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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일기 3

by 소인



식전에 차 트렁크 짐 정리.
여울 낚시 도구를 죄다 내리고 조경 연장이 든 가방만 둔다. 아내서껀 동네 아줌마와 간 피라미낚시는 피곤했지만 매운탕의 마무리로 즐거운 하루였다. 하지의 해는 기울 줄 모르고 장 보고 매운탕 끓이는 동안 공설운동장에서 새댁과 동네 처녀 둘에게 운전면허 장내 기능시험 가르치는 교관 노릇도 했으니 하루가 알곡처럼 옹골차게 흘렀다.

큰 비가 내리지 않아 물이끼 낀 강돌이 미끄러워 아줌마들은 풍덩풍덩 빠지곤 했다. 처음 잡아보는 견짓대에 파리낚시 채비를 달아주고 여울 포인트를 알려주니 곧잘 낚아낸다. 파리낚시는 엉킨 줄 푸느라 하루해 다 간다. 짜증 날 만도 한데 줄 풀어 던지며 넘어지기도 하면서 여기저기 포인트를 찾아 물길 오르내리는 아줌마들 보니 끈질긴 여성의 내면을 보는 것 같다. 아내도 수면에 물을 튀기며 저항하며 올라오는 피라미 낚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나도 계류용 릴대에 파리낚시를 달아 위아래 포인트를 노렸지만 두 마리 올라오다 놓친 것 외에 수확이 없었는데 아줌마들은 댓 마리씩 낚으며 열심이다. 낙동강변의 초록빛 산과 파란 하늘, 흐르는 강물이 겹친 풍경은 일상의 자잘한 신고(辛苦)에 지친 그녀들의 심신을 씻어내기엔 그만이었다.

초반의 조황에 비해 입질이 신통찮아 네 시 넘어 빵과 냉커피로 새참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 며칠 전 가본 배나들 나루터. 오후의 따가운 햇볕은 서쪽으로 기울면서 강한 열기를 뿜어낸다. 감자알이 든 하지 무렵이니 더위는 여름의 대열에 들어선 셈이다. 배나들 평다리 건너편에 자리 잡은 가족이 산 그늘 속에서 대낚시를 펴고 있었다. 다리 초입의 여울 포인트에 낚싯꾼이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낚시를 던지고 바로 입질이 온다. 툭툭, 어신과 동시에 간지런 떨림이 줄을 통해 느껴진다. 거푸 갈겨니 네 마리를 낚았다. 줄에 매단 어망을 다리 아래로 내렸다. 두 사람은 바싹 마른 돌밭을 지나 아래쪽 급류를 공략하러 간다.

아침에 아내 태워주고 북지초등학교 운동장에 갔다. 폐교 운동장은 풀이 우거졌고 트랙터가 지나간 가운데로 길이 생겨 모세의 기적처럼 흙이 드러난 것 말고는 널따란 초원이다. 남의눈을 피해 운전 연습하기엔 맞춤한 곳이라 여겨진다. 내일 문경으로 내려가 학과시험 치르고 바로 실기시험이다. 오후 늦게 아내의 퇴근 시간에 맞춰 연습하기로 하고 읍내로 갔다. 성큼 자란 어린 벼가 땅내 맡고 발돋움할 무렵 시커먼 초록빛 띤 이팝나무 이파리가 초여름의 아침 바람에 물결친다. 소방서 앞 개울은 가느단 물길이 기진한 듯 흰 띠를 내며 흐른다. 천변과 바닥에 무성한 풀이 자란다.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는 군에서 이삼 년마다 베어내 치워도 끈질기게 살아났다. 늦봄엔 솜털 날리며 천식 환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도 요맘때 햇볕 강한 여름이면 낭창한 가지에 달린 송사리 같은 이파리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중백로 한 마리가 웅덩이에서 무언가를 노린다. 물꼬 보러 나온 흰옷 입은 농부 같다.

보건소에 갔다.
입구에서 발열 체크하고 방문 기록을 적었다. 다음 달 초 대만에서 입국하는 딸의 자가 격리를 위해 매뉴얼을 물었더니 없단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코로나가 유행한 지 얼만데 대응 매뉴얼 하나 없냐고 했더니 이층의 감염병관리팀에 문의하란다. 질병관리본부가 매일 안전문자를 보내고 이차 대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인데 인쇄된 매뉴얼이 없다는 건 문제 아닌가. 접수대에서 내일 휴양림에 제출할 건강진단서를 알아본다. 다행으로 작년 산불감시원 지원할 때 검사받은 기록의 유효기간이 1년이니 재발급이 가능하단다. 검사료가 굳었다. 건강진단서 발급받고 감염병관리팀으로 갔다. 마른 사과 껍질 같은 팀장이 드링크를 권한다. 딸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더니 지자체마다 대응 수칙이 다르니 양해해 달란다. 순순히 팀장인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입국자는 사전에 공항 도착 날짜와 시각을 자가 격리할 지역과 가까운 보건소에 알려야 하고, 공항 안내자의 인도에 따라 교통을 이용한다. 딸의 경우 공항에서 내준 버스 타고 KTX 광명역에 간다. 거기서 동대구역으로 이동하는데 도착시간을 관할 보건소에 알리면 보건소의 구급차가 딸을 태워 오는 경로다. 구급차 대여료는 삼십만 원인데 자부담 십만 원만 내고 나라서 지원한다고 설명한다. 딸은 집에서 이주를 보내고 검사 후 음성이 판명되면 자유인이 되는 거다. 그동안 아내와 난 머물 곳을 찾아야 하고 장모는 처남 네로 가면 된다. 처제 네 꽃 농사 하우스에 딸린 가건물에서 지내도 되지만 아내는 불편하면 계곡에서 텐트 치고 지내며 출근하란다. 아무려나 이주를 잘 보내려면 모종의 계획이 필요하다.

보건소에서 나와 읍내 의원으로 갔다. 낮게 유지되는 당뇨 수치에 의사는 흡족한 듯 밝은 목소리다. 마스크 너머 웃는 얼굴이 환하다. 그의 염려는 진심일까 웃음이 난다. 처방전 들고 약국으로 가니 노인들이 점령했다. 장날이 월요일이니 장도 보고 약 타러 나온 노인들이 읍내 거리마다 왁자하다. 처방전 내밀고 밖으로 나왔다. 오전인데 아스팔트 바닥을 달구는 열기가 후끈하게 끼친다. 약국 앞 화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화초가 멀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허리가 구십 도로 꺾인 할머니가 지팡이에 기대 약국 문을 민다. 안경점 앞길엔 과일장수가 샛노란 참외를 쏟아놓고 손님 부른다. 큰 다리 쪽에는 봄철보다 뜸한 상인들이 여름옷을 길 따라 기름하게 진열한다. 코로나 이후 다시 찾아온 활기가 느껴지지만 이미 절기는 한여름으로 접어드는 중이다. 내일부터 휴양림으로 일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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