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격리 마지막 날이다.
만 14일이니 내일 00시부터 격리 해제다. 오늘 안으로 어제 검진 결과가 나오면 일단 안심이다. 난민 캠프도 철수다.
여섯 시 출근.
야간근무 동료와 교대하고 커피물 올린다. 계곡은 적막하고 솔숲 너머 봉우리는 안개로 부옇다. 물소리와 함께 선득한 공기의 기운이 쾌적하다. 일찍 일어나는 게 버릇이 되었지만 집에서와 근무 시는 다르다. 출근해서 움직이니 몸이 무겁다. 집에선 졸리면 잠깐 눈 붙여도 상관없지만 근무할 때는 그럴 수 없으니 몸이 나른하다. 야영데크에 올라가니 텐트 세 동이 보인다. 나이 든 남자가 돌계단 아래서 야채를 다듬는다. 인사했더니 경사가 가팔라 아래서 준비해 올라간단다. 한둔하며 밥을 끓이는 사내의 두꺼운 손등이 흥미롭다. 휴가철 가까워지니 주말은 만석이고 평일에도 예약이 속속 들어온다. 오전엔 입실 전 숙소를 점검하고 퇴실 숙소 세 곳을 청소했다. 아영 데크 빈 곳의 낙엽을 쓸고 열두 시가 넘어서 점심 먹으러 당직실로 내려갔다.
이런... 격리 해제가 예상보다 이르게 결정났다. 딸로부터 톡이다. 마지막 검사 결과 음성이며 격리 해제는 정오란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딸은 이후 발열, 호흡기 통증 등 유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로부터 완전 해제다. 그러나 입국자 확진과 지역별 소규모 확산에 따른 생활 수칙은 모두가 조심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가면을 바꿔 쓰고 언제든 우리 곁에 머무른다. 만일 딸의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면 우리 부부와 주변 사람들조차 바이러스 격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미터 이상 거리두기를 지켰다고는 하나 마당에 들어섰을 때 딸이 건네준 물컵을 받아 마셨으며 화장실을 한 번 사용하기도 했다. 일하기 시작한 휴양림은 폐쇄되고 동료와 공무원들도 차례로 검사를 받아야 할 거다. 인간은 움직이며 생존을 이어가는 존재다 보니 내가 거쳐간 모든 곳은 의심의 대상이 된다. 주유소와 마트, 도서관과 술집, 식당 등 동선에 관계한 곳은 도미노 게임처럼 와르르 무너진다. 숙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가 이러한데 인간의 정신에 깃들어 행동과 습속을 좌우하는 사상과 이념은 어떠할까.
인간은 익숙한 것에 우호적이고 편안함을 느낀다. 진보는 새로운 것에 대한 적극적 행위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보수는 현재의 안위를 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진보와 보수는 충돌할 것 같지만 실은 보폭의 차이일 뿐 근원적인 인간 존재의 습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관념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좌와 우로 나누어 부추기는 건 권력을 쥐고 유지하려는 자들의 속임수일 뿐이다. 인간 존재로 한뉘를 살아가는 데에 사상과 이념, 제도는 걸친 옷처럼 쉽사리 벗어던질 수 없는 외연적 가치일 뿐이다. 톨스토이의 평화주의, 허균의 계급을 초월한 혁명적 사상, 녹두장군 전봉준의 천지인 대동사상, 이영회, 신채호의 아나키즘. 시대적 상황에 준거한 그들의 뜨거운 머리와 가슴은 현재에도 우리의 실핏줄을 관통한다.
젊어서 난 운을 믿지 않았다.
나이 들수록 인간의 행보에 운이 작용하는 기운을 느낀다. 청년 시절에는 운명이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개척해야 할 대상이며 시대적 조건과 상황도 깨부수어야 할 대상이었다.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와 맞닥뜨리면서 피 끓는 정념이 다한 게 아니라 삶은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의 교집합을 견지할 수 있는 자가 누리는 소중한 기회란 걸 깨달았다. 시대적 조건과 인간의 의지, 다음에 우연성은 운이란 개념처럼 작용한다. 그러면서 부정도 긍정도 아니지만 미워하고 저주했던 것들로부터 놓여날 수 있었다. 물론 현재도 완전한 자유랄 수 없는 상태지만 나이 듦이 가져다주는 노회(老獪)에 확신을 더한 삶의 가치를 다지고 싶다. 삶이란 완결된 열정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열정을 구사하는 데 있다. 삶과 우주적 열정이 인간의 영원한 자기 극복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삶에게 완성된 시간과 장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행복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순간순간 행복한 때가 있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행복한 순간들이 삶을 지탱해주는 거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은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공포의 실재와 미래의 과제를 던져주었다. 인간의 문명과 제도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날렸다. 역사 시대 이래 삶의 방식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재삼, 재사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다. 문제는 던져졌으되 풀이와 탐구는 인간의 몫이다. 한강 작가는 5•18을 다룬 소설「소년이 온다」에서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녀는 책을 덮고 기다렸다. 창밖이 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