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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일기 10

by 소인

숲의 아침은 정갈하다.
나무의 정령이 내뿜은 입김과 밤새 가지 사이를 떠돈 그들의 체온이 채 식지 않았다. 고요한 공기를 휘저어 물결을 이루는 건 산새의 목 트임인데 요란하고 방정맞으면서도 힘차고 집요하다. 마을의 골목에서 두부장수의 종소리가 아침을 깨뜨리는 것처럼 숲의 단잠은 산새의 기지개로부터 시작된다. 산의 정기와 몸은 숲의 정령과 뿌리와 잎으로 물기와 햇볕을 빨아들인 수목의 힘찬 구동과 짐승의 삶이 비비고 섞여 이루어진다. 산의 개념은 숲과 다른 지질학적 형상의 뜻이다. 산에는 바위와 모래, 흙과 개울, 수목과 동물이 사는 숲의 거대 집합이다. 그래서 산은 생명이라기보다 형상이고 그것에 숨을 불어넣는 건 숲의 구성원들이다. 숲으로 난 길을 걸어가면 자신의 독자적인 존재의 드러남이 서서히 사라지고 주변의 인자들이 몸과 정신에 스며든다. 나무 사이를 흐르는 공기, 소리 내며 굴러가는 물방울의 파동, 어디선가 나뭇잎 너머 엿살피는 새의 뒤척임, 땅을 기는 벌레와 귀를 세우고 긴장하는 고라니 등 숲의 얼개는 세세한 관계가 이합집산하며 상태를 만들어 간다. 숲은 저대로 생활사를 이어간다. 거기에는 어떤 목적도 없다. 개화하고 무성한 잎을 달다 열매를 떨구고 추운 겨울을 견디는 게 나무의 일생인 것처럼, 동물도 벌레도 교미하고 번식하다 종내는 사라져 흙으로 돌아간다.

사람인 인간종은 유일하게 '스스로 그러한'상태에 간섭하고 의미와 목적을 주입한다. 강제성을 띤 대상이 틈입하는 순간 갈등과 파괴는 찾아온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진대 존재 의미를 드러내는 순간 위계가 이뤄지고 질서의 파동은 엇박자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숲에서 치유를 얻는 건 고향인 원시의 감각으로 돌아가는 유사 체험을 의미한다. 인간은 수천 년을 통해 문명과 문화를 일구며 서서히 자연과 분리되었다. 과학은 그것에 매개와 동인(動因)을 제공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성찰은 차갑고 번득이는 혜안의 경지다. 존재 본연의 상태를 깨닫는 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돈오(頓悟)의 각성도, 점수(漸修)를 통해 저절로 얻는 게 아니라 부단한 구도 과정의 결과다. 벌레와 인간의 백지장 같은 차이를 분별하는 것도 해탈의 경지다. 함부로 재단하여 교만의 줄을 타는 곡예를 하는 게 나약한 인간이다.

커피물 올리고 음악을 듣는다.
적당한 기운이 밤을 보낸 수목의 몸을 감싼다. 찌르듯이 하늘로 뻗은 소나무, 굵은 몸피로 땅을 받치고 선 낙엽송, 아래에 군락을 이룬 때죽나무 이파리의 초록 물결. 희붐한 동살 무렵부터 소쩍새가 울고 잠들었던 물소리가 계곡을 흔들어 깨우며 마을로 내려간다. 임산 도로 입구의 숙소 방문객은 여적지 조용하다. 아침 먹고 야영 살림을 정리했다. 야간 근무자와 아침 교대자가 개수대 외벽의 벌집을 제거하고 있다. 살충제와 가스통을 든 그의 허리가 위태롭다.

집에 가서 운동화와 아이스팩을 꺼냈다. 부스럭대는 소리와 두런대는 말소리에 딸아이가 깼다 우리는 이 미터 떨어져 반년만의 상봉을 했다. 분꽃이 피었다. 성큼 자란 두 번째 오이를 따서 딸이 먹으라고 창턱에 올려 두었다. 서슬에 잠 깬 까만 고양이 루팡이가 내려와 밥 먹는다. 어제는 창틀에 앉아 딸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란다. 딸이 대만에 있을 때 루팡이가 태어났으니 난생 초면인 거다. 호기심 많은 녀석이 당황했을 법도 하다. 욕심 많은 호박은 허공을 움켜쥐거나 지붕이며 담장 밖으로 덩굴손을 뻗으며 탈주를 시도하고 있다. 사다리에 올라가 끈으로 덩굴을 유도해주었다. 봄에 듬성하게 뿌린 파씨는 제법 기름한 허리를 하느작대며 자란다. 아내는 딸에게 필요한 것을 묻고 퇴근 후 사 오겠다며 일터로 가고 난 격리기간 중 쓰기로 한 빈집으로 돌아왔다. 살림을 펼쳐놓으니 난민촌 같다. 옷과 식료품, 부엌살림이 전부다. 이틀 동안 한둔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씻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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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보건소입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문의사항은 054-679-6724로 연락 주세요.

공항에서의 간단한 발열 체크와 격리 시작 다음날 지역 보건소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검사한 결과가 문자로 날아왔다. 내심 반가운 결과다. 만에 하나 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온다면 모두에게 심각한 일이다. 격리 상태가 끝나고 무탈한 결과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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