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 (285)

부옇게 날 새기 시작한다
마당 개가 기지개 켜고 집안의 기척을 살핀다. 다섯 시 어름 잠 깨 얼굴에 물 찍고 방으로 돌아와 외국어 공부를 한다 십사 개월째 매일 습관처럼 한다. 다른 나라 말은 들으면 날개 달린 것처럼 날아가버린다. 휘이휘이 혼새가 운다. 이맘때 새벽에 우는 개똥지빠귀는 소리가 처량하고 으스스해서 전라도 지방에서는 저승 새 지옥 새 무덤 새라고 부른다. 개똥지빠귀는 한 달 넘게 울다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소쩍새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내가 사는 가래골 골짜기에는 봄이면 종다리 개똥지빠귀 소쩍새가 절 뒷산에 찾아오고 겨울이면 부엉이가 머물다 간다. 새는 소리로 짝을 부르고 존재를 현현(顯現)하다 사라지는데 사람은 저물도록 제 인생을 석 줄 문장으로도 드러내지 못한다. 살았을 땐 성냥곽만 한 세상 부감(俯瞰)한다고 큰소리치면서 말이다. 참새 산비둘기 어치(산까치) 등은 친한 텃새다.

사람 그림자를 보고 마당 개는 제자리서 팔짝팔짝 뛴다. 사료 한 컵을 들고나간다. 개는 사료보다 산책이 급하다. 집에 온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개를 데리고 산책 나갔다. 비 오는 날이면 천변 고가도로 아래라도 나갔다 와야 성이 풀리는 개는 날 산책시키는 집사쯤으로 생각한다. 밤새 참았던 개는 밖에서 똥을 누고 오줌을 갈긴다. 풀밭에 누는 걸 즐기기 때문에 따로 봉투는 준비하지 않는다. 주택가 주변의 풀이 난 데는 자세히 보면 온통 똥 천지다. 집집마다 개를 기르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개를 산책시키며 배변을 해결한다. 밥 먹는 사람 똥보다 사료 먹는 개똥이 낫다. 사람은 밥뿐 아니라 남의 살이나 욕도 먹지만 개는 주는 대로 먹는다. 사람 똥에서는 지옥의 냄새가 진동하지만 개똥에선 사료 냄새만 난다.

개는 풍경을 보거나 바람 냄새를 맡으며 걷는다. 바닥에 닭뼈나 족발 뼈가 있으면 오도독 씹는다. 산책하면서 길바닥에 먹다 버린 닭뼈 돼지뼈가 많은 걸 알게 됐다. 마른 나뭇가지를 씹기도 하고 새로 올라온 풀을 뜯어 먹는다. 사람이나 차가 지나가면 멈춰 선 채 살핀다. 개는 감각으로 걷고 나는 마음으로 걷는다. 마음속에는 잡동사니가 가득하다. 집을 나와 성당 교회 뒷산 산책로 초입 주택가 골목을 원을 그리듯이 삼십 여 분 돌아 집으로 간다. 치렁한 검은 사제복을 입은 젊은 신부를 어제부터 만난다. 그는 걷기 운동을 하는지 성당 앞길을 어제부터 걸었다. 악령 쫓는 신부 같아서 좀 섬뜩했다. 다행히 개는 그를 보고 짖지 않았다. 똥이 급했다. 사실 성당 앞 인도 옆 풀 난 데가 개의 전용 화장실이다. 점점 굵어진 똥이 티가 나면 갈비를 집어 덮는다. 얼마 전부터 개는 전봇대에 다리를 들고 오줌을 갈긴다. 이차 성징이 시작된 거다. 덩치는 아담한 놈이 엉덩이를 씰룩이며 걷는다.

개는 육 개월이면 다 큰다.
입양할 땐 이키로 반이었던 몸무게가 두 달만에 십 키로가 되었다. 두 달 더 자라면 십오 키로 넘는 성견이 될 거다. 티피컬 한 시골 개다. 우리는 진돗개라고 우기지만 크면서 귀가 서지 않는 걸 보니 순종은 아닌 거다. 시골 개면 어떤가. 말귀 알아듣고 행복하게 산다면 바랄 게 없다. 개는 평균 십오 년을 산다. 녀석은 내가 떠나는 걸 볼지도 모른다. 이쁘고 영리했던 진돗개 믹스였던 '나라'는 우리 곁에서 만 십륙년을 살다 떠났다. 체구에 비해 다리가 긴 게 마음에 든다. 앉아, 기다려는 잘하는데 다른 건 못한다. 그것도 괜찮다. 다른 개를 만나 공격적이지 않으니 사회성 또한 만족이다. 녀석의 입장에선 아직 세상엔 신기한 것 투성이다. 어제 아침엔 마당 의자에 올려놓았던 담뱃갑을 두 동강으로 잘근잘근 씹어놓았다. 이런! 장난이 이뻐 양볼을 꼬집어 주었다. 놈도 담배 연기가 싫었나 보다. 아내는 것 봐라며 낄낄댄다.

북한에서는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부른다. 며느리가 몸을 풀면 시아버지는 마당에서 기르던 황구를 데리고 뒷산으로 올랐다. 영문 모르는 황구는 꼬리 치며 주인을 따라갔다. 보신탕을 두고 야만이니 어쩌니 문화 논쟁이 벌어졌을 때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한국인을 야만인이라고 침을 튀겼다. 그녀는 같은 프랑스 사람들의 말고기 식문화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난을 쏘아댔다. 개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자 반려다. 예전에는 개를 '먹을 것'으로 분류했다. 식용과 보신으로 여겨진 개는 복날이면 떼죽음을 당했으나 요즘은 고독한 인간의 반려로 산다. 환자와 죄수, 노인과 독거인의 친구로 이만큼 훌륭한 존재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개에 따라 다르지만 동물행동학자에 따르면 개는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는다고 한다. 또한 슬픔과 기쁨, 죽음 등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존재라고 한다.

산에 들에 나가 줄을 놓으면 몽골 초원의 야생 당나귀처럼 마구 달린다. 두더지 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고 보드란 흙을 파헤쳐 코에 잔뜩 흙을 묻히고 무언가 뒤진다. 길에 떨어진 나뭇가지도 좋은 노리개다. 마른 옥수숫대를 물어뜯고 밭터서리 무성하게 자란 소루쟁이 이파리를 씹어 뱉는다. 개는 업장을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에 구무 불성(狗無佛性)이라 한다. 해탈한 존재라고도 한다. 죽음 이후를 상상하는 사유가 없어도 자신의 감각과 감성으로 사는 개가 좋다. 말과 행위로 탈을 부르는 인간에 비해 생긴대로의 무구함이 좋다. 난대로 사는 것뿐인데 인간은 그를 통해 위무를 얻고 평화를 배운다.

개는 주인에게 충성하고 고양이는 주인을 친구로 대하지만 난 보살피며 친구 하는 쪽이 좋다 개만도 못한 것은 인간 이하라는 멸시다. '개 같다' '개살구' '개지랄' 등 접두어 '개'를 써서 모멸을 표현하지만 개의 입장에선 당치 않은 소리다. 지구에는 숱한 사람이 살지만 개보다 못한 인간 또한 천지 빛깔이다. 차라리 불성에 연연하지 않는 해탈한 존재인 개를 닮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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