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行车 3

by 소인

自行车⑦

영하 십 도를 무색하게 꺾어버리는 추위가 이어진다. 自行车 타고 집을 나선다. 찬바람에 볼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솜털 장갑의 위력도 맥을 못 추고 핸들 잡은 손이 시리다. 오늘은 석천 계곡을 통과해 닭실 마을 숯골 돌아 북지리를 거쳐 돌아오는 코스다. 등에 멘 손가방에 블루투스 스피커 넣고 음악 들으며 읍내를 벗어난다.

자전거를 타고 오면 오전이 지난다. 씻고 몸 녹이며 점심 챙긴다. 오전 라이딩, 오후 책 읽기는 밤으로 이어진다. 무노동 무임금의 안식월이지만 대체로 만족한다. 예산이 부족하다고 기간제 일자리 우습게 보는 것들은 정신 좀 차려야 한다. 돈이 필요한 이들은 엄동의 추위 속에 알바 구하러 기웃댈 거다. 나라고 정신의 속살 찌우는 데 게으름 피울 생각 없다. 지금은 자전거와 책이면 충분하다. 내가 책에 몰입하는 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나라한 삶의 세계 속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행동하게 된다. 여기서 '앎'은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다. 대상에의 관심과 노력의 결과이다. 소통은 너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말하지 못한 부분까지 읽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블랙커피와 같다. 왜냐하면 밤늦도록 잠들지 못하는 감동의 여운을 주기 때문이다.

앤꼬라고 이름 붙인 자전거 올라타고 달리니 몸이 점점 달아오른다. 흥분한 건 내 쪽이라 등짝에 땀 밴다. 석천계곡을 자전거를 안다시피 해서 통과했다. 청암정 지나 숯골 쪽으로 완만한 경사로를 삼 킬로쯤 간다. 하얗게 서리를 덮어쓴 빈 논의 벼 그루터기가 아침볕에 빛난다. 실처럼 가늘게 흐르던 개울물은 간밤에 흐름을 멈추었다. 산 것이나 사물이나 얼음 방망이로 호되게 내려치듯 얼어버린 풍경에서도 굴뚝마다 연기 피어난다. 이따금 지나는 트럭이 흙먼지 일으키면 장갑 낀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쓰벌, 라이더 만나면 좀 살살 달리지. 갓길 없는 시골길에서 뿌려놓은 모래는 위태하다.

숯골에서 북지리 넘어가는 고갯길 빼고 나머지는 줄곧 앤꼬를 타고 갔다. 다리가 튼튼한 그녀는 쌀 한 가마 무게인 내 몸을 안전하게 받쳐준다. 큰길에 나와 지림사에 들러 마애여래좌상의 미소를 살폈다. 절간의 개가 하도 요란하게 짖는 통에 쫓기듯이 빠져나왔다. 읍내로 내달리다 라이딩의 포만감이 덜해 천방길을 휘감아 집으로 돌아왔다. 세 시간의 라이딩이다.

自行车⑧

루쉰(鲁迅)은 소설 ‘고향’에서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많은 사람이 걷는 길은 고통받는 타인과의 동행도 자신의 삶에 대한 진중한 사색도 아닌 돈의 길이다. 노동력만 제공했던 초기 자본주의에서 한 발 나아가 자본의 노예가 된 인간의 상황은 물질이 신앙의 숭배 대상이 되었다. 인간의 가치는 재력의 유무로 전락하고 자본의 힘을 맛본 사람은 자본을 대물림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게 삶의 목표가 되었다. 인간의 문명과 문화, '잘 살기' 위해서는 자본과 생태 우주의 생물과 무생물 모두는 몸과 마음을 바쳐 인간 세상에 봉사, 희생해야 한다는 게 지고의 가치관이다.

오늘은 해저리(바래미 마을)를 거쳐 독점 수식을 지나 예전 처가가 있던 두문리(구미 마을) 코스의 라이딩이었다. 삼일운동이 일어나던 해 전국의 유림이 작성한 파리장서는 파리 만국 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을 청원하기 위한 거였다. 봉화의 관광 코스도 아닌 까마득히 지나간 역사다.

은어축제 송이축제로 일 년에 두 차례 떠들썩한 축제가 열려도 역사 유적은 돌아볼 틈이 없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건 궁금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좋은 사람과 어울려 튀어 달아나는 통통하게 살 오른 양식 은어를 맨손으로 낚아채 썰고 지지고 구워 미각을 즐기는 것. 삶의 도락은 식색본성이라 했거늘 먹고 마시고 색을 쓰는 일 어찌 아니 즐거우랴. 좆 대가리 만한 일등품 송이 잘게 잘게 찢어 입안의 풍미 맛보지 않고 어찌 이 살맛 나는 세상 논하리오다.

