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 새벽 출근이다.
집에 있을 때는 졸리면 엎어져 졸면 됐지만 근무 중이니 피로가 쌓인다. 오후에 퇴근해서도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오래간만에 휴양림 골짜기에 햇살이 비친다. 하늘도 파랗게 벗겨졌다. 주눅 든 산새도 기지개 켜며 시끄럽게 떠든다. 마을로 내려가는 물소리가 재잘대며 신났다. 어제 예약한 탐방객이 취소한 탓에 야간 근무조는 밤중에 집으로 돌아갔다. 휴양림 관리 경험이 전무한 공무원들도 매일같이 드나들며 계획을 세우느라 초조한 모습이다. 안내실 문을 열고 클래식 채널을 켠다. 밤새 사무실 지킨 파리 서너 마리가 잽싸게 빠져나가 아침 공기를 마신다. 컵라면에 물을 따르고 뚜껑을 덮는다.
이러저러 궁리 끝에 빈집을 빌려 쓰기로 했다.
딸의 자가 격리 동안 읍내의 수리한 아파트에서 지내기로 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젊은 부부가 쓸 요량으로 지난봄 수리했는데 냉장고, 가스레인지 등 가재도구는 일체 없으니 캠핑 장비를 그대로 옮기면 된다. 퇴근 후 아내와 청소하기로 했다. 휴양림 야영장은 토•일 이틀만 예약했다. 월요일은 휴관인데 좀 불합리하단 생각이다. 방문객은 모두 월요일을 피해 예약해야 한단 의민가. 다른 휴양림을 검색하니 휴관하는 곳은 없었다. 고쳐야 할 부분이다. 빈집에서 지내다 싫증 나면 간간이 캠핑장에 와서 별 보며 지내기로 했다. 아내는 읍을 관통해 흐르는 내성천 천변에 텐트를 쳐도 좋단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속속 번진다.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숙지는 줄 알았던 바이러스 확산이 작은 규모로 꾸준히 확산 중이다. 가을 들어 이차 펜데믹이 온다면 난감한 상황이 될 것이다. 경제 충격은 현실로 나타나고 나라 곳간은 화수분이 아니다. 경제적 약자 계층은 죽지 못해 아우성이다. 리조트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트럭을 모는 동생은 벌써부터 전직을 고민하고 있다. 이제껏 살아온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흑사병, 페스트라고 불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전염병은 유럽 인구의 1/3을 사망으로 몰아갔던 전염병이다. 흑사병은 1300년대 중반 유럽과 아시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당시 유럽 인구는 6천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유럽 흑사병 사망자 수는 약 2천만 명으로 5년간 인구의 1/3을 사망으로 이끌었다.
스페인 독감은 1918년에 처음 발생해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간 독감을 말한다. 14세기 중기 페스트가 유럽 전역을 휩쓸었을 때보다도 훨씬 많은 사망자가 발생해 지금까지도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불린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군들이 귀환하면서 9월에는 미국에까지 확산되었다. 9월 12일 미국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지 한 달 만에 2만 4000명의 미군이 독감으로 죽고, 총 50만 명의 미국인이 죽었다. 1919년 봄에는 영국에서만 15만 명이 죽고,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2500만~5000만 명이 죽었다. 한국에서도 740만 명이 감염되었으며 감염된 이들 중 14만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네이버 백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지만 실로 공포에 취약한 존재다. 두려움은 정체를 알 수 없을 때 엄청난 위력으로 다가온다. 밤에 열하(熱河)를 말 등에 앉아 건너던 연암은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림으로 평정을 얻었다. 낮에 보이던 사나운 물살은 밤이 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로 변해 사신 일행은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했으니 공포의 실체를 모르면 두려움은 극에 달한다. 사형수는 매일 구메밥을 먹다가 어느 날 간수의 음성과 눈빛만으로 집행일을 알아차린다고 한다. 외려 가슴 졸이던 그의 마음에 체념의 안도가 스며들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이후 변종 바이러스가 강한 침투력으로 인간 세상을 파고들지 모른다.
국회 생명안전포럼 창립식에서 김훈 작가는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과 자살률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제1위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일터에서 일하다가 떼죽음을 당하는 참사가 수십 년간 계속되고 발생 건수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비극적 사태는 대부분 기업이윤의 틀 안에서 발생하고 있고, 이윤의 논리로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다들 알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자살은 대부분이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선택이 아닙니다. 삶을 가능케 하는 모든 조건과 환경과 희망을 상실하고 아무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 벼랑으로 몰려서, 거기서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이 수많은 죽음의 배경은 사회경제적이며 구조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다들 알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처럼 한국의 산업재해 희생자, 자살자들의 죽음도 사회적, 제도적 배경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지 플로이드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는 숨 쉴 수 없다(We can’t breathe)'라고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국권 회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여러 어른과 민주사회 건설을 위해 목숨과 생애를 바친 수많은 국민들, 젊은이들이 원했던 나라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래 세대의 국민이 원하는 나라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생태 사상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선생은 "당장의 기술적 해법만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생태계 훼손을 막고, 맑은 대기와 물,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한 토양의 보존과 생태적 농법,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소박한 삶을 적극 껴안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건 무엇일까 자명해진다. 탐욕의 배후에는 자본의 조직이 도사린다. 태어나 무의식적으로 세뇌된 성공, 행복이라는 도식. 거기엔 공감과 연대는 없고 독점과 세습이 판친다. '현실적'이란 말은 습속에 익숙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더 들어가면 현실주의자란 의미는 현실의 내면을 궁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리얼리즘 문학의 특징이 시대와의 재현적 연관성, 사회적·정치적·경제적·이념적 시대상에 대한 고찰, 작품 속에 그려진 사회적·개인적 삶의 형태 간의 인과관계, 시간적·공간적 세부묘사의 정확성, 등장인물의 자세한 심리묘사를 그 특징으로 한다면 이상주의, 관념주의는 상대편에 있는 정도일 것이다. 이상과 현실은 상상의 바탕이며 창조의 토대다. 어느 하나도 허투이 지나칠 수 없는 가치다. 근무일지에 어제 일과를 정리한다. 풀숲의 야생화가 이슬 젖어 새뜻한 얼굴이다. 물소리 깔린 계곡의 하늘이 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