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行车

by 소인

自行车①

끝물 감기를 달고나섰다.
봄날 같이 푹한 날씨지만 미세먼지로 뿌옇다. 소읍 외곽을 돌았다. 마스크 끼니 안경에 김이 서려 벗었다. 바람이 쉭쉭 얼굴에 끼친다. 차로 스치던 풍경이 조금씩 다가온다. 느릿한 움직임은 지체가 아니라 사색의 발견이다. 빠르게 지나치면 풍경의 의미를 놓친다. 속독보다 정독이 남는다.

로드 킬. 죽은 고라니가 길가에 누웠다. 인간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동물은 목숨을 건 이동을 한다. 물오리는 똥물에서 용케 버틴다. 냄새나는 마을 피해 다녀도 마주친다.

두어 시간 라이딩에 등짝에 땀 배고 온몸에 열 오른다. 점심 거르고 들오니 쑤시기 시작한다. 제동장치 손보고 짐받이 달았다. 낼은 좀 더 먼길을 돌 생각이다.

自行车②

여덟 시에 나왔다.
푹한 날씨지만 아침 공기가 차다. 두건을 쓰고 귀를 가렸다. 읍내 벗어나자 고바위를 만난다. 다리 근육 끊어지도록 페달을 밟다. 내려서 끌고 간다. 차가 씽씽 지나간다. 시골길은 인도가 없다. 시야를 위해 역주행한다. 점점 오르막이다. 완만한 경사가 더 고역이다. 앞으로 갈수록 해발고도가 높아진다.

7654321 기어 단수를 내린다.
긴 오르막은 고통이다. 돌아오는 길은 내리막의 쏜살같음을 즐길 거다. 그러나 오르막은 삶의 도처에 도사린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듭하다 삶은 '불시에' 끝난다. 자동차 전용도로의 차들이 휙휙 달린다. 옛길은 고요하다. 빠르게 닿기 위해 길을 펴고 넓힌다. 의미의 무게보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달리는 게 생산적인 사회다. 사람이 다니는 인도는 없거나 사라진다.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건 인권은 다음이란 얘기다. 인권이 사라진 곳엔 동물도 생태도 뒷전이다.

법전면 길가에 진주 강 씨 법전 문중의 기와집이 눈에 뜨인다. 태백 오현(太白五賢)이 교유하던 강흡(姜恰)의 이오당(二吾堂)이다. 정묘호란의 치욕을 견디지 못해 은둔한 다섯 선비가 태백 오현이다. 강흡은 사후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오항녕 교수는 역사는 우연성, 시대적 상황과 인간의 의지가 작용한다고 했다. 당시 명나라에 대한 충절이 시대적 상황이고, 그것을 기렸던 그들의 의지는 이해하겠다. 하지만 이어진 실학파의 열정을 꺾은 왕조와 실세들의 세계관은 무엇이란 말인가. 구한말의 혼란과 부패, 나라의 상실로 이어진 역사는 볼 때마다 주먹을 쥐게 한다. 법전 강 씨 문중에선 조선 시대에 개울을 사이에 둔 형제 집안에서 과거에 급제한 후손이 스무 명이 넘었다. 지금도 자손들은 자부심으로 여긴다.

오래전 알게 된 강백기 선생도 법전 강 씨다. 술을 하도 좋아해 말년에는 들지 못하는 선생의 만산고택(晩山古宅)이 있는 춘양면 지나 영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봉화보다 맑은 물을 옆에 끼고 달리니 태백산사고지 터가 있는 각화사(覺華寺) 팻말이 나타난다. 임진왜란 이후 왕조실록을 묘향산과 오대산 등으로 나누어 보관해야 했던 힘없는 나라 조선의 현실이 오늘과 다르지 않다.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의 핵무장은 덮어놓고 우리 민족끼리 분단 체제를 말하는데 미국의 눈치를 보다니. 신채호 선생이 들었으면 불같이 노했을 거다.

주말이어도 겨울이라 길은 한산하다. 좔좔 물소리가 시원하다. 서울에서 휴가 때 아이들과 물놀이하러 왔던 개울이 나타난다. 운곡천 상류다. 종일 갈겨니(피라미) 낚시하며 놀았다. 처가에서 병을 앓던 막내 처남도 데려왔었다. 우린 노느라 정신 팔려 너럭바위 위에 그늘도 없이 앉혀놓았던 어린 막내 처남을 까맣게 잊었다. 나중에 볕에 발갛게 살이 익은 처남을 보고 내내 죄지은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어린 처남은 조카들 보고 웃어주었다. 막내 처남은 시설에서 스무 살을 넘기고 죽었다.

