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行车 4

by 소인

自行车(12)

남도에 다녀오기로 했다. 대충 짐 꾸리고 늦은 오후 봉화역에서 밀양 가는 기차를 탄다. 밀양의 밤길 더듬어 숙소를 찾고 다음날부터 남해를 향해 라이딩이다.

여행은 낯선 것과의 부딪침이다. 관조나 평정심의 상태가 아닌 충격 자체다. 사람 사는 일이야 거기서 거기다. 우리나라 도시나 마을의 모습은 판에 박은 것처럼 닮은꼴이다. 개발의 속도가 균일한 까닭이다. 낡은 집과 건물, 좁은 골목과 길은 사라졌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만 사라진 게 아니라 흔적도 깡그리 밀어부쳤다. 그러나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라진 게 아니다. 수세기 전 살았던 사람의 입김과 육신이 썩어 문드러져 풍화한 곳에 바람이 불고 땅은 들썩인다. 육탈 된 정신의 흐름은 하나둘 살아나 떠돌거나 머문다. 건물의 껍데기와 농약으로 범벅된 땅을 파고 뒤집으며 파멸로 가더라도 오래된 것들과 함께 삶을 꾸린다.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살아온 그 사람의 삶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겪어 지나온 집단의 역사가 그 집단의 정체성이다. 과거와 현실을 성찰하고 반성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존재가 인간이다. 하나하나의 상황과 삶에 가치를 부여하며 자신의 삶을 도모하는 게 인간이지만 실은 모든 게 순기능으로 흐르는 건 아니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뉘우치지 않으며 더한 패악의 길로 들어서는 것 또한 인간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지니고 부정성의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은 절망을 넘어선 것의 실체를 본다. 어리석고 유한하고 탐욕한 욕망 덩어리인 인간의 결말은 죽음이라는 적멸이어도 지금을 사는 고통스러운 열정을 포기할 순 없다.

눈발이 날리는 오후 집을 나섰다.
호기롭게 언 손 불며 봉화역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봉화서 밀양 바로 가는 기차는 없단다. 순진하게 경부선 노선만 본 거였다. 역무원은 영천 가서 동대구로 가고 다시 밀양 가는 기차 타야 한단다. 올밤 안으로 밀양에 닿을 수 있을까. 볕이 빽빽한 땅. 밀양(密陽). 남천강과 영남루가 있는 약산 김원봉의 고향. 밀양아리랑...

自行车(13)

오랜만의 기차 타기다.
결국 영천에서 동대구역으로 갈아탔다. 퇴근 무렵이라 직장인과 학생들이 많았다. 포항으로 대구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왁자한 역 구내에서 자전거를 접고 펴며 이동했다. 느릿하게 어둠에 잠기는 도시와 시골 마을을 보며 좁은 땅에 넘치는 빛을 느꼈다. 그 빛은 희망도 꿈도 아니었다. 짪은 시간에 역사의 골짜기를 빠져나온 정신없음의 도가니였다. 누구라서 삶의 방향과 가치를 정의하거나 개념 짓지 않았다. 전쟁의 폐허와 가난 탈출이라면 악마와도 손잡고 달려야 했다. 출세와 성공이라면 양잿물도 마시고 뛰었다.

영천에서 내리려고 출입문에 섰다. 여자가 자전거에 관심을 보인다. 접이식 자전거를 설명하고 남쪽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함께 여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한다. 순간 없는 머리칼이 곤두섰다. 이빨 사이가 듬성한 여자의 물색없는 호감이었다. 여행은 혼자 할 때가 제맛이라며 자전거 설명에 집중하니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는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기다리니 동대구행 열차가 금방 온다.

무전여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흘 밥을 굶기도 하고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공사장 잡역부로 일하다 돈 모아지면 다른 지방으로 떠났다. 훔친 자전거로 포항에서 영월까지 올라갔다. 나무를 주워 삶은 국수를 강물에 씻어 먹었다. 소금 없어도 꿀맛이었다. 어릴 적 숱한 가출을 감행하던 비행 소년은 머리 꾸덕하게 말라도 역마살은 그대로였다.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돌아다녔다. 세상 밖으로 나가 세상 구경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게 나였다.

