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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고물상

by 소인

남도 고물상

소방서 뒤 고물상 쉽게 찾았다.
주택가 개천 건너편은 산동네고 고물상은 소방서 건물에 가려져 있었다. 움푹 꺼진 양철지붕을 타이어가 누르고 있다. 모아논 고물이 산 이루고 지린내 날렸다. 벗기다 만 구리선 쌓인 데서 여자가 니퍼로 전선을 까는 중이었다. 파마 한 머리칼이 부스스 일어나 금방이라도 까치가 날아들 것 같다. 두드려 부순 밥통 밑창에서 뚝쇠로 된 열판 덜렁거렸다. 여자 혼자인지 조용했다. 숙소로 쓰는 양철지붕 안 컴컴해서 보이지 않았는데 라디오 소리가 난다. 어라, 부드런 음색의 팝송 흘러나온다. 엘비스다. 러브미 텐더. 날 사랑해줘요 부드럽게 달콤하게... 니기미, 배가 고팠다. 노래에 귀담을 형편 아니었다.

밥 벌기가 수월찮았다.
뭐라도 내장 속으로 쑤셔 넣어야 살 것 같았다. 사흘 굶고 물 마시니 뱃속에 강이 생겼다.

기차는 바닷가에서 멈췄다. 물속으로 처박히지 않는 한 더 갈 재간 없었다. 종점이었다. 비둘기호 타고 용산역에서 꼬박 열여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데가 시궁창의 검은 물이 바다로 쓸려가는 동네였다. 몇 남은 사람들 보퉁이 이고 내릴 때까지 앉았다 내렸다. 오후의 햇발 산동네의 이마를 환하게 물들였다. 낯선 도시의 소음이 가볍게 귓께를 파고들었다. 해방 후 군사 반란으로 수백의 목숨이 파리처럼 사라진 도시라곤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했다. 비린내가 밴 건어물 가게 지나 외곽으로 걸었다.

짠내가 얼굴에 몰칵 끼쳤다. 간장 달이는 냄새 같기도 한 그것은 여름밤 여자의 분 냄새를 닮았다. 냄새가 풍기는 바람의 결을 따라가니 천막이 보였다. 바깥의 커다란 솥에서 물이 팔팔 끓었다. 더러운 거품이 가장자리에서 넘쳐흘렀다. 쓰러져가는 천막 안에서 사람이 움직였다. 바닷가 자갈밭에서 홍합을 삶는 중이었다. 삶은 홍합의 살을 까서 폐그물에 던져 말렸다. 벌건 조갯살이 천지 빛깔이다. 먹어보란다. 처음엔 단맛이 고소하게 퍼졌다. 조개의 육즙이 내장을 적시며 내려갔다. 노인은 홍합을 날랐고 젊은 여자는 작대기로 홍합을 저었다. 딱딱 타들어가는 장작불에 마른나무를 넣고 노인은 바다를 한 번 보고 나를 한 번 훑어보았는데 시선은 덤덤했다. 마치 속내를 훤히 뚫어본다는 듯 아니면 만사 별무 관심이라는 듯 멀거니 선 내 앞에서 홍합을 삶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불 때고 홍합을 건져온 것처럼 두 사람은 말없이 무뚝뚝한 기계처럼 움직였다. 노인과 여자의 사이가 딸인지 며느리인지 분별 가지 않는다. 노인이 새로 들인 계집일지도.

뜨근한 김이 나는 홍합살 몇 낱 집어 먹으니 배가 찼다. 배부른 게 아니라 짜서 물이 먹혔다. 솥 지키던 여자가 웃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바가지를 내밀었다. 물에서도 짠내와 비린내가 났다. 뱃속에서 조갯살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주변 풍경이 비로소 눈에 잡혔다. 기차역 부근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썩은 폐선이 숨을 할딱이는 생선처럼 뭍에 걸쳐 널브러졌고 물에 실려온 쓰레기가 하얗게 산을 만들었다. 근처에 민가라곤 없었고 홍합 삶는 천막 서넛이 찢어진 풍경 속에서 김을 폴폴 날렸다. 낮은 파도 찰방이며 밀려왔다. 그때마다 국적 알 수 없는 부유물 꿈틀대며 뒤척인다. 배가 뒤틀렸다.

