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피로가 있고 개 같은 즐거움이 있다.
새벽에 집 나서는 기분은 적요한 상쾌함이 있다. 다섯 시에 대문을 살짝 밀고 나선다. 소읍의 선득한 공기가 얼굴에 부딪친다. 간밤의 소음, 일상의 자잘한 주름이 깔린 거리의 표정은 사나운 짐승이 잠든 모습처럼 얌전하다. 오락가락하는 장마에 젖은 길에서 풀냄새가 난다. 비에 씻긴 숲에서 산새 소리가 난다. 불어난 개울물은 가뭄에 쌓인 쓰레기를 띄워 아래로 보낸다. 물고기 내장도 씻어 내겠다. 남들 자는 새벽 일어나 움직이는 건 야릇한 쾌감을 동반한다. 일찍 일어나 먹이를 구하는 새가 아닌 깨어 의식하는 즐거움이다. 남보다 먼저 일어나 벌레를 찾는 새는 그만큼 빨리 죽을 수도 있다. 천적의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포식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피시볼(fish ball)을 만드는 정어리떼는 그래서 인간의 공동체와 닮았다. 뭉쳐 단합한 듯 보이지만 도태되는 건 순전히 운에 맡긴다는 식이다. 탄생은 우연한 사건이지만 생명은 삶과 죽음이 조건이기 때문이다. 동물은 약자를 보호하는 본성을 품는다. 인간계는 구조적으로 부단한 제도의 실험을 통해 구성원을 껴안았지만 길은 멀다. 더러 맹수는 약한 새끼는 돌보지 않는다. 절벽에서 밀어버린다. 인간계에서의 배제나 소외는 동물과 닮았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대는 인간이 가진 독특한 감정이다. 이른 시간 가지를 떠난 새는 나름의 확신과 방식으로 삶에 저항한다. 갈매기 조나단도 위험을 무릅쓰고 높이 날음으로써 성냥갑만 한 지상의 실체를 보았다. 휴양림 개장일에 제일 먼저 출근하는 데 의미 부여가 과장되었다. 어쨌거나 숲으로 출근하는 길은 기분 그만이다.
밤에 차량 통행이 뜸한 주유기도 기다란 팔을 걸고 잠에 취했다. 소읍의 가게들은 일찍 문 닫는다. 술집 몇이 늦게 불 밝히긴 해도 골목에서 취객의 발소리를 듣는 일은 드물다. 불 꺼진 주유소를 몇 개 지나 울진 영주 간 자동차 전용도로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고 휴양림으로 간다. 비구름에 잠긴 산들이 부옇게 나타난다. 약수탕 거리는 물기에 젖은 채 잠들었다. 천년 찻집에서 좌회전하면 우곡리 마을 입구의 고갯길이다. 자두나무에 골프공만 한 자두 알이 사과나무에도 계란만 한 파란 사과가 주렁하게 달렸다. 하지 지나 성큼 자란 고추는 성장이 과했는지 무성한 잎을 달고 모로 쓰러졌다. 수염발이 늘어진 옥수수에서 옥수수 익는 냄새가 난다. 고개 넘어 비탈길로 내려서면 과수원에 둘러싸인 마을이 아늑하게 나타난다. 창평저수지 둑길의 정자가 사과나무 우듬지 너머로 보일락 말락 한다. 시리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우곡리 개울엔 가재가 지천이다. 해마다 가제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문수산 계곡 깊숙이 들어가면 천주교 피정(避靜)집이 있다.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사회와 격리된 곳에서 묵상하고 기도하는 피정자들을 위해 마련된 시설물이다. 피정집 전 우측이 휴양림 입구다. 며칠 내린 비로 길가 개울에서 물소리가 난다. 임연부에 무섭게 생긴 나리꽃이 초록에 둘러싸여 선명하게 보인다. 나리꽃이 필 무렵이면 계절은 여름으로 들어선다. 철 따라 피는 꽃은 지구의 생태가 순환한 이후 한결같았을 거다. 그래서 목적도 꾸밈도 없이 스스로 그러한 것을 자연이라 한다. 인간은 자연을 해체하고 파괴하게 정복한다고 말하지만 인간종 외의 동식물은 자연과 더불어 스스로 살다 간다.
정문에서 사슬을 풀고 관리사무실로 올라간다. 계곡을 따라 조성된 휴양림은 오르막이다. 아스팔트에 납작해진 밤꽃이 젖은 채 붙었다. 사무실 열쇠를 찾아 문들을 죄다 열어놓고 컵라면을 꺼낸다. 클래식을 틀고 모니터를 보니 내 차 진입 시간이 뜬다. 다섯 시 이십구 분. 정수기 물이 미지근해 딱딱한 면발을 휘저어 밥 말아 요기한다. 숲의 정령도 돌아간 무렵 사위는 물소리만 들린다. 올 처음 개장한 휴양림은 코로나 여파로 성황을 예상한다. 특별난 위락시설은 없지만 생태숲을 감상하며 휴식하기엔 그만이다. 창고에서 리어카를 꺼냈다. 아홉 시 출근자가 오면 내려가 납작해진 밤꽃을 치울 생각. 가만히 보면 산 아래 풀숲에 야생화가 언뜻언뜻 피어 있다. 꽃들의 이름과 생활사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을 터. 소나무 허리를 수증기가 감고 오른다. 길까지 내려온 칡덩굴이 때죽나무 등짝을 누른다. 산딸기, 산수국, 싸리나무 등속이 서로 엉켜 잎 가득 물방울을 달고 늘어졌다. 늦깬 산새가 소리 지른다. 아직 일곱 시를 조금 넘긴 시간. 삼 교대 첫 출근이라 졸음이 살살 밀려온다.
일곱 시 이십 분에 캠프장에 펜스 설치 차량이 휘리릭 올라갔다. 지난주 만난 러시안 노동자가 탔는지 모르겠다. 휴양림 담당자가 캠프장 숲에서 멧돼지를 본 후 급하게 공사하는 거다. 삼겹살 굽던 야영객이 산돼지를 보면 멧돼지 바비큐로 메뉴를 바꿀까 내뺄까. 사십 분에 청소차가 왔다. 동네서도 본 청소차다. 가끔 쓰레기차 옆에서 쉬는 청소부에게 음료수를 준 적이 있다. 매주 수요일에 온단다. 분리된 쓰레기는 큰 차에 싣고 파지는 작은 차에 싣는다. 휴양림에 놀러 오라고 했다. 군 주민은 할인된다고. 그들이 떠난 수거함이 깔끔하다. 다시 졸음이 음악소리에 묻혀 온몸을 감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