스무 살이 되어 본격적으로 만난 세상은 내게 불친절했다. 결락된 자의식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세상을 떠돌았다. 주변인, 국외자, 경계인이 주된 화두였으나 도대체 세상의 속살과 그것의 정체가 궁금했다. 늦게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이후로도 막노동과 고물장수, 중선배 선원, 벽돌공장을 전전하다 한 여자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도시로 숨어들었다. 그게 나였다.

밤에 보이는 불빛은 모텔 술집 병원과 교회 십자가다.
삶의 집약이다. 생로병사다. 집 없는 사람은 모텔에서 사랑을 나누고 술 마신다. 아프다 죽으니 종교 또한 필요하다. 죽어서 지옥 가고 싶은 이 있겠는가. 허방 지방 살아도 사후 보장이라면 삶은 코미디다. 난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지 않는다. 종교적 신념에 따라 확신을 가지는 건 그들 자유이다. 생명의 살아 있음도 죽음도 철저히 실존적 사건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여기에서 저기로 탈주하고 움직인다. 그게 삶이다. 이동하면서 가치와 의미를 캐는 게 인생이다. 많은 사람들이 덜컹대는 밤 열차를 타고 달린다. 유리창에 어른대며 환영이 비친다. 미래의 꿈인 듯 무덤 위 천정의 불빛인 듯 헷갈린다. 희미한 초점을 모아 집중할 찰나 기차는 터널 속으로 빨려간다. 무간지옥의 비명이 고막을 찌른다.

自行车(14)

인생은 예단하기 어렵다.
격변하는 시대엔 더욱 그렇다. 역사는 우연성과 시대적 상황과 인간의 의지가 작용하지만 의지에는 세계관이 개입한다. 기회주의자의 의지도 그의 가치고 세계관이다. 자신만 살아 나오는.

산소 옆 논밭 여덟 마지기를 부치던 아버지는 가뭄과 흉년에 먹고살 길이 막막하자 오 리 떨어진 부잣집에 찾아가 통사정하여 닷 마지기 밭을 소작 얻어 부쳤다. 해마다 가을이면 둘째 형 무희는 지게에 도지로 낼 쌀섬과 집에서 아껴 기르던 씨암탉을 지고 부잣집으로 향했다. 그걸 본 어린 동생은 훗날 커서 큰사람이 되리라 다짐한다.

세월이 지나 어린 동생은 총과 탱크를 앞세워 대통령이 된다. 부잣집 셋째 아들은 천하디 천한 가난뱅이 출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기가 몹시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사석에서는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며 무시했다. 급기야 부잣집 셋째 아들은 야당으로 돌아선다.

어린 동생은 박정희고 셋째 아들은 미군정 때 수도경찰청장을 하고 이승만 밑에서 국무총리까지 한 장택상이다. 장택상의 아버지 장승원은 독립 군자금을 대 달라는 독립군의 제안을 거절한다. 게다가 일본 경찰에게 밀고하려다 독립군 암살단에 의해 민족 반역자로 처단되었다. 장택상은 그런 이유로 독립투사에 대한 개인적 원한과 증오를 품고 살았다. 판서를 지낸 할아버지와 경상도 관찰사를 뇌물로 산 아버지, 자산가인 형은 소문난 탐관오리에다 악질 부호였다. 그런 장택상이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김원봉의 체포 명령을 내리고 모욕을 준다. 나중에 김영삼과 김대중은 그의 밑에서 비서나 대변인으로 정치와 인연을 맺는다.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 1898~1958)은 독립운동가요 북한의 정치가다. 의열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일제 수탈 기관 파괴, 요인 암살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하였다. 광복군 부사령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을 지냈고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하여 노동상, 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출생지가 경남 밀양(密陽)이다. 백범 김구보다 높은 현상금을 걸 정도로 일제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런 그가 해방 후 장택상의 사주를 받은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수모를 당하자 월북한다. 한국전쟁 때는 친동생 네 명과 조카 다섯 명이 보도연맹으로 몰려 학살되었고 부친은 쫓기다 굶어 죽었다. 그의 사망은 김일성의 숙청설이 있지만 확실치 않다. 남에서는 빨갱이로 북에서는 국민당 장제스의 국제 간첩으로 몰린 그의 최후가 참담하다. 독립투사가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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