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行车 5

by 소인

自行车(15)

찜질방에서의 장점은 원하는 대로 몸을 씻을 수 있다는 것. 단점은 잠을 설친다는 거다. 잠은 오롯이 나의 무의식과 만나는 휴식이다. 옆 사람의 코 고는 소리나 내막을 알 수 없는 소음은 무의식의 길을 끊어버리곤 한다.

네 시부터 잠 깨어 핀둥거렸다. 여섯 시 반에 샤워하고 찜질방을 나섰다. 손이 시리다. 밀양강변의 영남루를 보고 시내로 들어갔다. 이른 시각이라 여행 안내도를 구할 데가 없다. 편의점에서 요기를 하고 시청으로 갔다. 출근하는 공무원들이 잰걸음으로 들어선다.

自行车(16)

멀리 떠나오니 곁에 있던 것들 새삼스럽다. 이별 연습은 자주 할수록 좋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충격과 고통이 깊게 새겨진다. 그렇다고 해도 이별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다. 죽음도 이별도 삶에 상존하는 거라 믿고 살지만 실재하는 현실에 부닥치면 뜻밖의 슬픔에 가슴은 터지고 만다.

봉하마을에서 그런 아픔을 보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현실 정치에서의 실망감에 비판적이 되었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발목을 조이는 정치판의 현실은 높은 이상도 갉아먹는다.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다를 게 없다. 그가 세계 경제는 물론 우리나라 경제를 쥐고 흔들 순 없다. 누구라도 그럴 거다. 다만 처음의 신념을 흔들리지 않고 지킨다면 굶어도 배부를 거다.

사람을 평가하려면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보면 안다. 이명박도 박근혜도 살아온 길로 따지면 정권을 잡지 말았어야 옳았다. 하지만 대중은 경제를 꽃처럼 확 피워주리라 기대했고, 가난 탈출에 신명을 바친 아버지의 뜻을 딸이 이어 줄 것을 믿었다. 후보에 대한 이성적 비판보다는 감정적 접근이 불의한 정권을 연달아 탄생시켰다. 그이들이 살아온 궤적을 차가운 이성으로 톺아봤다면 벌어지지 않을 불행이었다.

밀양에서 만난 의열 기념관. 사대강의 물길을 막아 자전거길 만들었다고 개다리 흔뎅이며 거들먹댔던 전 대통령. 말도 안 되는 기막힌 정신없음으로 국정을 조져놓은 사이코 패스적 인물의 말로가 차디찬 유치장 바닥이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낙동강의 강바람 맞으며 자전거 팻말 앞에서 오줌 갈겼다. 그리고 사람 사는 세상을 보려다 역사가 되고 만 전직 대통령 앞에 술 한잔 따르지 못한 게 내내 맘에 남는다.

밀양강의 찬바람 맞으며 종일 다녔더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하다. 신채호 선생은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고 했다. 시대가 바뀌고 땅과 물이 썩어도 이 땅에 뜨거운 입김을 토하고 간 그들의 시대정신이 남았다. 출세와 성공에, 일신의 안온함에 눈멀어 그들의 정신을 놓친다면 어둑한 진창길만 남게 될 거다.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라. 살며시 숨을 참고 귀담아 보라. 생살이 찢기고 피울음이 터지는 산하의 곡성 여전하다. 그걸 기억하지 못하면 역사는 보복의 가르침으로 나타난다. 내일도 아픈 기억의 장소를 찾아 페달을 밟아본다. 낯선 고장의 밤 깊어간다.

自行车(17)

봉하마을 옆 진영에서 하룻밤 자고 진해항으로 나갔다. 이런... 뱃길은 몇 년 전에 끊어졌단다. 여행의 묘미는 의외의 만남과 상황.
창원 터미널에서 거제도 가는 차표를 끊었다. 버스 타고 섬으로 간다.

自行车(20)

통영 터미널에서 내려 관광안내도를 챙긴다. 늦은 오후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 흩어지고 버스는 마산으로 떠났다. 거제도에 오래 머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 다시 거제에 올 수 있을까. 길은 사람이 오가야 하는데 전용도로는 순전히 차와 물자를 위한 도로다. 터널길에 자전거가 막힌다. 의뭉스러운 너구리처럼 그새 모르는 굴 뚫어놓다니. 몸만 가고 마음은 두고 가기로 한다.

