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삼월 초엔 모든 풍경이 죽은 듯했다. 봄이 오는 느낌은 바람결로 느끼고 있었지만 무채색 겨울 풍경은 여전했다. 단풍나무 가로수는 말라죽은 것처럼 피가 흐르지 않았다. 길 건너 가로 공원의 신나무는 가을에 떨어뜨린 이파리를 수북하게 딛고 섰을 뿐이었다. 빈 논에 둑새풀 싹이 엄지손톱만 하게 내미는 중이고 고구마 밭에는 치우지 않은 검정 비닐 만장처럼 펄럭였다. 풍경 사막 같았지만 겨울 끝물의 산과 들은 보이지 않는 설렘으로 발돋움하는 진동이 느껴진다. 코로나 아니었다면 왕복 이차선의 좁은 시골길 위로 관광버스가 이어졌을 거였다. 코로나는 어깨 세우며 일상을 점령했다. 개울 사이에 두고 대여섯 집이 드문한 면소재지 초입의 마을은 지나는 차가 일으킨 먼지만 폴폴 뒤집어썼다. 본격적인 농사철 앞두고 개울 석축 보강공사가 진행 중이다. 굴삭기가 개울 바닥에 내려가 땅을 파고 흙벽을 깎아냈다. 바닥 한가운데 물길 냈지만 실오라기 같은 물길은 악취 풍기며 느릿느릿 흘렀다. 무너진 석축 밖으로 돌망태 쌓아서 개울 생태는 망가진 지 오래다. 장마 때 물이 소통하기 좋게만 다듬어놓은 개울의 모습은 논의 콘크리크 배수로와 다름없었다. 개울에 살던 것들에 대한 기억은 이미 사라졌다. 생태 종인 말종들의 손끝에 멸종만 잡혔다.
초소에서 이백 미터 사방에 집과 논밭이 펼쳐졌다. 가운데로 봉화와 안동을 오가는 차가 지난다. 풍경은 고정된 사물처럼 보였지만 사월 들어 변하기 시작했다. 석축 공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 무렵 삽 든 사람이 나타났다. 객토한 기름한 밭에서 돌 골라내고 거름 날랐다. 불룩한 배를 한 농부가 트랙터로 밭을 뒤집고 비닐 덮었다. 다음날 아내가 와서 비닐 가쟁이에 흙을 올렸다. 올해도 고구마 심어 자식에게 노나 줄 생각이다. 거름기 적어야 알이 잘다며 고구마밭엔 퇴비를 넣지 않았다. 개울 건너 밭에서 노인 한 사람이 일주일 내내 돌을 골라 개울 바닥에 던졌다. 마을이 고향인데 지금은 읍내 아파트에서 매일 출근한다. 논두렁 꽃다지가 파랗게 올라오고 단풍나무 새순 참새 혓바닥만 하게 돋아났다.
초소 근무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나무 실은 차를 단속했다. 봄철이라 수목 식재가 빈번할 것 같다는 예상은 빗나갔다. 소나무 재선충병은 솔수염 하늘소가 매개하는 병이다. 소나무, 잣나무에 치명적인데 발생하면 병든 소나무는 베어 훈증 살충하고 방수포를 덮어 차단해야 한다. 산지에 소나무 무덤을 만드는 거다. 재선충 확산을 막기 위해 소나무를 옮기거나 화목으로 사용할 수 없다. 소나무류의 수목을 굴취하여 옮겨 심거나 화목으로 쓸 경우 지자체장의 '수목병 미감염 확인증'을 받아야 한다. 초소는 소나무 실은 차가 지나면 세워 확인증을 확인하고 통과시킨다. 확인증 없이 나무 운반하는 간 큰 업자는 없다. 소나무류는 소나무, 잣나무, 섬잣나무(오엽송)에 한하며 미국산 스트로브 잣나무는 예외다. 작년 대 면적의 산불이 난 안동 쪽으로 스트로브 잣나무 묘목을 실은 트럭이 연 이틀 안동 쪽으로 내려갔다. 단속 건수는 일주일에 한 번 꼴이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근무원은 항상 긴장하고 길 양쪽을 살핀다. 점점 가자미 눈이 된다. 수목 차량이 근무원의 지시에 따라 정차하면 차량 번호판과 확인증을 사진에 담는다. 근무일지에는 생산자, 생산지, 도착지, 수종과 용도, 수량 등을 차례로 기입한다. 가물에 콩나 듯 차량을 검문하면 밥값 했다며 동료와 마주 보며 웃었다. 군의 세 곳을 이인 일조로 돌아가며 근무하고 휴일에는 이동조가 이틀씩 차례대로 근무한다. 초소는 세 군데인데 이곳만 빼고 두 군데는 사람 구경을 할 수 없는 지형이다. 한 군데는 도립공원이 가까운 강 옆이라 강변 풍광을 볼 수 있어 나을 것 같다. 코로나로 이동이 뜸한 시절 여행객을 구경하는 것도 낙인데 나무 실은 차를 단속하는 일이 재미없다. 타인을 바라보는 나는 내 속의 타인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에 '내다본다'는 건 흥분이 인다. 삶은 길에서 인연을 만나고 망가지다 사라진다.
