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입국하기 전 캠핑용품을 주문했다.
작년 1월부터 전국을 자전거로 돌았다. 조금씩 아파오는 다리가 언제 망가질지 모르고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자전거 여행을 실행한 거다.
연초에 기차 타고 밀양으로 내려가 해천 거리를 쏘다녔다. 의열단장 김원봉의 고향 밀양과 친구 윤세주의 행적이 사진과 조형물로 꾸며진 밀양시는 일제 강점기 두드러진 항일 지역이다. 밀양아리랑이 들리는 듯한 영남루를 올려다보며 남천강의 아침놀을 맞았다. 밀양에서 구불구불한 지방도를 달려 노무현 생가를 찾았다. 겨울인데도 관광버스가 모여들었고 생가 주변을 지키는 젊은 경찰의 모습이 눈에 뜨였다. 촌로에게 물었더니 전 대통령이 생을 마감한 부엉이 바위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해거름의 주남저수지에서 물에 잠긴 수목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물오리가 떼 지어 날고 목이 기름한 고니는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남쪽의 따듯한 겨울을 만끽했다. 진영의 동생집에서 간만의 회포를 풀고 거제도로 떠났다. 조선소의 거대한 크레인이 마징가제트처럼 하늘 찌르는 섬에서 한국전쟁 당시 넘쳐나는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급조한 포로수용소를 둘러보았고 통영에서 타국을 떠돌던 음악가 윤이상 기념관의 밤을 산책했다. 겨울이라 숙박은 앱을 검색하여 찜질방을 찾았는데 곳곳에 어김없이 찜질방이 나타났다. 이용객은 한산한 편이라 널찍했고 여독에 지친 몸을 맘껏 씻을 수 있어 그만이었다.
산불감시원이 끝난 5월 말에는 후포에서 울릉도로 가는 배에 자전거를 실어 새로 난 섬 일주도로를 육수 같은 땀을 쏟으며 한나절에 돌았고, 숙종 때 일본으로 건너가 관리를 사칭하며 독도를 지킨 배포 넓은 안용복의 자취를 더듬었다. 다음날 버스 타고 나리분지의 산나물 밭을 둘러보았다. 아카시나무 꽃 떨어지고 오리나무 이파리 무성한 초여름으로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 지리산으로 향했다. 빨치산 기념관에서 이념으로 나뉜 그 시대 사람들의 뜨거운 삶의 투쟁을 엿살피기도 했다. 구례의 운조루(雲鳥樓)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쌀을 퍼가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유이주 선생의 뒤주(他人能解)를 보았고, 선생이 사신으로 갔다가 얻어온 위성류나무의 꽃비처럼 늘어진 내력을 얘기하는 꼬부라진 종부 할머니도 만났다. 할머닌 문간방서 낮잠 자다 화들짝 일어나 입장료 천 원을 달라고 했다. 속으로 웃었다. 이기적인 독립운동가인 독재자 이승만을 몰아낸 기폭제가 된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 묘소를 찾았으며, 광양에 내려가 한일 병탄을 통분하며 음독 자결한 매천 황현(梅泉 黃玹) 선생의 생가를 찾아갔다. 올라오는 길 망월동 묘지를 찾아 뜨겁게 살다 가신 광주 영령들께 눈물밥을 바치며 참배했다.
7월 초 짐바리에 텐트, 코펠을 넣은 배낭을 싣고 영남 내륙으로 길을 떠났다. 안동 의성 영천을 거쳐 포항 영덕으로 돌았다. 영남 내륙은 신라 시대의 향기가 묻어났다. 탐스런 복숭아가 익어가고 짭조름한 갯내음이 풍기는 바닷가 모래벌판에 텐트를 펴고 소나무 가지에 달이 걸릴 때까지 소주를 마셨다. 8월부터는 집에서 근동의 코스를 잡아 하루 25킬로 정도를 매일 라이딩했다. 오후 한 시의 달아오른 철판 같은 더위에 땀을 흘리며 달리는 기분은 아뜩하면서도 쾌감이 솟는다. 얼음물을 연신 들이켜며 달맞이꽃 흐벅지게 핀 농로를 달렸다.
낡은 일인용 텐트, 솜으로 누빈 값싼 침낭과 얇은 깔개로는 야영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 아내는 11번가의 텐트 용품 가게를 두드렸다. 3~4인용 원터치 텐트를 주문하고 침낭 두 개, 십 년 이상은 쓸법한 두터운 깔개, 그리고 충전용 LED 전등, 아이스박스 등 자잘한 캠핑용품을 매일같이 주문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마당에 택배 상자가 떨어져 있었다. 아내의 셈속으론 이번 기회에 아예 생존배낭을 마련해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쌀과 물, 김치만 있으면 한 달도 버틸 수 있단다. 화학무기 공격은? 방독마스크도 사라고 놀려댔다. 아내는 정말로 방독면도 살 표정이었다. 이웃이 빌려준 아파트는 팔려고 수리한 집이라 깨끗한 상태지만 도시가스가 연결되지 않았고 냉장고, 세탁기 등 일체의 살림이 없어 캠핑용품을 가져가 쓰기로 했다. 밥통을 옮기고 부탄가스로 조리하기로 했다. 생수를 사고 냉장 식료품은 두 개의 아이스박스에 매일 아이스팩을 갈아 넣으며 냉장을 유지하면 됐다. 쌀은 페트병에 담았고 텔레비전이 없으니 기타를 들고 갔다. 모르고 살았던 일상의 불편을 느끼게 되니 문명의 살림이 이렇게 많은 걸 실감했다. 당분간 시원한 물과 얼음은 포기한다. 냉장고 없던 예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도 유익하리란 생각이다. 그래도 따라온 살림의 태반에 문명의 줄기를 주렁주렁 달고 왔다.