조개막에서 하룻밤을 잤다.
봄밤의 하늘에선 쌀가루 같은 잔별이 쏟아졌다. 바람은 부드럽게 목덜미 파고들었고 바다는 쉴 새 없이 요동쳤다. 사납지 않았다. 낮의 살풍경만 아니었다면 그리스인 조르바가 머물던 크레타 섬의 바닷가인 듯한 착각을 불렀다. 어두워서야 돌아간 노인이 한밤중에 밥과 김치를 가져왔다. 노인은 말을 섞지 않았다. 다만 언뜻 스치는 시선에서 나를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무언의 따스함이었는데 그것이 인간에 대한 독한 연민이거나 배반감에 의한 걸지도 몰랐다. 노인의 세월은 직관으로도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얻기도 한다. 어둠 속으로 노인이 사라졌다. 그의 굽은 등을 어둠이 먹어치우고 나서도 느릿느릿 신발 끄는 소리가 남았다. 나중엔 파도소리만 희미하게 어둠에 묻어났다. 그러고 나서도 잠은 오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백지처럼 빈 느낌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한들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몸에 닥치는 대로 부딪치면 될 일이었다. 입때껏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삶이 내게 명령을 내리지 않았듯이 나 또한 삶에게 어떤 기대나 의지도 불가할 터였다. 사막처럼 막대하고 막막한 시간이었다. 지극하게 펼쳐진 엄연한 현실에 눈물이 났고 분노가 일었다. 감정조차 내 몫이었다.

대학의 문창과에 합격했다. 합격은 했으나 시험 삼아 본 거였다. 집안 형편으론 대학에 다닌다는 게 턱도 없었다. 고등학교 나와 노가다를 전전했다. 형제들은 대학에 다녔지만 순전히 혼자 힘으로 학비를 벌었다. 직업군인으로 예편한 아버지는 회사원이었으나 육 남매의 학비 대기도 버거웠다. 국수 삶고 셋방 옮겨 다니다 커버린 자식들은 고등학교 이후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무엇이 되어 살아본다는 인생의 목표라거나 꿈 없이 집 나와 떠돌았다. 친구 집에서 자다 새벽에 나왔다. 새벽에 일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졸았다. 돈이 떨어지면 공사장 기웃댔다. 가방엔 노트와 두툼한 국어사전을 넣고 다녔다. 사전은 공사장에서 잘 때 훌륭한 베개가 되었다. 반년 꼴로 집에 들렀다. 가난은 여전히 집을 지켰고 동생들은 학교 가고 없었다.