이정표는 길 위에서 방향을 알린다. 지나치는 객에겐 목적지로 가는 손짓이지만, 그곳에 살았거나 그곳의 기억과 사람의 흔적을 느끼는 이에게 이정표가 가리키는 지명은 특별하게 새겨진다. 사는 동안 사람은 숱한 이정표를 만난다. 자신의 철학과 의지로 이정표를 만나고 길을 잡는다. 길이 끊어진 곳에서 산을 타기도 하고 새로 길을 낸다. 더러 길 꺾거나 지우고 돌아가도 길은 이어진다. 인간은 길의 의미도 모르면서 그저 아득한 길을 가는 존재다. 길의 의미는 삶의 의미와 닮았다. 지나치면 잊힌다. 보고 느끼는 것도 사유의 그릇만큼이다. 지금 가는 길은 더 이상 오지 않을 길일지 모른다. 장소와 기억은 오래 되풀이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가는 길마다 눈물겹다.

고개 세 개를 넘으니 세 시간이 걸렸다. 나라를 안아 잔디밭에 내놓고 커피 끓이고 책 폈는데 눈에 들오지 않는다. 늙은 개는 간신히 몸 일으켜 물만 먹는다. 의식은 또렷한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더 쉬었다가 우유라도 사 와야겠다.

自行车(11)

도덕 교사들은 너무나 기꺼이 만인에 대한 처방전을 주려한다. 일반화할 수 없는 것들까지 일반화하려 하기 때문에 도덕이 항상 기괴한 모습을 띠는 것이다. 오히려 도덕의 역사 자체는 그런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대와 역사, 종족과 문화에 따라 수많은 선악의 기준들이 존재해 왔다. 우리가 보편적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들은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시대, 우리 문화에 한정된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톺아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도 긴 선의 점에 불과하다. 먹고사는 일과 생각하는 삶의 의미도 딱 부러지게 정의하는 게 가능할까. 앞서간 사람의 삶과 생각을 그러모아 읽고 사유하고 내 삶의 동기로 만드는 것. 실험하고 깨치는 과정만이 삶에서 자유로운 나를 세울 수 있다. 정형화되거나 습관으로 굳어져 마치 흔들림 없는 진리처럼 판에 박은 생각과 가치관으로부터 자유하는 삶.

식구들 자기 방에서 아직 꿈자리 개키지 않을 무렵 일어났다. 고양이걸음으로 화장실 주방 오가며 씻고 밥 먹었다. 오늘은 좀 더 멀리 나가기로 한다. 낮 기온 오른다니 가볍게 입고 나간다. 동네는 희붐한 안개에 잠겨 기척이 없다. 휴일 아침 적요한 공기가 얼굴에 끼친다. 자박하게 녹은 눈이 도로 언 길을 내려간다. 온몸이 선득하게 추위를 느낀다. 집에 돌아가 두꺼운 윗도리 입고 나올까. 아니지 언덕길 조금만 오르면 열이 날 텐데. 내처 큰길 쪽으로 달린다.

한전 지나 마트부터 죽 언덕이다. 주유소 부스에 부지런한 나이 든 주유원이 앉았다. 낑낑대며 오르는 중이라 아는 체하기 버겁다. 멈추면 관성도 따라 멈춘다. 오백여 미터의 고갯길이다. 인도를 타고 가야지. 야트막한 경계석 주변이 온통 빙판이다. 살짝 방향을 틀어 인도로 오르다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왼편으로 넘어졌다. 이런, 초장부터 무슨 꼴이람. 일어나 다리를 턴다. 저 아래 주유원이 보았을까. 보라지. 다친 덴 없는 것 같다. 넘어져도 잘 넘어져야 덜 다친다. 억지로 중심을 잡으려고 팔다리를 허우적대면 기형적인 자세가 된다. 그대로 땅에 몸을 붙이는 자세로 미끄러지는 게 낫다. 측방 낙법이다. 다시 저단기어 넣고 오르니 장거리 라이딩은 무리란 판단이 든다. 고개를 넘어 어제 코스를 역으로 타기로 한다. 고갯마루까진 아직 멀었다.

