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에서 올라온 고기 녹인다.
다릿살은 퍽퍽해도 양념 잘하면 풍미를 즐길 수 있다. 얼린 고기를 살짝 녹여 써는 게 얇게 써는 비결이다. 비건도 아닌 주제에 돼지고기 먹을 땐 돼지 생각은 안 하기로 한다. 사각사각 언 동치미 무 씹는 소리 난다. 좀 전 칼 갈아두길 잘했다. 이십 년 전 시골 내려올 때 산 숫돌을 아직 쓴다. 낫을 갈거나 부엌칼, 과도를 간다. 이름난 돌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날을 세울 수 있다. 낫 갈기도 시골살이 시작하면서 스스로 터득한 기술이지만(기술이랄 것도 없다) 남 하는 거 눈대중으로 보고 익힌 거다. 칼이나 낫이나 먼저 앞 뒷날을 번갈아 문댄다. 낫의 경우 묵은 녹을 벗겨내기 위함이고, 칼의 경우는 혹여 보이지 않는 다친 날을 정렬하기 위함. 힘을 주어 거칠게 갈아내는 게 일차 요령이다. 풀낫은 앞 쪽의 날을 주로 사용하고 쇠살이 두꺼운 나무 낫은 정글 칼처럼 비스듬히 세워 내려치기 때문에 슴베 쪽까지 날을 갈아줘야 한다.
어릴 적 서울의 주택가 골목에는 칼 장수가 다녔다. 짐자전거에 손으로 돌리는 그라인더, 숫돌, 물통 등을 싣고 칼 갈아!~를 외치면 여기저기서 칼을 든 아줌마들이 대문을 밀고 나왔다. 칼 장수 아저씨는 연장통에 새로 만든 무쇠 칼을 죽 꽂고 다니며 새 칼을 팔기도 했다. 쓱쓱 싹싹 물 적셔 칼을 갈며 틈틈이 손가락에 칼날을 대고 살피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베이지 않을까 오싹 소름이 돋기도 했다. 칼 장수를 보고 나중에 자전거에 숫돌을 싣고 전국을 누비는 꿈을 꾸기도 했다. 아줌마들은 재봉틀 가위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유심히 칼 가는 모습을 관찰한 탓에 이후 집안의 칼이란 칼은 죄다 내게 맡겨졌다.
낫의 경우는 좀 다르긴 해도 별반 특이점은 없다. 양날을 눕혀 번갈아 간 후의 포인트는 역시 날 세우기인데, 마지막으로 물을 흠뻑 적신 다음 날을 세워 길게 빼듯이 문지르는 거다. 잘 세운 날은 종이도 쉽게 잘라진다. 장터의 칼 장수가 날을 뽐내느라 종이를 세로로 베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 정돈 내 깜냥으로도 할 수 있는 기술이다.
요즘은 칼의 종류나 품질이 좋아 무시로 필요한 걸 사다 쓸 수 있지만 칼 중에서도 유독 까다로운 칼이 있다. 사시미칼이라는 회 써는 칼인데 어깨 쓰는 양아치들이 생선 대신 사람을 찌르기도 한 그 칼 말이다. 사실 진짜 건달은 칼을 쓰지 않는다. 주먹으로 승부를 봤다. 양은이파 이후로 칼 쓰는 양아치가 늘어났다. 글씨가 새겨진 일제 회칼은 강하게 담금질한 쇠라 일반 무쇠 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칫 자기 방식으로 날을 세우려다간 외려 칼을 망가뜨리고 만다. 회칼은 날이 생긴 그대로 슥슥 밀어주면 그만이다. 이발사가 혁대에 면도날을 문대듯이 말이다. 새로 날을 잡는다든지 하는 행위는 절대 금물이다. 섬나라 사무라이(侍)는 영주의 신변을 보호하는 상급 무사였다. 그들의 칼솜씨는 바람 같았는데 알려진 것처럼 의리에 죽고 사는 충복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명예로운 죽음의 방식은 할복(割腹)이란 건데, 칼로 배를 가르는 고통을 덜어주려 할복자의 뒤에는 늘 목을 치는 칼잡이가 서 있었다. 배를 가르는 순간 목을 치는 방식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칠 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1954)'는 전란(戰亂)이 만들어낸 노부 시(野武士: 산적 무리)의 횡포로부터 백성들을 구하는 줄거린데 우습게도 대가는 쌀밥 한 그릇이었다. 전국시대 이후 망한 영주에게 버림받은 사무라이들의 굶주림이 극심했던 때였다. 난징 대학살 때 일본도로 중국인의 머리를 베는 잔혹한 학살을 저지른 그들의 만행은 역사 수정주의 일본의 잔인성이었다.
고기 얘기하다 칼 얘기로 빠졌다.
주물럭 양념은 진간장이 주재료다. 물엿, 다진 마늘, 후추, 참기름, 고춧가루 등을 적당 비율로 맞추고 어슷 썬 대파와 양파를 섞어 버무려 놓는다. 도마에서 썬 돼지고기를 양푼에 한 켜 깔고 양념을 살짝 얹는다. 고기와 양념을 번갈아 섞으며 도마에서 고기가 사라질 때까지 켜켜이 재운다. 저녁에 화단에서 솎은 상추 씻어 쌈 하면 맛날 텐데 술 생각은 나지 않는다. 혼술을 삼가기로 한 이후 술 먹는 날이 줄었다. 술 취한 기분을 즐길 때도 있었는데 최근엔 시간이 아깝단 생각이 든다.
마당의 덩굴식물은 세 가지.
호박과 나팔꽃 그리고 오인데 호박은 날로 하늘로 오르는 게 눈에 뜨인다. 키만 높이는 게 아니라 벋어 나가며 겨드랑이에서 새순을 끊임없이 밀어낸다. 허공으로 달아나려는 덩굴손을 받침대로 유인해주려 고추 끈을 묶어놓는데 호박은 기필코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몸을 비틀고라도 내뺀다. 나팔꽃은 한눈팔지 않고 똑바로 기어오른다. 저 기세라면 옆에 선 체리나무를 덮을 것 같다. 한 포기 심은 오이는 초기 성장이 둔하더니 얼마 전부터 노란 꽃을 매달고 기지개 켜는 아기처럼 덩굴을 뻗어 오른다. 오르는 것들의 움직임이 집요하고 거침없다. 초여름으로 들어서면서 잔디도 주변을 먹어 간다. 한여름이면 땜빵 난 곳을 잠식하고 남겠다. 땅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젖도록 비 내리면 메리골드 모종을 얻어 심어야겠다.
상추, 쑥갓 정리하고 메리골드와 분꽃이 왕성하게 자신들의 영토를 넓힐 거다. 뼘뙈기 마당엔 우렁우렁 초록 불길 번지고 사념을 키우는 주인의 시름도 불더위에 푹푹 삶아질 테지. 여름 밤하늘엔 데삶은 우리들의 표정 속속들이 박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