세상 밖으로 나섰다.
좀 더 너른 세상의 공기 마시고 싶어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싸돌아다녔다. 오사리잡놈이 되어 술집의 방석과 여자를 뭉갰다. 산에 들어가 몇 달씩 지내기도 했다. 니체와 린위탕을 읽고 생각을 굴렸지만 무망한 젊음은 지독한 난독증에 사유의 푯대를 잃고 흘러 다녔다. 생각이란 추상적이고 관념의 상태다. 몸으로 세상을 겪고 싶었다. 책에서보다 삶의 좌표를 가리키는 선배가 절실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인천의 직업훈련소에서 미장을 배우고 현장 실습하느라 벽 바를 때 광주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전라도 사람들은 교통과 서신이 끊긴 고향을 걱정하며 발 굴렀다.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도라고 했다. 일 마치고 건물 옥상에서 술 마셨다. 누군가는 생간 씹으며 이대로 적화 통일되어도 가난한 것들 맨날 이 꼴일 거라고 확신했다. 빈곤과 결핍은 민주적인 사회나 공산독재 아래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살 만한 희망이 없다는 건 절망의 일상인데 가난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체념의 깨달음도 생래적으로 가진 듯했다. 난리가 끝나면 남도에 가기로 했다. 중동 건설사에 잡부직으로 나갈 생각이었으나 신체검사에 떨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여자가 리어카를 가리켰다.
키가 작은 여자는 못생겼고 씩씩했다. 눈가에 달린 웃음이 없었다면 무서운 인상이다. 말 꺼내자 다 안다는 투로 경운기는 남는 게 없으니 우선 리어카를 끌라고 했다. 며칠만. 기름한 리어카엔 달린 게 많았다. 비누통 엿 상자 가위가 매달렸고 노끈이 옆구리에 친친 감겼다. 고물 사는 데 쓰는 비품이었다. 여자는 내게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잘 데 없으면 여기서 자도 된다고 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동네에 방을 얻은 터였다. 굶어도 잠은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낼부터 나오기로 하고 큰길로 나왔다. 선금으로 받은 오천 원으로 쌀을 샀다. 집으로 가는 해안도로는 시원했다. 동백섬 입구엔 관광 온 사람들이 모여 떠들었다. 꽃 진 후의 바다는 더욱 푸른빛을 띠었다. 방파제로 난 길 끝의 섬을 하얀 파도가 연꽃처럼 감쌌다. 관광객이 횟집으로 빨려 들어간다. 남도의 바다엔 갯것이 지천이다. 그물엔 사철 활어가 짠물 털며 달려 나왔고 개펄에선 꼬막 피조개 개불이 그득했다.

고물의 가짓수는 무궁하다. 대별하면 철과 비철 종이 병 망가진 가전제품 등속이다. 쇠꼿은 상철 하철로 나누는데 상철은 철근이나 무게 나가는 깨진 보습, 쟁기고 하철은 양철이고 비철은 스테인리스 그릇 노비로 불리는 양은 종류, 구리선 신주 등인데 구리도 상동과 하동이 있다. 전화선은 색깔이 구리지만 자석에 붙어 구리가 아니다. 그 외에도 파지나 고추씨를 사기도 하고 폐그물도 샀다. 노햇마을에선 말린 우뭇가사리와 비누를 바꾸기도 한다. 고물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다양해서 고물 박사는 없다. 동료가 하루는 포대에 죽은 새끼돼지 댓마리를 가져와서 모두 놀라기도 했다. 모두가 거절하자 그는 빙글거리며 새끼돼지를 길 건너 대폿집에 주었다. 제주도의 애저회는 자궁 안의 새끼돼지를 칼로 다져 양념한 음식이다. 비닐도 받고 막걸리병도 받았다. 두꺼운 비닐 막걸리병은 근수가 나갔는데 동료는 포대 속에 연탄재나 돌을 넣어 저울을 속였다.

동네 아이들이 가윗 소리 듣고 몰려나오면 빈병 가진 아이나 빈손인 아이 모두에게 가락엿을 듬뿍 나눠주었다. 재봉틀이나 고장 난 경운기 엔진을 만나면 횡재다. 저녁에 고물상 저울에 달아 셈할 때 뭐든 무게 나가는 게 값도 나갔다. 재봉틀 다리는 이모노(주물)다. 쇠틀에 무쇳물을 부어 만든 거라 망치로 때리면 쉽게 부서진다. 정리하면 한 줌 거리다. 헌 옷도 받았다.

절겅절겅 가윗 소리치며 동네 들어선다. 한쪽 어깨엔 바구니를 메고. 바구니엔 비누 몇 장과 가락엿 한 뭉치가 들었다. 골목에서 가위를 흔들면 짤랑짤랑 가벼운 쇳소리가 돌담을 타고 마당으로 넘어간다. 연초록 새순 오르는 모과나무 봄볕에 졸다 화들짝 깬다. 마루 아래 검둥이 컹컹 신경질이다. 주인의 허락을 받아 마당과 뒤란 돌며 고물 될 만한 것들 찾는다. 고물장수의 눈에는 고물만 보인다. 찌그러진 스텐 요강 깨진 보습 망가진 전기밥솥 집 청소도 하고 비누도 주니 서로 좋은 거래다.

