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 미아

by 소인

杂文 (238)

미아(迷兒)

저기 있니더! 녀석은 휴양림 도로가 끝나는 임산 도로 입구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제히 그쪽으로 몸을 움직이자 이번에는 위급을 느낀 닥스가 아예 날렵한 뒷다리를 뻗어 경주하듯이 달린다. 곧 녀석은 임산 도로 숲 너머로 사라졌다.

상관은 미안함을 표현하며 다음에 나타나면 연락을 달란다. 그때는 마취총을 쏘아서라도 잡겠단다. 이런... 아까 젊은 소방수와 나누는 얘길 들었다. 처음에 닥스를 놓쳤을 때 젊은 소방관이 마취총 얘기를 꺼내자 상관은 손사래 쳤다. 작은 개는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단 거였다. 그러더니 이번엔 유기견임을 재차 묻더니 마취총을 쓴다는 거다. 이런, 버린 개니 잡다 죽어도 상관없단 얘기다. 허접한 실수도 실수려니와 마취총 얘기에 부아가 끓었다. 주인 없는 개는 죽어도 된다는 평범한 논리를 예사로 들먹이는 상관의 말과 니 편 내 편을 갈라 정의와는 동떨어진 집단 무의식의 잔인함이 겹쳐졌다. 이념의 논리로 애국을 앞세워 동족 간의 비극이 일어난 게 불과 엊그제 일이다. 국가와 사회는 공동체에서 도태된 이탈자, 소수자를 끝까지 보호하는 데엔 인색하다. 다수 이기주의고 폭력이자 횡포다. 약자의 배제는 곧바로 소수자의 눈물과 죽음으로 이어진다. 공정과 정의의 구호는 소수자의 귀에까지 닿지 않는다.

멍청한 소방차가 계곡을 내려가고 땀이 식기 전에 숙소의 침구를 교체하러 올라갔다. 두 집은 이불과 요를 바꾸고 내려오는데 안내실 앞에 택시가 들어온다. 휴양림에 택시가 들어온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길을 잃는 건 모든 걸 잃는 거다. 그러나 대부분은 길을 도로 찾는다. 더러 길을 못 찾는 경우는 다른 길을 택하기도 한다. 궤도 수정은 필요하다. 변화는 삶의 속성이고 성장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지금 가는 길이 내게 맞는 길인가 헛갈릴 때도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길은 제대로 된 길일까. 광속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에서 성공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향해 무한 질주하는 삶의 방식은 맞는 길일까. 양극화로 태생의 조건에서 이미 정해진 삶의 길은 바꿀 수 없는 걸까. 루쉰(鲁迅)은 길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 만든 길이 새로 난 길이고 많은 사람이 그 길을 따를 때 비로소 길은 길이 된다고 했다. 때론 자신을 유기하고 길을 잃어도 좋다. 유기는 새로운 정립이고 비움은 채움의 상황을 전제로 한다. 인문학자 고미숙은 '자의식 혹은 인정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면 존재가 점점 무거워진다. 무거우면 떠날 수 없고, 떠난다 해도 타자와 접속할 수 없다. 감각이 바뀌고 인식을 전환하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그러므로 자의식을 덜어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라.'라고 말한다. 나를 비우고 내려놓는 그만큼 세상이 내게로 온다는 뜻이다. 소유에서 접속으로, 증식에서 생성으로의 삶이 전개되는 것이다.

유기와 미아는 현존재에 대한 불안과 공포이며, 방향의 상실이다. 고독한 개체로 떨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면서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무화된 존재에 대한 저항을 멈출 수 없다. 동물은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만, 동물의 기억과 습관은 인간의 상상 이상이다. 동물행동학에 따르면 동물도 자의식을 가지고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는다. 촉각, 후각 등 인간보다 뛰어난 감각은 인간보다 뛰어난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난파가 예상되는 배에서 뛰어내리는 쥐, 쓰나미를 알아차리고 산으로 달려가는 코끼리 떼, 주인의 집을 찾아 수백 킬로를 여행하는 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일화는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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