자가 격리 12일째.
딸은 마지막 진단검사를 받는다.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명되면 19일 00시부터 자가 격리 해제다. 콧구멍을 깊숙이 쑤시는 시료 채취는 딸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하는 사실을 괴롭게 받아들이는 눈치다. 모든 과정은 거쳐야 하며 과정이 생략된 결과는 냄새도 느낌도 감정도 배제된 무감각한 이물일 뿐이다. 행복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느끼고 향유하는 인간의 순일한 감정이다. 관광객의 입장으로 대상을 찍고 스치듯 지나간다면 남는 건 사진과 과정이 생략된 길의 목적지뿐이다. 어디를 다녀왔음에도 기억에 남는 게 없다면 그런 경험은 죽은 경험일 뿐이다. 시간과 공간이 무의미한 채 생략된 경험을 살고 있는 셈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시간의 향기」에서 '출발지와 목적지를 갈라놓는 길 또한 일종의 간격이다. 길은 장소 자체만큼이나 풍부한 의미론을 자랑한다. 예컨대 순례의 길은 가능한 한 빨리 지나버려야 할 텅 빈 사이 공간이 아니다. 순례의 길은 오히려 도달해야 하는 목표 자체의 일부를 이룬다. 이때 길 위에 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지닌다. 걷기는 참회, 또는 치유, 감사를 의미한다. 그것은 일종의 기도이다. 순례의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저기로 건너가는 길이다. 시간적인 관점에서 순례자는 구원이 약속된 미래로 가는 길 위에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관광객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딸은 대만을 5년 동안 오갔다.
종교 활동을 하면서 벗들을 사귀며 이국의 풍물을 즐기는 데 심취했다. 대만은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하며 외교 관계가 단절된 국가다. 유엔에서도 쫓겨났으며 각국과의 관계도 파탄 나기에 이르렀다. 대표부 급의 외교 관계는 유지하고 있으나 눈물로 떠난 한국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여전하다. 딸이 취업증(工作证)을 받기 위해 온갖 서류를 디밀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는 통에 결국 포기했다. 국가주의는 구성원인 개인을 문서상으론 보호하지만 현실에선 잔혹하리만치 냉정한 게 현실이다. 국가주의는 때론 민족주의와 손잡고 타민족, 다른 나라를 배제한다. 그러는 사이 힘의 균형에 따라 타국을 침략, 지배해 온 게 역사의 흐름이다. 18세기 중반 네덜란드의 침략을 물리친 정성공(郑成功)을 위시하여 대만은 독립 국가로서의 몸부림을 계속했지만 중국 대륙에 복속되다가 청일전쟁 후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오랜 식민 기간으로 인해 대륙과 다른 개방적인 국민성은 이후 독립국가 발전의 토양이 되기도 했다. 중국은 끈질기게 대만을 복속하려 들고 일국양제(一國兩制)의 관계를 주장한다. 양안(兩岸)에 포대를 설치한 두 나라의 관계와 세계와 동아시아 관계에서 대만은 아직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형편이다.
자가 격리 13일째.
지붕 위의 호박이 컸다. 처음 딴 건 볶음 해 먹었고, 두 개째는 나이 든 주유원에게 주었다. 안성이 고향인 그는 산 타는 걸 좋아한다. 경북에서 경기도 말을 듣는 건 흔한 일이 되었다. 인류학적으로는 교통의 발달에 따라 사람과 물산이 각지로 퍼진다. 말과 습속이 섞인다. 문화가 섞이고 새로운 방식의 길쌈이 강 건너 마을로 옮겨진다. 예전엔 그랬다. 지금은 광속도다. 어제 일어났던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오늘 아침에 듣는다. 인종이 섞이고 외래 해충이 올여름 가로수를 강타한다. 독을 품은 지중해산 담치가 다도해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자란다. 오래전 유입된 미국흰불나방은 감나무, 단풍나무, 버즘나무, 벚나무류 등 활엽수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광식성이라 수종을 가리지 않았다. 토종 벌레의 피해는 우습게 되었다. 봄날 계곡의 저수지에서 신록을 감상하는데 뭔가 투둑 떨어졌다. 징그러운 매미나방의 애벌레였는데 벚나무, 갈대 등을 가리지 않고 갉아먹었다. 여름이 되어 성충이 된 놈들은 가로수에 붙어 밤을 지새운다. 이른 아침 산책 나가면 마치 낙화한 꽃잎처럼 수북이 쌓인 걸 본다. 실로 곤충의 대공습이다. 해충은 방제로도 막기 어렵다. 대발생하는 데다 무차별 농약 살포는 다른 익충과 조수를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바이러스의 싸움만큼이나 벌레와의 전쟁도 지난한 과제가 되었다.
