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을 유폐시키는 행위는 자발적일 때는 스스로의 몫이지만 타의에 의한 강제성을 띨 때는 말 그대로 감옥이다. 예전의 유배형은 보기 싫으니 공동체에서 멀리 꺼지라는 거다. 살아 있는 존재 자체를 멸절시키기 위해 사약을 보내기도 했다. 절치부심 복권을 노리거나 군주의 마음이 바뀌길 고대하며 유배지의 고통을 견뎠다. 조선 시대엔 대명률에 따라 유배 최고형은 삼천리였는데 국토가 좁은 까닭에 돌고 돌아 삼천리를 채우기도 했다. 함경도나 남도의 흑산도 제주도 등 절해고도는 이름난 유배지였다. 다산 정약용은 18년의 유형 생활 동안 실학을 바탕으로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동생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추사 김정희는 풍랑으로 드나들기 쉽잖은 제주도 대정리에서 걸작 '세한도(歲寒圖)'를 그리기도 했다. 유배소 주변을 가시나무로 둘러친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죄인을 독방에 가두는 엄혹한 징벌이었다. 역모와 파벌 싸움이 그치지 않았던 시대에 귀양 온 유배자는 지방 주민들이 먹였는데, 한때 전라도에 죄수가 넘쳐 민폐가 되자 수령이 죄인을 다른 지방으로 보낼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죄인들은 더러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해서 무료함을 덜기도 했는데 오늘날에도 산골 구석에 고풍스러운 학문의 습속이 남은 걸 볼 수 있다.
바이러스의 침투로 인한 발병을 타인에게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 질병관리본부는 2주간의 격리를 명령했다. 가족은 물론 일체 타인과의 접촉을 금해야 한다. 확진자가 다녀간 동선에 포함된 사람은 바이러스 검사를 받아 음성이 나온 경우라도 이 주간 자가격리를 한다. 외국에서 국내로 입국한 경우 바이러스 검사 후 양성으로 판명되면 병원으로 가지만 음성이라면 자가격리를 한다. 7,80% 싼 지자체의 숙소를 이용하거나 가족과 생활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 백만 원가량의 비용은 본인 부담이다. 가족과 동거하는 경우 소독과 거리두기는 철저히 지켜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자가격리 대상자 홀로 독립된 공간에서 2주를 버티는 거다.
설날을 끼고 딸이 머무는 대만에 다녀온 적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이었으니 이동은 자유로웠다. 마스크를 낀 사람은 간간이 눈에 띌 정도였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앞좌석의 여자가 자꾸 기침을 하자 주위 사람들이 얼굴을 구겼다. 여자는 민망했는지 화장실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다 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바이러스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때까지 딸은 대만에 있었고 오월 초 일시 귀국 예정이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코로나 펜데믹이 수많은 사망자를 낼 즈음 딸의 비자는 일 개월 연장되더니 삼 개월까지 늘어났다.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되었고 산불감시원 일이 끝나는 대로 오키나와에 가려던 나의 계획도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미국의 대통령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기자회견을 하고, 올림픽에 목매던 일본 총리가 손바닥만 한 마스크를 하고 진땀 흘리는 동안 바이러스 사망자는 비닐에 싸여 화장장으로 직행했다. 일자리가 끊어지고 리조트로 가던 식품 트럭이 멈췄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놓고 여당과 야당이 주판을 두드리는 동안 일용직 노동자는 바이러스보다 무노동의 두려움에 떨었다. 일상의 위기는 약자와 소수자에게 금세 충격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무시로 오가던 출입국이 제한되자 딸아인 갑갑해했다. 돈을 부치고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그때 난 딸에게 맘에 드는 청년을 만나 결혼하면 어떻겠냐고 놀렸지만 내심 그러길 바라기도 했다. 얼마 후 아내는 딸이 자기에게만 하는 말이라며 남자가 생겼다고 하더란다. 아빠에겐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청첩장이 날아오면 대만 행 비행기만 타면 되는 거다. 편리한 상상이 꼬리를 물었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다. 연애가 그리 쉽게 흐르나. 어쨌거나 딸아인 관광비자로 가 있으니 조만간 출국규제가 풀리는 대로 돌아와야 한다. 다시 옷가지와 일용품을 부쳤는데 마스크를 끼워넣으려다 우체국 직원에게 걸렸다. 국가 방침상 마스크는 해외 반출이 불가하다는 거였다. 아내는 순진하게 묻는 말에 대답한 나를 보고 멍청이라고 놀렸다. '모른 척 끼워 넣으면 될 것을 다 까발려 보고하다니 당신도 순진한 늙은이야' 딸아인 천 마스크를 자주 빨아서 쓰면 된다고 하며 매일같이 고양이 사진을 단체톡에 올렸다. 아내가 딸 몰래 보여준 남자 친구의 얼굴도 보았다.