삶이란 완결된 열정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열정을 구사하는 데 있다. 삶과 우주적 열정이 인간의 영원한 자기 극복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삶에게 완성된 시간과 장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 있을 것이다. 우연히 던져진 존재는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삶의 열정은 삶의 의미 찾기다. 의미 없이 매 순간 열심히 산다는 건 게으름이고 자기기만이다. 그런데 실은 먹고살기에도 지친 사람은 몸이 생각을 따라주지 않는다. 가여운 삶이다. 시간이 남아돌아도 취향에 따라 즐기는 삶의 모습은 다양하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도 낭비하지 않는 여가는 즐길 수 있다. 마음에도 없는 자리에 나가 지루한 대화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자기만의 고독에 빠지는 게 낫다. 고독은 무리로부터의 소외나 배제가 아닌 자신을 돌아보고 바람과 햇볕 속에서 아니면 어둠 속에서 실존의 의문과 성찰을 도모하는 소중한 감정이다. 집과 차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의 주변을 돌아봄 없이 자기 삶에 대해 하나도 설명하지 못하면서 무턱대고 열심히만 살면 삶의 의미와는 점점 멀어진다.

원래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 시장에서 비싼 값을 받는 것이 아니라 비싼 값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고귀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왜 그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과 지금 하는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살아온 경험이 그의 실존이기 때문이다. 천지개벽하듯 갑작스러운 변화는 여간해서 찾아오지 않는다. 게으름뱅이가 떨어지는 홍시를 얻을 수 있는 것도 그가 방에서 나와 감나무 아래 종일 입 벌리고 누운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는 여유로움이나 한가함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풍경 좋은 경치를 감상하거나 아름다운 해변의 휴가지에서 힐링을 얻어 돌아온다. 그러나 현실은 힐링 이전과 다르지 않다. 다시 치열하게 사는 일뿐이다. 현실의 구조적 문제의 해결 없이는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나의 힐링이 삶의 방향과 의미에서 진일보하려면 힐링에서 얻은 성찰을 현실에 대입해야 한다. 부조리한 인간의 상황에 분노하고 저항할 때 변화는 따르는 것이다. 돌아서면 고통스러운 낮은 온도의 앎과 힐링은 쾌락과 닮았다. 뻔하고 진부한 힐링에서 벗어나 삶의 실존적 상황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고개에 오르니 열이 난다. 이제부터 내리막과 평지다. 핸들을 움켜쥐고 내려간다. 길 한쪽은 사과밭이 이어지고 반대쪽은 다랑논이 등고선 따라 펼쳐졌다. 응달엔 눈이 그대로 쌓여 얼었다. 오늘 라이딩에선 슬라이딩을 조심하기로 긴장한다. 오들오들 떠는 가로수 밑을 바람을 일으키며 지난다. 마주오는 차들이 중앙선을 밟으며 피한다. 차가 일으킨 바람이 차다. 장갑으로 얼굴을 가린다. 구름이 두텁게 덮인 하늘에서 가느단 빛이 내려온다. 노란 고양이 길 건너려다 날 보고 몸 웅크린다. 블루투스에서 음악이 조용히 흐른다. 평지에선 기어를 최대치로 높이고 꾸준히 페달을 돌린다. 이십삼 일째 라이딩이다. 허벅지 근육 단단해졌다. 이 나이에 체력 향상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근육이 헤실하게 풀어지는 걸 조금 늦춰보자는 거다. 조금 더 움직여 보고 싶은 걸 보자는 거다. 사람도 장소도 바람과 햇살과 풍경을 조금 더 만나자는 거다.

자기 삶을 사랑하는 자만이 자기 삶을 아름답게 창조할 수 있다. 자기 삶을 부정하는 자는 탈주할 때 고통이나 분노의 울분을 토한다. 그러나 자기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탈주하는 자, 탈주하는 방식으로 자기 삶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재창조를 위해 기존의 삶을 허무는 자는 탈주하면서도 콧노래를 부를 수 있다. 길가 정자에서 쉰다. 하천과 논밭에선 작년 한 해 동안 쏟아부은 퇴비와 비료 농약 냄새가 난다. 오염된 물에서 오리 떼 떠다닌다. 하천이 정비되면서 농사가 편해지고 둑길 넓어졌지만 물길 더듬어 살던 것들이 죽거나 떠났다. 인간이 편할수록 사람 살기에 좋을수록 나머지 생태종에겐 치명적이다. 땅심을 약탈하는 농사로 땅과 물길은 뒤틀렸다. 그 한가운데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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