내리막길 내려오는데 자꾸 핸들이 틀어진다. 멈추고 바로잡아도 다시 비틀린다. 이상하다 싶은데 이런... 펑크였다. 바람 줄어든 바퀴는 홀쭉해진 젖 마냥 볼품없이 쭈그러든다. 이대로 계속 주행은 불가다. 속이 다급하게 탔다. 조금 있으면 날도 저물 텐데 이 노릇을 어찌할까.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낭패의 상황이 빨리 온 듯했다. 날 어두워가는 것 빼곤 초조히 굴 것도, 서둘 것도 없다. 다만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끌게 된 상황이 난감할 뿐이다.

코브라 목처럼 납작해진 flat tire를 끌고 계속 걸으며 자전거포를 찾았다.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펑크용 팻치를 비상용으로 챙겨 왔지만 어디까지나 응급처치고 땜빵은 전문가의 손길이다. 길 어둬지고 바람 찬데 퇴근하는 차와 사람으로 시내는 짭조름하게 붐볐다.

지나는 할머니에게 물으니 나만 따라오란다. 뜨악한 마음에 되물으니 가는 길에 자전거포가 있다는 거였다. 구세주를 만난 경우란 이런 걸 두고 하는 거다. 춘향이 따라가는 방자처럼 할머니를 종종 따라갔다. 얼마쯤 가니 정말 그림 같은 자전거포가 등장했다. 실은 고물 난 자전거의 잔해가 팔 따로 다리 따로 너저분하게 쌓인 작은 가게였는데 내겐 꽃 피고 꿀이 흐르는 초원 한가운데의 자전거 가게였다. 안에 고개 디밀고 부르니 눈이 딴 데를 보는 것 같이 생긴 주인이 느적느적 나온다. 펑크라니 망설인다. 지금 어디 가야 한단다. 실 웃음이 나왔다. 어딜 가기 전에 펑크 때우고 가라며 웃었더니 비실비실 연장 챙겨 나온다.

자전거 펑크 작업은 손이 많이 가는 만만찮은 일이다. 바퀴를 비틀어 튜브를 빼야 한다. 구멍 난 곳이 보이지 않으면 대야의 물에 튜브를 돌려가며 담가 기포가 나오는지 점검한다. 찬물에 손 넣고 한 바퀴를 돌리고서야 공기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왔다. 반가운 한숨이 나왔다. 눈이 딴 데를 보는 사장은 느릿느릿 움직임이 굼떴는데 손길은 야무졌다. 구멍 난 주위를 쇠톱 날로 살살 문지른다. 예전엔 사포로 문댔다. 본드를 수건 쓴 여자 클렌징크림 바르듯 골고루 바르고 팻치를 붙인다. 눈 딴 데 사장은 짧고 투박한 손으로 섬세하게 움직였다. 면장갑으로 타이어 안쪽을 더듬으며 펑크의 정체를 찾는다. 한 바퀴 돌리고야 찾아냈다. 놈은 가시였다. 그것도 아카시나무 가시. 눈 딴 데는 가시를 빼서 내 손바닥에 올려준다. 이제 튜브를 넣고 공기를 주입할 차례. 타이어를 빙빙 돌려가며 튜브를 끼워 넣는다. 난 서서 눈 딴 데가 돌릴 때마다 자전거를 들어주었다.

눈 딴은 튜브를 다 끼워놓고 공기를 채웠다. 잠 깬 사람처럼 가게 안쪽에서 컴프레서가 부릉 돈다. 단단히 공기를 채우고 나니 긴장이 풀어진다. 눈 딴에게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모임이라고 했다. 술자리 모임인지 씩 웃는다. 난 마음을 담아 고맙다며 셈을 치렀다. 눈 딴은 낼 떠나냐고 물었다. 난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낼 부산 쪽으로 간다고 했다. 손을 흔들고 초원의 자전거포를 경영하는 눈 딴과 헤어졌다.

치료받은 자전거는 정신 차린 군인처럼 쑥쑥 잘 나갔다. 펑크는 자전거에게 예삿일이다. 오늘은 무탈히 넘겼지만 안전과 대처가 중요하다. 특히 도로에서 자전거 타기는 길 건너기와 갓길 주행의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찜질방 근처에 있다는 윤이상 기념관의 이정표가 멀리 나타난다. 목적지가 가까운 거다. 발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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