라 애먹은 게 떠올라서였다.

덥다.
땀을 참는 게 더위를 돋운다. 풀베기 작업할 때처럼 줄줄 흐르는 땀이 외려 더위를 씻어준다. 여름 들어 술을 많이 줄인 게 도움이 된 느낌이다. 몸안에서의 화기보다 대기 중의 열기는 참을만하다. 짧은 만남이지만 빠른 판단이 필요한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으니 더위와 시장기에 정신을 빼앗길 여유 따윈 접어두었다. 다이소 매장을 나와 주차장이 딸린 식당 앞에서 음료를 마셨다. 점심 먹은 인부들이 이쑤시개를 물고 트럭으로 몰려간다. 아침을 가볍게 먹은 뱃속에 단 음료가 쓸려 내려갔다.

맨 앞에서 졸고 있는 택시를 탔다.
진장동 갑시다. 표준말로 할까, 경북 사투리로 할까 하다 서울말로 했다. 간단한 지역 말은 지역의 억양을 쓴다. 일테면 안녕하세요는 안녕하시껴, 그럼 가세요는 그럼 가시더로 얼마 입니까는 얼마이껴로 발음한다. 지방 말을 써도 한두 마디 대화가 오가면 대번에 타지 사람이란 걸 알아챈다. 투깔스레 느껴지는 경북 토속어는 투깔스런 대로 맛이 있다. 짧게 끊는 말은 '요'가 사라져 반말투로 들리기도 한다. 경북 지방의 전통으로 사촌 이내의 여성에게 남자가 하대 조의 반말을 한다. 가령 엄마나 이모에게도 밥 먹었는가?로 통한다. 할머니에게도 '하게'로 말한다. 경상도 사내가 창군(創軍) 초기 군대에서 상관에게 반말 조의 대거리로 곤욕을 치렀다는 경험을 들은 기억이 있다. 여수에서 출항한 배가 태풍주의보로 발이 묶인 적이 있었다. 수제비처럼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 섬을 간신히 빠져나가다 곰보 선장의 고향인 하태도에 잠시 정박했다. 배에서 내려 섬을 둘러보다 십 대 소녀들을 만났다. 서울말로 몇 마디 물었더니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킥킥대며 달아나는 거였다. 남도 사투리만 듣다 '~니' '~요'로 끝나는 서울말이 얼마나 간지러웠겠나. 경북 사투리 경험의 압권은 신화학자 이윤기 작가다. 경북 군위가 고향인 그분이 미국에 갔을 때 한인 교수의 초대를 받았다. 모국어로 대화를 나누던 중 역시 한인 교수의 초대를 받은 미국인이 합석했다. 영어로 인사를 나누고 이윤기 작가와 한인 교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미국인이 한국어로 물었다. 그것도 경북 말로. '근데 이 선생은 한국 어디서 왔니껴?' 이 작가가 깜짝 놀라며 '군위에서 왔니더' 하니 미국인은 반갑게 웃으며 '안동서 잠시 선생질했니다'하더란다. 경북에선 선생, 의사 등의 직업에 하다는 뜻의 행위를 표현할 때 '질'을 붙인다. 이후 두 사람의 대화가 환하게 이어진 건 말할 것도 없다.

사거리에 멈췄다.
신호가 느릿느릿 바뀌는 동안 가로수에 걸린 태극기가 실바람에 흔들렸는데 마치 목이 부러진 중국의 운동가처럼 대롱거렸다. 그는 경찰의 곤봉 세례를 맞고 실신했는데 어디론가 끌려간 후 소식을 모른다. 기사가 입을 뗐다. 태극기 부대의 정신 나간 꼰대질에 나랏 꼴이 말이 아니란다. 영남에서 이런 말을 듣다니 솔깃하게 구미가 당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변하기 어려운 게 사람의 정신이라고 했다. 마음이 정하면 합리적 판단은 사라지고 믿고 싶은 것만 본다고 했다. 태극기 연합의 얼빠진 행태는 한일병탄 이후 매국 매판의 기회주의 세력의 뿌리 깊은 세뇌에 어리석은 민중이 당한 탓이라고 말했다. 같은 연배로 보이는 기사는 내 말에 기운을 얻었는지 말에 바퀴를 단 듯 터무니없는 방위비 요구는 트럼프의 건달 놀음이고 전작권은 주권을 가진 나라로서 반드시 우리가 가져와야 한다고 빠르게 말했다. 흐물하게 녹아나던 시내의 풍경이 소나기 맞은 듯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이다. 한일병탄 당시 조선 백성에게 보낸 1910년 8월 29일 자 순종(純宗)의 조서(詔書)다. 이는 비통하게도 오늘의 전시작전통제권(wartime operational control)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았는가.

