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 유기(遺棄)

by 소인

杂文 (237)

유기(遺棄)

이틀 전부터 휴양림 계곡에 개가 돌아다닌다.
야간 근무자 말은 숙소 테라스 문을 긁는 걸로 봐서 숙박 손님이 의심된다는 거였다. 그날 이후 갈색의 닥스훈트가 계곡을 배회한다. 난 오늘 아침 그 녀석과 처음 대면했다. 닥스는 산림휴양관 목교(木橋)를 건너 안내실 쪽으로 내려오다 나와 마주쳤다. 부르자 잠시 보다 도로 올라간다. 주인을 찾으려는 듯하나 무인지경의 휴양림 안에서 녀석은 먹을 것 잘 곳도 없이 며칠 밤을 보냈을 거다. 도시의 가정에서 귀염 받고 살았을 녀석이 어찌하다 버려졌을까. 닥스 훈트(Dachshund)는 오소리 사냥개다. 토끼나 여우를 사냥하는 수렵견으로 허리가 길어 꾸준한 운동이 필요한 개다. 어릴 때는 천방지축이라 훈련을 통해 성격을 교정하면 똑똑한 견종이다.

바닷가에 살 때 피서철 지나면 주인 없는 개들이 해수욕장이나 건어물 거리를 쏘다녔다. 무턱대고 따라오거나 꼬리 치는 놈들은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를 달게 먹었다. 지자체에서 처리하는지 찬바람 불면 녀석들의 모습도 하나둘 사라졌다.

유기는 버리는 행위다.
기(棄)는 '버리다'는 뜻과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 어쨌든 유기는 소유나 관계를 끊는 행위다. 부모를 버리는 행위나 자식을 버리는 것을 인륜의 죄로 다스린 건 오래된 습속이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친구를 배반하는 것도 마음으로부터 떠나는 유기다. 욕망이나 집착으로부터의 탈주는 유기라기보다 체념이란 불교 용어다. 체념은 일체의 갈등과 번뇌로부터 탈아의 경지로 승화하는 해탈의 단계와 닮았다. 단념이나 포기와는 다르다. 단념은 마음을 접는 상태로 더 이상의 확장된 사유를 거부하는 행위다. 체념은 사유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초월적 가치를 내포한다. 나의 몸과 정신으로부터 내치는 행위는 이미 대상에 대한 폭력적 분리의 선언이다. 그것이 약자 거나 소수자의 경우 유기된 대상은 죽음과 직면할 수도 있다. 불편한 전통과 성가신 가족,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은 긍정과 부정의 측면을 동시에 가지지만 유기 또한 그렇다.

실은 인간은 본래부터 유기된 존재다. 누구도 태어날 조건과 상황을 정하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DNA를 물려받는 것도 수억 개의 정자 중 운 좋은 하나다. 세포분열의 과정을 거쳐 모태의 자궁에서 자라는 동안 태아는 자신의 미래를 의식하지 못한다. 국가와 민족, 제도와 습속은 태어나자마자 물벼락 맞듯 끼치는 충격이다. 처음부터 배우고 나오는 것이 아니고 주변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며 아이에서 어른으로 길들여진다. 그가 헤쳐나가는 세상은 아무도 그를 보호하지 않는다. 그는 생존의 기술을 부모와 사회로부터 습득하며 나름의 비법을 터득한다. 도태되거나 보호막이 없는 존재 또한 나름의 생존 기술을 체득한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가는 존재는 유기(遺棄) 상황을 관계 상황으로 변화시키며 삶을 마친다. 관계는 죽음으로써 마감된다. 소거된 기억도 유기의 관계다. 버리고 중단하며 새로운 관계를 도모하다 생을 마친다. 오래전 헤어진 여자와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새로운 바람은 불지 않았다. 이미 유기된 마음은 더께 쌓인 먼지처럼 두꺼운 벽이 생겼을 뿐이다. 무감한 표정으로 뻔한 안부를 묻고 서로 가던 길로 갔다. 서늘한 슬픔이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나도 그녀도 유기되었다.

녀석은 잡히지 않을 거다. 수십 명이 그물로 에워싸지 않는 한 녀석은 인간의 손아귀를 피해 필사의 탈주를 감행할 것이다. 그러면서 오로지 꽂히는 건 주인의 품이다. 주인의 냄새와 목소리를 찾아 낯선 계곡을 며칠째 맴도는 것이다. 자신을 버린 주인의 행위는 의식할 수도 알아챌 수도 없다. 자신을 두고 떠난 주인을 원망할 생각도 없다. 그저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기만 바랄 뿐. 이 어찌 황망하고 낭패스러운 상황이란 말인가. 짧은 다리로 바위를 타고 내려가 배 터지게 개울물 마셨지만 매일같이 건네는 주인의 온기가 밴 밥그릇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흐르는 바람 한 줄기에도 주인의 냄새가 묻어올까 코를 벌름거려도 따라오는 건 알싸한 풀냄새뿐.