딸의 귀국은 칠월 초로 잠정 결론이 났다.
입국심사 시 발열체크를 하고 이상이 없으면 일단 귀가 후 자가격리에 들어간다. 공항까지 차를 몰아 고이 모셔와야 함은 물론이고. 이 주간의 자가격리 계획에 대해 아내는 이미 결정을 본 듯하다. 우선 장모는 처남집으로 보내고 아내와 난 꽃농사 짓는 처제 네 하우스에서 지내는 것이다. 하우스에 딸린 가건물에 방도 있고 주방, 욕실도 있으니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거란다. 당신이 정 답답하면 여행을 다녀와도 좋단다. 딸은 식료품을 담장 너머로 들여주고 집에서 텔레비전 보며 격리를 버티면 시나브로 이주는 지날 테니. 폭염 중의 디아스포라다. 딸과 장모, 부부 각자 흩어져 무사히 이주를 보내면 다시 모이게 될 거다. 지겨웁기도 그립기도 한 가족이란 종종 떨어져 살아봐야 미운 정도 새록새록 살아나지 않겠는가.
오래전 불온유인물 살포 건으로 유치장에 갇힌 적이 있었다. 주동자인 친구는 재판까지 가서 징역을 살았고 나 정도의 피라미는 단순가담자로 분류되어 조사 후 석방되었지만 유치장 안에서의 하루는 정말 일일 여삼추였다. 무전취식한 청년, 경범죄 등의 잡범들과 섞여 동료의 어머니가 넣어주는 사식을 달게(?) 나눠 먹으며 보냈는데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독재정권에 맞서 감방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과거의 선배, 스승을 생각하면 그들의 고초가 어떠했으리란 건 손톱만큼이나마 헤아리게 되었다.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 글자체도 감방에서 나왔고 리영희 선생의 서늘한 사상도 감옥으로부터 단련된 것이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들은 리형희 선생에게 김지하 시인이 간수를 통해 사탕 봉지를 전하고, 리영희 선생은 시커먼 보리밥과 사탕을 앞에 놓고 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더 내려가면 옥사한 독립 운동가들. 중국 뤼순(旅顺) 감옥만 해도 신채호 선생과 이회영 선생,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곳이다. 고조선의 팔조 금법(八條 禁法)으로 시작한 국가제도의 형벌은 공동체에 반하는 자를 분리시키는 제도지만 정권의 입맛에 따라 악용되기도 했다.
포스트 코로나의 삶의 방식은 달라지겠지만 인간은 움직이고 이동하면서 노동하고, 사랑하는 존재인 건 부정하지 못한다. 태어나고 죽도록 여행하는 인간이 바이러스에 손발이 묶인다면 정신인들 온전하겠는가. 인공지능과 사물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노동은 소외되지만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의 톱니를 돌리는 이들이다. 청소부, 택배노동자, 농부, 도로관리원, 요양보호사, 외국인 노동자 등이 장시간 저임금 노동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닦고 쓸어낸다. 의사, 약사, 변호사, 교사가 사라지고 자율주행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미래학자들의 예언은 쉬이 오진 않는다. 태양계의 한 점 혹성인 초록별의 지구를 지키는 건 공생의 연대다. 너나없이 국가, 인종, 종교를 초월해 연대하지 못하면 지구는 서서히 또는 급작스럽게 자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나를 지우기보다 나를 내세우는데 진력하는 사람은 공감의 대열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따로 또 같이는 개성과 공감의 연대를 말함이다. 각자도생은 엄혹한 시장의 생리를 드러내지만 결국 개인은 전체의 일부라는 건 자명하지 않은가. 더위가 본색을 드러내는 요즘 시든 일상의 심지를 돋우기 위해 무엇을 비우고 채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