일주일 후 경운기 받았다. 기동력이 생겼다. 기름 한 번 채우고 Y시의 미역귀처럼 생긴 반도를 누볐다. 고물도 늘었다.

육지로 연결된 다리 건너 섬으로 갔다. 섬의 돼지농장엔 문둥이가 살았다. 나환자들이 모여 왕국을 이룬 마을엔 없는 게 없었다. 도시로 돼지를 팔아 살았다. 콧대가 없는 이장이 창고 문 땄다. 알루미늄 보철기가 와르르 쏟아졌다. 수십 년 모은 거란다. 나환자들이 평생 다리에 차거나 지팡이로 쓴 보철기구가 아우슈비츠 처형자들의 신발 같았다. 평평한 얼굴에 콧구멍 두 개만 뚫린 이장이 고물 싣는 걸 도왔다. 그는 말도 시원시원했고 틀스러운 게 지도자다웠다. 거리낌 없이 지껄였다. 거의 기부하다시피 받은 나환자의 팔다리를 싣고 섬을 떠났다.

청마 시집을 본 건 남도 들판이 누런 금빛으로 활활 타오르던 보리누름 때다. 책이 유난히 많이 나온 집이었다. 조악한 그림 표지의 시집이었다. 따로 넣었다. 때론 골동 가치인 숯불 다리미를 건진 날도 있었다. 보리타작하는 들판 지나다 할머니를 만났다. 나물 비빈 곁두리를 덜어주며 먹으란다. 이쁘게 생긴 총각이 고물 장사한다며 밑천 모이면 가게 차리란다. 시집살이 고되고 서러워 보리 벨 때면 독사에 손 물려 세상 뜨는 게 소원이었단다. 할머니의 신산한 삶이 깊게 파인 주름과 노동에 절어 뭉툭해진 손마디에 드러났다. 고물과 바꾸는 건 빨랫비누와 가락엿이다. 여간해서 고물을 돈으로 사는 일은 만들지 않는다. 십중팔구 엿장수가 손해다. 고물장수의 흥정은 엿장수 맘대로다.

여름엔 고물상 식구들과 야유회도 갔다. 사연도 제각각이고 술 취하니 떠들고 노는 것도 제각각이었다. 가을 들어 고물상 주인이 바뀌었다. 갓 결혼한 젊은 사내였다. 그는 고물에 대한 철학에 꿈을 섞어 장황하게 연설하곤 했다. 내게 은근한 기대를 비치기도 했지만 난 역마살 낀 뜨내기일 뿐이었다. 사고도 났다. 낮술에 취해 고물상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큰길에서 소방서 골목으로 좌회전해야 하는데 그만 핸들을 급하게 꺾다 놓친 거였다. 이른 오후였다. 경운기 대가리는 옆으로 누워 돌았고 내 몸은 허공에 솟구치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양 켠의 차가 멈추고 정신을 수습한 내가 경운기 일으키자 건너편 대폿집에서 술 마시던 동료들이 소리를 질렀다. 천행이란다. 씩 웃으며 술집으로 갔다. 술잔 든 손목에서 붉은 피가 떨어졌다.

남도의 풍광은 낯설고 포근했다. 사람들 착하고 인정스러웠으나 속내엔 깊은 슬픔의 강이 흘렀다. 반역을 도모한 죄인의 유배지 남도의 땅마다 핏빛 황토가 일어났고 사람들은 고기를 잡고 고구마를 캤다. 남도는 외로운 역사의 한켠이었고 불의한 역사의 증인이었다. 불의한 권력에 저항한 사람들의 핏줄이 대대로 이어졌다. 두어 차례 태풍 바닷가 마을을 휩쓸고 남도의 가을 깊어갈 무렵 고물상을 떠났다. 고락을 함께 한 고물 경운기 서운한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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