반 선생의 집이 보인다. 서울에서 내려와 도예연구소를 짓고 근동의 주민에게 도예를 가르친다. 청량산 축제 때 처음 알았다. 매년 제자들의 작품을 들고 와 전시하고 판매도 한다. 술도 세다. 드러내진 않지만 자기 세계가 확고해 보이는 도예가다. 집을 나설 때부터 들르기로 작정한 코스다. 사과나무 과수원 사잇길로 들어서는데 무릎 위쪽의 근육이 통증과 함께 쥐가 났다. 자전거에서 내렸다. 걷기가 힘들다. 간신히 걸음을 뗀다. 전문 라이더가 아닌 데다 십 년 이상 쉬던 근육을 무리하게 썼으니 당연하다. 나이가 느껴진다. 잘 지은 삼층 건물이 과수원 위쪽 솔숲을 등지고 겨울 한낮의 볕을 쬐고 있다. 건물과 붙은 주택 마당에서 한참을 불러도 기척이 없다. 백구가 낯선 이를 보고 왈왈 짖다 눈치만 살핀다. 담배 한 개비 피우고 돌아섰다.

석문동으로 가는 참새골 입구에 서넛의 식당 간판이 오종종 모였다. 묵밥 집과 순대국밥이 어서 오라고 손짓이다. 그녀와 자주 먹던 순대국밥이 생각나 가까이가니 일요일엔 쉰다. 상대가 굳이 마다하지 않는 메뉴라 좋아하는 순댓국을 고르지만 피천이 넉넉지 못한 나로선 최상의 선택이다. 나라고 그녀에게 크림 스파게티나 생선회 정식 사주고 싶지 않겠는가. 메뉴보다 함께하는 공간에서 깍두기 집어 아삭 깨무는 모습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아쉬운 눈길 두런대는데 중국집이 나타난다.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주인과 말을 섞다 보니 반 선생이 자주 들른단다. 어제도 왔었단다. 책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에세이집을 자주 읽는단다. 잘됐다 싶어 배낭에서 후배의 시집 두 권을 꺼냈다. 한 권은 반 선생이 들르면 드리고, 한 권은 선물로 주었더니 눈이 커지며 고마워한다.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고 한다. 혹여 내가 산문집을 내면 기억했다가 드린다고 했다. 사인해달라며 기뻐하는 주인의 얼굴 보니 책은 읽는 사람에게만 보약이 맞다. 뒤통수에 대고 연신 인사하는 중국집을 뒤로 다시 길 나섰다.

서벽 삼거리. 주실령(舟實嶺) 넘어 봉화 물야면 가는 길과 영월로 넘어가는 길이다. 옛날 춘양 서벽 장과 물야면 오전리 후평장을 보던 봇짐장수(褓負商)가 주실령을 넘었다. 백두대간 수목원이 나타난다. 생태숲을 보존하는 건 맞지만 인공으로 뒤발해 꾸며놓고 수목원이라니. 처음엔 호랑이를 들여다놓아 한 마리는 죽었다. 백두대간의 상징이라고 구경거리로 동물을 데려다 무슨 짓인가. 울타리엔 미국산 스트로브잣나무를 빼곡히 심었다. 토종 잣나무를 심었어야 옳을 일이다. 겨울에도 방문객이 전기차를 타고 돌아다닌다.

주실령으로 가는 길은 계속 오르막이다. 짧은 평지가 나오면 페달을 밟고 오르막길이 나오면 내려서 끌었다. 대퇴부의 근육에서 통증이 밀려온다. 전문 라이더라면 쉽게 오를 수 있는 길도 벅차다. 나이가 느껴진다. 그보다 근력을 키우지 못하고 의욕을 앞세운 라이딩에 후회막급이다. 하지만 어쩌랴.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나왔다. 밤길을 더듬어서라도 오늘 안으론 돌아가겠지 하고 생각하니 외려 맘이 가볍다. 주위 풍경이 낱낱이 눈에 잡힌다. 골안 솔수펑이에는 눈이 새하얗다. 산새가 쭈뼛대며 가지 사이 소란스럽다. 고통도 풍경도 살아 느끼는 것이려니 생각하니 눈물겹다. 모든 것이 유의미하기도 허망하기도 하다. 속된 욕망의 덩어리로 무망(無望)한 삶을 바란다는 게 욕심 이리라.

나무를 높이 실은 산판 트럭인 GMC가 연신 오르내린다. 지에무씨로 불리는 트럭은 한국전쟁 때 미군의 M602가 남아 산판의 강자로 군림했다. 강원도나 봉화 산판에서 몇 대 남아 있다. 힘이 좋아 험한 산길에서 그르렁거리며 노익장을 뽐낸다. 사진에 담으려고 요란한 소리가 나면 자전거를 세우고 찍느라 몇 번이나 멈춰 섰다.

