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行车 2

by 소인

自行车④

서리가 하얗게 내린 둑길 달린다.
내일은 서울의 체감기온이 영하 이십 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기온은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가장자리의 살얼음 피해 개울 중간에 오리가 모여 있다. 중백로는 얕은 모래 바닥에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는다. 독립생활을 하는 백로도 봄이면 수십 마리가 몰려다니며 짝을 찾는다.

물오리 한 마리가 논을 가로지르며 날아간다. 무리 떠나 홀로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갈매기 조나단은 높이 날면서 땅을 개관할 수 있었다. 먹이를 다투고 짝과 둥지를 얻느라 소란하던 땅의 크기가 실은 손바닥 만하다는 걸 깨닫고 아득히 먼 공중으로 날아갔다. 조나단이 찾은 건 어떤 세계였을까.

포장길 끝나는 곳에서 멈춘다. 개울 건너 직선으로 일 키로 지점에 황 노인의 집이 보인다. 굴뚝에서 가느단 연기가 오른다. 노인의 아내는 칠십 넘어서도 활동적이다. 김밥집 알바를 시작으로 세 군데 방문 요양일로 하루가 빼곡하다. 일하는 게 즐거워서 일을 놓고 싶지 않단다. 어떤 치매 노인은 자신보다 나이가 적다고 했다. 노노케어다. 황 노인은 게으른 게 좋다고 한다. 늦게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화목보일러에 나무 넣는 게 하루일이다. 따듯한 거실의 소파에 누워 야동 채널을 잽핑(zapping)하는 게 그의 취미다. 자는 듯이 세상 떠나는 게 노인의 희망이지만 현실은 골골 백 살일 것 같다는 게 부인의 말이다.

황 노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自行车⑤

얼어붙은 마을.
밤새 어둠을 갈던 고양이 겨울 볕 핥는다. 오래된 교회의 종루 귀먹었다. 고요마저 꽁꽁 언 동네 사라락 사라락 볏짚 씹는 소리. 소들이 방울 만한 눈 굴리며 아침 먹는다. 얼마 지나 노인 떠나면 빈 마을은 소와 고양이 차지. 하나둘 마을 사라지고 풀 우거진 논밭 고라니 뛰놀겠다. 한참을 가도 사람 그림자 한 뼘 보이지 않아. 삶은 보이는 게 다인데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득시글한데 비관적인 믿음이라도 줍는 이 코빼기도 없다.

영하 십사 도.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아침 복면 쓰고 집 나섰다. 몇 행보 가기 전 젖은 입김 얼어붙어 딱딱한 동태가 된 복면 벗고 넥워머 뒤집어쓴다. 밤새 고기 노리다 얼어버렸나. 개울 위 백로 오종종 모여 꼼짝 않는다. 희망하는 삶에 도달하기 위해 소 치는 사람, 하루하루 죽음과 싸우는 쇠락한 노인의 구태의연한 잔소리 기침으로 변해 천방 둑까지 넘어온다.

숨 틀 데 없는 답답함과 막막함과 낭패감을 몸의 율동과 근육의 힘으로 삼아 나 자신을 추궁하며 먼길 돌아 집으로 왔다.

自行车⑥

9일째 자전거다. 두 번은 장거리를 돌았고 보통은 내성천 둑길을 달린다. 왕복 십 키로. 감기 떨어지지 않아 콧물 달고 산다. 집에서부터 쉬지 않고 달리다 반환점에서 팽 코 푼다. 찬바람 속을 달리다 보면 손발은 시려도 등짝에 땀 밴다. 허벅지 근육에 조금씩 힘이 붙는다.