"짐은 부덕함에도 대업을 계승하여 즉위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신 정책에 관심을 갖고 온갖 시도도 해보고 준비도 하였으나 국력을 키우는 데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 이후 국력은 더욱 약화되어 피폐함이 극에 달하였으나 만회할 희망은 보이지 않아 밤낮으로 걱정하여 최선책을 찾았지만 일은 더욱 심각해지기만 하였다. 스스로 마지막을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차라리 대임을 다른 이에게 맡겨 온전히 보전할 방법과 혁신으로 보람을 찾음이 나을 듯하다. 그러므로 짐은 이에 두려움 속에서 고심한 끝에 직접 결단을 내려 한국의 통치권을 예전부터 친교가 있었고 신뢰하고 있는 이웃나라 대일본 황제폐하에게 양여하여 밖으로 동양평화를 확고히 하고 안으로 민생을 보전하고자 한다. 그대 대소 신민들은 국력과 시대 흐름을 깊이 고찰하여 걱정할 것 없이 안심하고, 일본제국의 문명신정(文明新政)에 복종하여 나라의 복을 향유하라. 짐은 오늘의 이 일과 그대 민중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대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뜻에서 하는 일이니, 그대 신민들은 짐의 이 뜻을 잘 받아들이도록 하라."

1910년 8월 29일 순종(純宗) 조서(詔書).

희끗한 스포츠 형의 머리를 한 기사는 나라의 국격은 스스로의 자존을 지키는 데서 비롯된다고 했다. 외세의 눈치를 살피며 권력의 기회만 노리는 세력에게 국민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도 했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요구가 터무니없다. 전년도의 다섯 배가 넘는 50억 달러를 요구하는 드럼프와 각료들의 행태가 국제 깡패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2019년도 국방 예산은 국가재정 총예산 331조 7천억의 14.1%인 46조 6천 억 이다. 이는 북한 군사비의 100 배가 넘는 규모다. 엄청난 군사비 지출 규모에도 한국은 미국에 국가 안보를 기대는 꼴이다. 똥별들의 의식 수준으로 보면 당연한 건가. 현대전은 지상의 화력보다 공중전, 정보전이다. 북한 정권이 제 살 파먹기로 남침한다는 가정은 만에 하나도 없다. 전쟁은 공멸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툭하면 TK당이 안보 어쩌고 떠드는 건 수구세력의 트라우마를 이용하는 질 나쁜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평화는 강력한 전쟁 억제력에 있다. 북미회담이 개시될 때만 해도 한반도의 영구 평화와 남북 공동의 번영을 기원했다. 하지만 갈수록 미국의 속내는 드러났다. 중국의 견제와 자국의 불리한 탄핵 국면을 모면하려는 저의다. 협상 테이블에 나설 때마다 협상 수준이 진화하기보다 강대강의 양보 없는 노림수만 펼치니 북미 협상의 험로는 뻔한 판세다. 결국 트럼프 정권은 북미협상을 시간끌기하면서 재선을 노리고 중국과의 무역과 군사 대결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지구촌의 깡패 군대를 퍼뜨려놓고 말도 아닌 주둔비 증액을 요구하는 미국은 애저녁에 한반도 평화니 지구촌 평화에는 관심이 없다. 철저한 자국 이기주의로 국내의 불만세력을 무마시키고 정권을 연장하는 명분 외엔 없는 것이다.