휴양림 관리계장이 출근하자 닥스를 찾으러 나섰다.
계장은 동네에서 올라온 개가 아닐까 의심했다. 휴양림에 애완동물의 동반은 금지되어 있으니 유기견이든 애완동물이든 눈에 띄면 곤란하다. 나는 유기로 결론지었고 어쨌든 닥스는 휴양림에선 잡초 같은 존재다. 뽑아내 말려 죽이는. 그러나 주인에게 버림받은 생명에 대한 연민이 공감을 이루어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나도 언젠가는 배우자에게 버림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적막한 숲의 아침 냄새가 코에 스민다. 오르막을 걸으니 숨이 가빠지고 이마에 땀이 밴다. 닥스는 어디 갔을까. 어제 누수 공사한 원추리 방에 들어갔다. 창 틈은 실리콘으로 깨끗이 마감 처리됐고 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추후 지켜볼 심산이다.

녀석을 발견했다.
닥스가 묵상의 집 1호실 테라스 아래 앉아 있다. 녀석은 스핑크스 같은 자세였는데 사람이 다가가자 몸을 일으켜 슬슬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우리는 녀석을 아예 휴양림 정문 밖으로 쫓아낼 생각으로 계속 추격하며 따라갔다. 녀석은 정말로 정문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계장은 동네서 올라온 개로 확신했고 나도 그러기를 바랐다. 따가운 햇살이 계곡을 덮고 있었다.

점심 전에 계장과 데꼬(てこ、지렛대)를 들고 개울에 내려갔다. 배수관에 막힌 바위를 들어내려던 참인데 두 개의 바위가 막은 배수로는 틈으로 물을 빼내고 있었다. 8목(1目은 한 사람이 들 정도의 무게) 정도의 바위는 조금 들썩일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계장은 옆에서 괭이로 흙을 퍼내고 난 삽질과 데꼬질을 병행했다. 금세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안경알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시야가 흐릿하다. 바위는 십여 센티 옆으로 밀어내는 데 진력을 다한 셈이다. 장비를 쓰기로 결론 내고 둑길로 올라왔다.

당직실에서 계장과 도시락을 먹고 나와 그늘에 세워둔 차에 앉아 원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졸음이 밀려오면 한숨 자둘 생각으로 있는데 계장이 다가온다. 닥스가 사무실에 들어와 있다는 거였다. 이런! 맹랑한 녀석을 봤나. 가 보니 과연 닥스는 컴퓨터 의자에 엎드려 몸을 말고 있다. 마치 자기 자리인양 편한 자세였는데 다가가자 눈만 말똥히 뜨고 바라본다.

119 구조대가 물차에 포획 장비를 싣고 달려왔다. 젊은 소방수 둘과 선임 소방수 한 명은 차례로 장비와 케이지를 내리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두 명의 젊은 소방관은 잠자리채 그물망의 녀석을 케이지 넣느라 쩔쩔맨다. 보다 못한 내가 인프런트 킥으로 살짝 닥스의 몸통을 밀어주었다. 그때까지 그물 안에서 몸부림치던 녀석이 케이지 안으로 쏙 들어갔다. 찰나, 반대편 케이지의 문이 열리며 녀석은 쏜살같이 달아났다. 아뿔싸! 주위 사람이 순간 멍한 표정이다. 반대편 케이지의 걸쇠가 풀어져 있던 거였다. 짜증과 화가 났다. 이런 기본적인 일의 순서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다니. 나이 든 상관에게 짜증 난 목청으로 따졌다. 이건 ABC 아닙니까? 기본적인 것을 점검하고 일을 시작했어야죠! 예전 성깔 나왔다면 멱살 잡아 패대기라도 쳤을 거다. 상관은 급작스레 당한 현실이라 자신도 황당한 표정이다. 두 소방관은 닥스가 내뺀 방향으로 몇 걸음 뛰다가 이내 포기한다. 죽기 살기로 도망간 녀석을 쫓아가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경사로를 따라 야영 데크 방향으로 줄달음 치던 닥스는 곧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허탈한 기분이었다. 모두 낙망한 분위기인데 이번엔 계장이 끈을 놓지 않고 한술 더 뜬다. 이왕 출동했으니 모두 함께 따라가 보자는 것이다. 아침처럼 숙소 어딘가에 있다면 포위해서 잡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나머지 사람에겐 잠자리채도 긴 용접 장갑도 없다. 맨손으로 닥스를 잡으려다 물리기라도 한다면 아찔한 얘기다. 근본을 모르는 녀석의 이빨엔 광견병의 싹이 숨었을 수도,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드는 녀석에게 속수무책으로 얼굴이나 샅을 물린다면? 뾰족한 대책은 없으나 일단 올라간다. 상관도 미안한지 허겁지겁 따라간다. 백여 미터를 구보 겸 경보 겸 달렸더니 숨이 차고 이마에 송글한 땀이 맺힌다. 위 편 숙소에 다다를 즈음 건너편 동료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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