정상에서 헬멧을 고쳐 썼다. 급경사에 온통 모래를 뿌려놓아 위태하다. 주변 산자락에선 나무 베는 기계톱 소리가 웅웅댔다. 영림단 시절 기계톱 들고 산등 넘던 기억이 떠올랐다. 도로 공사하는 모닥불 쬐던 인부가 조심하라고 소리친다. 걱정해주는 마음이 고마워 손 흔들고 양손으로 브레이크를 움켜쥐고 내려왔다. 조심조심 위태롭다. 온몸을 공격과 방어를 갖춘 짐승처럼 움츠린다. 여차해서 미끄러지면 자전거는 버리고 옆으로 굴러야 할 판이다. 급경사길이 일 킬로나 이어졌다.

오전약수 지나 오전댐으로 이어지는 길은 내리막이다. 비로소 편한 라이딩인데 안장이 자꾸 치켜 올라가 불편하다. 오는 중에 몇 번이나 나사를 조였는데 그대로다. 튀어나온 안장 코가 고환을 압박해 고통이 온다. 이래서 사이클 선수가 고환암에 걸리는가 싶었다. 이젠 쓸모없는 불알이다. 이것이 내게도 달려 있었나 새삼 느껴진다. 거추장스러운 생각도 훌훌 던져야 할 텐데 성가신 물건이라니.

물야면을 지나니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발이 눈을 찌른다. 오후 네 시. 집에서 나온 지 여덟 시간째다. 파근한 몸은 욱신거리고 젖은 땀이 식으니 한기마저 느껴진다. 무리하지 말란 당부가 무색하게 무리했고 탈은 이미 시작되었다. 낼부터 몸 풀며 몸에 맞는 라이딩으로 근력을 다져야겠다. 몸으로부터 정신이 나오고 생각한 바대로 소여(所與)의 글쓰기다.

自行车③

"외로움은 자기 보존에 기여하는 중요한 감정이다. 인간을 사색하게 한다는 점에서 야만에서 구제하는 요소이고 관심을 타자에게로 향하게 한다는 점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자전거를 타고 만나는 풍경은 끝없는 타자성이다. 타자로부터의 감시와 규율, 그리고 타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분투하는 사회다. 타자의 시선을 잠시라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자기를 제어하는 타자를 가리켜 지옥이라고 했다. 그러나 타자가 없다면 삶과 세계에 대한 관계도 전무하다.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에는 인식과 성찰도 없다. '있으면서 부재하는' 세계야말로 지옥이며 고통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따른 성과주의를 동일성의 폭력으로 지적한다. 트위터의 '좋아요'는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두려움의 극복이다. 무의미한 '같아지기'는 창조적 사유를 봉쇄한다. 타자에 대한 환대와 경청은 주체적 삶의 출발이라고 말한다.

자전거 타기는 외로움의 질주다. 숨 쉬고 사유하며 나의 밖에서 벌어지는 풍경에 대한 인식과 해석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 달리는 차, 일하는 사람들, 쇠락한 눈으로 느릿하게 움직이는 노인... 사물은 자체의 본성과 의미로 확고하게 존재한다. 물성이면서 영혼을 가진 존재로 나타나는 건 사물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든 사람이라고 해서 풍부한 경험을 자랑할 수는 없다. 경험에서 얻은 인식의 깊이가 경험의 가치를 가늠한다. 경험의 가치가 곧 삶의 지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미련하다. 고통을 반복하며 각성의 진보는 더디게 진행 중이니. 앞으로 살 날은 많지 않다. 나이 들수록 몸은 망가지고 판단은 굼뜨다. 오르막을 만나면 겁부터 난다. 근육은 경직되어 평지에서도 신음이 나온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시선은 좌우를 두런대지만 해석은 중언부언이고 지리멸렬이다. 믿는 게 있다면 "인식에 이르는 길 위에서 그렇게 많은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없다면 인식의 매력은 적을 것이다."라는 니체의 말이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배낭을 메고 나왔다. 공기가 맵차게 찼다. 막 깔리기 시작한 겨울 볕에서 어둠의 냉기가 느껴진다. 겨울 아침은 햇살에서도 한밤의 혹한이 묻어난다. 영주 쪽으로 페달을 밟았다. 고글과 마스크 사이로 찬바람이 송곳처럼 파고든다. 털이 들어간 부츠는 둔하게 생겼는데 얼음낚시를 해도 될 만큼 추위를 막았다. 운동용 벙어리장갑 또한 찬바람을 야무지게 밀어냈다.

오늘 일정은 영주 시내를 통과해 순흥을 지나 소수서원과 선비촌, 부석사를 거쳐 봉화로 돌아오는 코스다. 지난번 주실령 코스보다 완만한 길이지만 만만찮은 일정이리라. 내성천 천방 길의 헐벗은 갈대가 산그늘 속에서 오들오들 떤다. 긴 겨울을 살아내는 것들의 신음이 도처에 깔렸다. 그 속으로 더운 입김 토하며 달려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개 - 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