이차대전 후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소련과 미국은 남북한이 각각의 정부를 수립하자 소련군은 자기 나라로 돌아갔으나, 미군은 철수하지 않았다. 북한의 김 정권과 남한의 박 정권은 이데올로기 체제를 이용하여 장기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남북한의 긴장 국면을 교묘히 활용했다. 그 가운데 불운한 건 북한의 인민과 남한의 민중이었다. 해방 후 남한과 북한의 주둔군 사령관인 맥아더와 슈티코프의 포고문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미군은 처음부터 점령군의 위세로 들어온 걸 알 수 있다.

태평양 미합중국 육군총사령부 포고 제2호

조선 주민에 고함.

본관은, 본관의 지휘 하에 있는 점령군의 안전을 도모하고, 점령 지역의 공공치안과 질서 안전을 위하여 태평양 미합중국 육군 최고사령관으로서 다음과 같이 포고한다.
항복문서의 조항 및 태평양 미 육군 최고사령관의 권한으로 발포된 포고•명령•지시를 위반하는 자, 미국인 및 다른 연합국인의 인명 및 소유물, 또는 보안을 해하는 자, 공중 치안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자, 정당한 행정을 방해하는 자, 또는 연합국군에 대하여 고의로 적대 행위를 하는 자는 점령군 군법회의에서 유죄로 결정한 후 동 회의에서 정하는 바에 의거하여 이들을 사형 또는 기타 형벌에 처한다.

1945년 9월 7일
요코하마 태평양 미합중국 육군 최고사령관
미합중국 육군 대장 더글러스 맥아더

조선 인민에게

조선 인민이여, 소련 군대와 동맹국 군대는 조선에서 일본 약탈자를 몰아냈다. 조선은 자유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역사의 첫 페이지에 불과하다. 화려한 과수원은 인간이 노력하고 고심한 결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조선이 추구하는 행복도 조선 인민의 영웅적인 투쟁과 근면한 노력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일본 통치하에서 살아온 고통의 나날을 기억하라. 토담 위에 놓인 돌멩이까지도 괴로운 노력과 피와 땀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누구를 위해서 여러분은 일했는가? 일본인들은 고대광실(高臺廣室)에서 깨끗한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조선인을 멸시하고 조선의 풍속과 문화를 모욕한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노예적인 과거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고뇌로 가득한 악몽 같은 그 과거는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조선인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여러분의 수중에 있다. 여러분은 자유와 독립을 원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여러분의 소유가 되었다.

소련 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인 노력에 착수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제반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조선 인민 스스로가 반드시 자신의 행복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장•제조소 및 공작소의 경영주와 사업가들이여, 일본인들이 파괴한 공장과 제조소를 복구하라, 새로운 생산기업을 개시하라, 소련군 사령관은 모든 조선 기업소의 재산보호를 확보하고 그 기업소의 정상적인 작업을 보증하기 위해 모든 원조를 할 것이다.
조선의 노동자여, 노력에 의한 영웅심과 창조적인 노력을 발휘하라. 조선인의 뛰어난 민족성의 하나인 노력에 대하여 애착심을 발휘하라. 진정한 사업에 의하여 조선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꾀하려고 하는 자만이 모국 조선의 애국자이자 충실한 조선인이 될 것이다.
해방된 조선 인민 만세!

1945년 8월 10일
소련군 사령부
소련군 슈티코프 사령관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민간인에 대한 행패와 한국 주둔 미군의 범죄를 보아도 저들의 사고는 점령군에 머물러 있음을 느낀다.

한국전쟁 발발 전 미국의 극동 정책에 한반도는 제외 지역이었다.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은 1950년 1월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1949~1953)이 애치슨 선언에서 언급한 미국의 극동 방위선이다. 그것은 소련의 스탈린과 중공의 마오쩌둥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해 태평양에서의 미국 방위선을 알류샨 열도 - 일본 - 오키나와 -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 즉 애치슨 라인으로 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치슨 선언은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과 타이완, 인도차이나 반도를 제외시킴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공격에는 대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비쳐 북한의 오판을 불러일으켰고 6 · 25 전쟁 발발의 원인이 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후 애치슨 선언은 정치권의 비난을 받고 철회되었다. 역사는 우연을 거듭하는 상황이라지만 이후의 동족 간의 피 흘리는 살육은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약소국의 비애였다.

