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③
처음엔 돛이 부러진 배가 정처 없이 떠가다 닿았을 거다. 노련한 뱃사람들은 바람의 불어오는 방향과 별자릴 보며 자신들의 위치를 가늠했을 거다. 대나무가 무성한 화산섬 울릉도는 그렇게 발견되었을 거다. 섬에서 샘을 찾고 나물과 고기를 낚아 기운 차린 이들은 돛을 수선하고 배를 고쳐 오던 방향으로 돼갔을 거다. 수려한 풍경과 물 반 고기 반인 천혜의 어장 울릉도를 소문냈고 뭍의 어부들은 앞다퉈 돛을 펼쳤다. 급기야 하나둘 섬에 정착했고 육지와는 다른 섬 문화가 탄생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했고 바다는 모자람 없이 그들을 먹였다. 신라 때 이사부는 울릉도를 복속시켰고 숙종 때 병조판서 약천(藥泉) 남구만(1629~1711)은 영토의 중요성을 깨달아 대마도 사신의 사술을 간파하고 울릉도를 지켜냈고, 안용복의 죄를 묻는 대신들에게 안용복의 행위는 쾌사(快事)라 하며 공으로 치켜세우며 감형을 주장했다. 결국 안용복은 사형에서 유배형으로 바뀐다.
오징어는 울릉도의 특산물이다.
남도와 동지나해에선 갑오징어가 잡히고 동해와 울릉도에선 우리가 흔히 아는 오징어가 잡힌다. 울릉도 인근의
대화퇴 어장(大和堆 漁場)은 울릉지역 다른 깊은 바다와는 달리 수심이 얕은 바다에 퇴적물이 쌓여, 영양염류가 풍부하여 각종 수산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주문진의 어부들도 오징어 철이면 유혹하는 집어등을 초파일 연등처럼 꿰달고 대화퇴로 달렸다. 근래에는 북한 수역에서의 중국 어선의 남획으로 오징어값이 치솟고 있다. 동해안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쪽빛을 풀어 논 듯 파란 하늘에 걸려 꼬들하게 마르는 오징어를 보면 쫄깃하고 고소한 맛에 침부터 고이는 거다. 특히 배에서 바로 말린 배오징어는 두툼하게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다.
찜질방 안으로 희붐한 동살이 튼다. 새로 한 시가 넘어 잠들었다. 잠 깨니 후텁한 공기에 목덜미에 땀이 번진다. 씻고 나섰다. 소금기 섞인 바람이 활활 스친다. 산들은 이미 초록의 입성으로 성장한 여인처럼 부풀어올랐다.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니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매표소를 기웃거린다.
갈매기 한 마리가 배를 따라온다. 수면에서 날개를 편 채 우아한 몸짓으로 속도를 맞추더니 이내 배 앞으로 사라졌다. 물결은 1~2미터로 고른 주름을 깔고 출렁였다. 수평선에 고깃배가 드문드문 떠 있다. 잠깐 졸다 깼다. 배는 정시에 출발했다. 모래시계처럼 사람들이 주르르 배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해운회사 직원이 선착장에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배는 꿀렁대며 후진하여 방향을 잡더니 뒤도 안 보고 내뺀다. 배는 수면을 잘게 부수며 나아간다. 얼마 후 갈매기 2가 나타난다. 고개 빼고 가만히 내다보니 수면 위로 갈매기 3,4,5가 아니 점점이 하얀 파도와 섞여 눈에 보이지 않았던 갈매기들이 마치 군무를 벌이듯 낮게 날고 있다. 산림작업단 시절 성류굴 앞 숙소에서 밤마다 어둠을 끌고 나타나 컹컹 짖으며 맴돌던 개가 떠올랐다. 갈매기에게 바다는 마당이었던 거다. 고깃배가 던져놓은 부표가 기우뚱대며 파도에 몸을 맡긴다. 고기가 들고나는 건 물때의 조건이라거나 노련한 어부의 직관이어도 때론 운수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거다. 난바다로 나아가자 뱃전에 부딪는 물살이 크게 퍼진다. 파도도 눈에 드러나게 높낮이를 이룬다.
나이 든 여자가 휘청대며 화장실로 가더니 비닐봉지를 들고 간다. 멀미가 시작되나. 머리가 조금 묵지근했다. 배는 늘 그랬다는 듯 조금도 망설임 없이 동쪽으로 달린다. 삶도 때로는 관성의 움직임에 따를 때가 있다. 박완서 선생은 '고통이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견뎌내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존재의 허무는 천 길 물속의 아득한 침묵으로 현현하고 개인은 묵은 낙엽처럼 쌓였다가 흩어진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물음으로부터 자유롭자. 쓸쓸하더라도. 관광객들은 길들인 짐승처럼 순하게 자리에 앉아 창밖 풍경을 내다본다. 갈매기는 여전히 수면에서 튀어 오르고 파도는 하얀 이빨을 세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