길의 몸을 읽는다. 길은 여자의 몸 같다. 부드럽고 평평하게 이어지다 언덕을 만나면 거침없는 경사가 나타난다. 처음에 고갯길을 만나면 겁부터 났다. 늙은 사내가 젊은 여자를 안을 때처럼 흥분되고 두려운 기분이다. 기어를 꺾어 가며 최대로 근육을 당겨 달리다 한계에 이르면 내려서 걷는다. 숨이 턱에 닿고 근력의 한계가 온다. 불가항력은 사정의 속도를 끌지 못하고 제사날로 절정감 이기지 못해 우물쭈물 여자의 다리 밑에서 미지근한 정액을 쏟아낸다. 깔깔대며 여자가 웃는다. 사내는 급히 시트의 얼룩을 문대고 지구전으로 전열을 정비한다. 총구에 착검한 노병의 마지막 의지가 넘어가는 석양처럼 반짝하고 빛난다.

길은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도 있다. 두툼한 허벅지살 같은 잘 포장된 길은 바퀴가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천천히 페달을 돌리며 허벅지 근육 풀기에 그만이다. 갓길에는 트럭에서 떨어진 뾰족한 돌멩이가 많다. 자전거 바퀴에 잘못 걸리면 낭패다. 요리조리 핸들을 꺾어 피한다. 자동차의 몸에서 빠져나온 나사나 날카로운 유리조각은 치명적이다. 무조건 피하고 본다. 매초롬한 길은 라이딩에 최적이다. 길과 몸이 함께 누워 서로에게 열과 성을 다해 애무하듯 달린다. 풀밭 같은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면서 멀리 들판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과 닮았다.

성애는 자체로 몸의 사랑이다. 포르노는 대상 없는 섹스고 섹스 없는 섹스다. 자본화한 섹스는 성애를 상품화한다. 사랑이 실종된 것은 계산 가능한 자본의 고착 때문이다.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선 느림의 철학이 필요하다. 나태와 게으름이 아닌 사색으로서의 느림이다. 사유 없는 섹스는 전망이 없으며 쾌락의 동어반복이다. 차를 타고 지나간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 보이지 않던 풍경이 나타난다. 절망의 풍경이든 인간 체제의 모순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풍경이든 몸으로 부딪치며 달려든다.

후배에게서 전화다.
여름엔 달리다 녹아버릴 것 같아 자전거를 타지 못했고 가을은 가을대로 지나치고 겨울은 추워서 타지 못했단다. 시장 경제의 불황은 좀처럼 살아날 눈치가 없으며 더 두려운 건 전망이 보이지 않는 거라고 한다. 다른 후배는 다음 달 지구의 모라토리엄이 들이닥칠 것처럼 기를 쓰고 해외여행에 몰두한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성당에서 남프랑스의 와이너리에서 활짝 웃는 그의 얼굴이 톡에서 톡톡 뜬다.

나라 경제보다 개인의 불황이 급선무라는 그녀의 말은 옳다. 삶은 나를 중심으로 출발하고 나의 죽음으로 마감한다. 나 하나쯤 없어도 세계의 경제와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바늘만큼의 흔들림 없는 건 자명한 이치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개인의 전망은 과거와 달리 유동적이다. 개인의 생존과 전망은 철저히 개인에게 달렸다. 각성한 개인들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인데 세상은 사색보다 성과주의와 무한경쟁에 몰입한다.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 양산, 하향 평준화와 소득의 양극화, 경영과 시장 논리의 최우선, 이윤의 극대화, 말초적 유혹과 소비 욕망의 사회, 정신문화의 상품화, 전통문화의 와해와 자연생태계 파괴 요컨대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자유 경쟁은 소수자가 다수자를 착취하기 위한 방편이며, 소수자의 독과점적 지배를 영구히 하기 위한 허울 좋은 속임수다.

자전거의 질주와 제동장치는 급하거나 지나치지 않다.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목표치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의 앞에 행복이 있다는 건 상투화된 관념의 현실이 만들어낸 것이다. 행복은 지금 여기의 사람과 생태 환경과의 조화로운 관계 상태에 있다. 다리의 힘으로 걷는 것과 자전거로 달리는 건 사색을 촉발하는 느림의 동력이다. 알다시피 조화로운 관계와 동떨어진 사색이라면 아무리 걷고 달려도 삶은 피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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