이차대전 종전 후 독일은 전쟁범죄의 사죄와 배상을 실천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배려하에 오히려 한국전쟁 특수를 누리며 폐허를 딛고 승승장구하더니 급기야 전범의 외손자 아베가 군사 재무장을 선동하며 장기 집권 중이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강대국에 끼인 형세로 수많은 외침을 겪었다. 명나라를 치겠다며 길을 내달라는(征明假道) 왜적(倭賊)에게 지리멸렬한 지배층은 도망가기 바빴고, 민중과 강토는 찢기고 피로 물들었다. 왕이 내뺀 궁궐로 달려간 성난 백성들은 왕궁을 불태웠다. 그로부터 정확히 358년 후 초여름에 독립운동가 행세하던 저열한 국부는 인민군이 내려오자 한강 다리를 끊어놓고 저만 살겠다고 줄행랑을 쳤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칠십 년의 시간만큼 절실하기도 가뭇해져 가기도 한다. 이산가족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남북의 대화 분위기는 강대국의 입김에 흔들리는 꼴이다. 통일 중국을 위해 몸을 불사른 쑨원(孫文)의 정신의 떠오른다. 민족의 생존과 권리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각하여 쟁취하는 것이다. 남북협상을 위해 목숨을 걸고 김구 선생이 삼팔선을 넘은 것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였다. 지금 한반도의 평화를 가로막는 세력은 누구인가. 홍콩 사태를 보면 시진핑의 속내 또한 강압적 통치하의 세력 장악에 있다. 일본은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군사 재무장을 꿈꾸고 남한엔 대중국 견제용 사드 포대가 버틴다. 해체되어야 할 좀비당은 민중은 안중에 없는 정치질로 대안도 없이 물어뜯기에만 혈안이다. 국회의원 평균 보유재산이 41 억 이다. 판검사 출신 의원이 삼 할이 넘는다. 이쯤 되면 서민의 의중과는 강 건너 동네이니 재선 삼선으로 가문의 명예만 좇는 양아치 급이다.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히고 거짓이 진실을 뒤흔드는(以假亂眞) 정치판에 민중은 신물이 난다. 어디서 실을 끊고 자존을 지키는가가 중요한 시점이다. 널 지켜줄 테니 애먼 살림 내놓으라니. 내 집은 내가 지켜야 한다. 우리 사는 땅에서 총칼 든 외국군은 물러가는 게 맞다. 그게 진정한 자주국방이다.

기사는 딜러 사무실 주소를 치고 바로 앞에 차를 세웠다. 셈을 치르며 기사에게 즐거운 대화였다고 말해주었다. 울산 공항의 바로 옆에 붙은 광장은 볶아치는 열기에 찼다. 딱정벌레처럼 다닥다닥 붙은 사무실이 해변의 횟집 같다. 경비행기 한 대가 소리 없이 구름 아래로 저공비행한다. 늦봄 산불감시 일이 끝나면 오키나와에 가서 강제징용 군부와 위안부의 흔적을 더듬으려던 계획은 코로나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다. 일정을 바꿔 남도의 섬으로 가려던 계획도 우연찮케 기간제 일자리가 생겨 포기하고 꼭꼭 숨겨둔 비상금을 몽땅 털어 중고차를 샀다. 어제 오후 조마조마했던 아내의 고물차가 길에서 사망 선고를 받은 거였다. 밥벌이를 하려면 당장 차가 필요했다. 2인승 전기자동차를 닮은 까만색의 경차. 딜러가 손을 흔들었다. 에어컨 볼륨을 한껏 올리고 이글대는 도시를 빠져나와 상행선 고속도로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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