집으로 짐을 조금씩 날랐다.
일요일 격리가 풀리면 나는 오후 퇴근이라 아내의 수고를 덜기 위함이다. 기타, 신발, 건조대 등을 실어 날랐다. 뜨거운 햇살이 머리로 쏟아진다. 아이스팩을 꺼내고 짐을 나르는데 딸아이가 성당 길에서 내려온다. 보건소에 마지막 검진을 다녀온 모양이다. 시료 채취로 힘들었는지 마스크 위로 찌푸린 표정이다. 고생했다고 했다. 고양이 물그릇을 채워주고 집으로 왔다. 아파트 입구를 막아선 청소차에 젊은 청소부가 쓰레기 봉지를 던져 넣는다. 청소환경서비스. 얼마 전 퇴직한 청소부가 일주일 만에 죽었다. 그는 민노총에 가입했는데 그때부터 사장 측의 협박이 계속되었다. 2인 1조의 근무지에 혼자 보내거나 일체의 휴게시간을 주지 않거나 동료들의 따돌림, 사장 아들의 막말과 욕설을 2년 동안 버티다 퇴사했다. 가족들은 아빠의 퇴직 결심을 환영했으나 일주일 만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사망한 청소부의 딸은 장문의 글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렸다. 죽은 이가 꽃 농사하는 동서의 동창이라며 아내가 청원 동의 문자를 보냈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사업주의 횡포, 생산성과 효율을 강조한 채 안전을 무시한 공정으로 하루에도 수십 명씩 일터에서 생을 마감하는 노동자들. 민주사회, 선진국 시대라고 떠벌이지만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를 철저하게 부품화하는 시스템이다. 작가 김훈은 만약 고층에서 떨어져 죽은 노동자가 부잣집 도련님이라면 국회의원의 딸이라면 우리 사회의 열악하고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은 애저녁에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일부터 오일 간 새벽 출근이다. 주말은 삼일을 쉬는데 주문진에 다녀올지 생각 중이다. 십오 년을 살았던 바다의 모습이 가끔 생각난다. '복어잡이 송 씨'는 노햇마을 살 때의 이웃이었다.
이번 파수 돌아오면 작은 문어 배 하나 장만해 우리 내외 유람 삼아
가까운 바다에나 다니자고 마지막 복어잡이 만선이라고 걱실한
목소리 생생한데 복어잡이 송 씨 바다로 나간 지 열사흘 남은 사람들 빈 무덤에 술 따르고 절을 한다 하늘에선 보풀처럼 눈발 날리는데 떨어지는 눈 바다가 되고 눈물이 된다 혹여 꿈결로도 기다리는 가족들 도란거리는 불빛 보일 듯도 한데 복어잡이 송 씨 검푸른 바다가 되어 돌아오지 않는다 「복어잡이 송 씨」
*지난 12월 주문진항을 떠나 복어잡이 나선 7명의 선원이 만선으로 귀항 도중 선박화재로 1명 만이 구조되고 나머지 여섯 명은 실종되었다. 1시간 여 불을 끄다 차가운 바다로 뛰어들어 무언가를 붙들고 버텼지만 두어 시간이 흐르면서 저체온증을 이기지 못해 어둔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선과 해경은 법정기일인 열흘 동안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결국 빈 손으로 장례를 치르고 말았다. 가끔씩 뉴스에 사고소식이 나올 때마다 가슴 아파하지만 정작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눈물과 고통을 얼마나 만져 줄 수 있을까. 작고 사소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돌아보며 사는지.
아파트 삼층에서 내려다보면 사람들의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소읍은 그대로 삶의 축소판이다. 울고 웃으며, 싸우고 미워하며 사랑하고 이별하는 밥벌이의 일상이 고스란히 숨 쉬는 현장이다. 한 다리 건너면 그 사람의 가족사를 두루 꿸 수 있는, 그래서 술집이나 식당에 앉아 함부로 남의 험담을 할 수 없는 동네다. 도서관에 갔다. 대출기가 에러 나는 바람에 사서를 불렀더니 새댁이 배를 안고 온다. 희망도서는 언제쯤 오냐고 물었더니 내 이름을 보고 반가워한다. 희망도서 담당인데 성함을 자주 보아 외웠다며 웃는다. 오래전 이름 하나가 떠오른다. 배가 빠른 속도로 달리고 그물은 깊은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단추라도 걸리면 끝장이다. 남도에서 중선배를 탔을 때 내 자리는 앞 파수에서 투망 하다 죽은 청년 만식이의 자리였다. 다음 주도 비가 잦다. 심드렁한 초복 지나고 중복으로 달리는 무렵 딸의 검사 결과가 무탈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