강원도에서 수목관리하다 땅이 팔리는 통에 일 접었다. 도시가 고향인 내가 돌아갈 고향은 없었다. 처가 동네로 돌아왔다. 스무 해 전 서울살이 마감하고 내려온 처가 동네로 다시 귀환한 건데,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도 동네도 변해버렸다. 아는 사람이 생기고 촌에서 일자리 구하는 데 조금씩 이력이 생겼다. 시골집 사서 수리해 사는 동안 손대지 않은 지붕에서 물이 샜다. 돈을 끌어다 집수리한 터라 여력이 없었다. 쉬어보잔 계획은 물 건너가고 공장에 청소부로 석 달 열흘을 다녔다. 새벽에 나가 항아리의 꽁초를 뒤지고 작업대의 쓰레기를 리어카에 담았다. 지붕을 올리자마자 공장에서 나왔다. 딱 그만치의 돈만 벌고 나온 거였다. 아내는 입맛을 다셨다. 노는 생활은 길게 가지 않았다. 군청의 취업상담사 만나 시골에서의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비정규직 기간제 일자리는 봄부터 쏟아졌다. 특히 산림이 팔 할이 넘는 군이라 나무 작업 경력이 있는 난 유리할 거라고 했다. 산불감시원 모집에 지원해서 내리 세 해를 일했다. 내리 세 해지만 십일월부터 다음 해 오월까지 육 개월이다. 1월은 휴식월이다. 반년 일하고 반년 쉬는 생활에 만족했는데 아내는 콕콕 눈치를 주었다. 마지막 산불을 마치고 한 달 뒤 휴양림 관리인으로 연말까지 일했다. 일하면서 일하지 않는 자유를 그리워했다. 일하는 중에 잠시 안정감이나 소속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건 순전히 길들여진 배고픔에 대한 태도였다. 아내는 사냥개가 꿩 물고 집에 돌아온 것처럼 급여를 내놓을 때마다 고마워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밥 버는 동안 침 흘리는 충성스러운 사냥개다. 사월 말 들어서자 풍경이 달라졌다. 폭탄 떨어진 것처럼 초록 불이 번졌다.
일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건 보는 사람의 관점이다. 노동이 위대한 건 문명이 이뤄놓은 문화의 결과일 뿐 노동하는 인간은 죽을 맛이다. 일하면서 일하지 않는 날을 꿈 꾼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게 최고의 삶이다. 밥을 벌어야 삶에 관련된 모든 행위를 최소한이나마 펼칠 수 있는데 운이 따라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그 최고의 도락을 흘려보낼 때가 많은 것 같다. 무노동을 꿈꾸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더 잘 보인다. 무슨 헛소리냐 자본의 사회에선 노동이 벌어주는 자본의 구가야말로 최고의 조건 아니냐고 하겠으나 그건 조작된 거다. 자본의 생리는 노동을 부추겨 배를 불리는 데 있다. 재화에 휘둘리는 인간의 정신은 아편에 취한 사람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모두 재화에 미쳐 돌아간다. 나는 그런 것에 휘둘려 살기에는 삶에 무척 미안한 입장이다. 삶은 나의 몸과 마찬가지로 의지나 신념으로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섬기고 모셔야 하는 몸처럼, 그림자처럼 내가 가고자 하는 정신이 도착하는 곳까지 함께 동행하는 동무일 뿐이다. 내가 죽으면 그림자도 편히 누울 거다. 개 데리고 산책하면 잘 느낀다. 개는 목줄만 빼면 자신의 방향을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 집사가 슬쩍 줄 당기면 힘주어 버티다 곧 집사의 생각에 따른다. 이때도 순응이 아닌 새로운 방향으로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불과할 뿐, 개는 자신의 온몸을 통해 바람의 냄새, 풀의 냄새와 낯선 개의 똥오줌 냄새를 탐닉하며 추적한다. 길에서 만난 인간과 사물의 정체를 개는 호기심으로 대하지만 적의나 환대 이전의 상태를 유지한다. 그때 개의 시선에는 원시성이 담겨 있다. 개 이전의 늑대. 집사 입장에서 해석하는 개의 형편은 조작되거나 해석되었기에 우리는 순전한 개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니체는 '사물 자체'는 '의미 자체'나 '지시된 것 자체'와 마찬가지로 왜곡된 것이다. '사실 자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실이 존재할 수 있으려면 늘 어떤 의미가 먼저 집어넣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했다. 조작되거나 선입견의 상상이 '무엇'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건 " '이것은 무엇인가'는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의 관점에서 시도된 의미 정립일 뿐이다. '본질'이나 '본성'은 항상 관점적인 것이며, 이미 다양성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근저에 놓여 있는 것은 "그것은 나에게 무엇인가"(우리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 등등)이다." 관점의 의미 정립의 다양성이란 결국 주체적 해석이야말로 세계를 자신의 삶으로 이끄는 동력이란 것이다. 불확신과 부정성은 불변의 고정성인 믿음과 정의를 불신하는 초월적 사유에 다다르는 핵심이며, 인문적 상상력의 시작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를 사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한다.
오늘 S면 초소 마지막 근무다. 다음 달부터 강변 초소에서 일한다. 휴무 전날 배낭 메고 튀기 딱 좋은 위치다. 들로 산으로 바다든 어디로든 달아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