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일기 9

by 소인

도착

딸은 정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카톡밖에 되지 않아 나는 딸이 알려주는 대로 보건소에 연락하는 처지가 되었다. 보건소 담당자는 입국자와 구급차를 연결하는 업무로 토요일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사무실 전화보다 휴대폰으로 입국자와 직접 연락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아쉽다. 딸의 말로는 114로 휴대폰 개통은 월요일이라야 가능하단다. 어쨌든 휴양림 오후 근무로 열 시 퇴근이고 딸은 밤길을 거쳐 집에 도착하리라. 아내는 세탁기 세 번 돌리고 건성으로 청소한 날 원망하며 퇴근 후 집안 청소 중이다. 아내가 오면 휴양림 주차장에 텐트 칠 예정이다. 야영 데크 예약 착오로 어제 날짜로 사용료만 지불하고 공친 꼴이 되었다. 어쨌거나 월요일은 휴관이고 캠핑족은 일요일 정오에 철수하니 그때 빈 데크로 텐트를 옮기면 된다. 우리는 월요일 오전에 철수하여 빈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다음 주 내내 비 소식이니 야영도 불가한 상태일 거다. 숙소, 야영 데크가 다 찬 걸 보니 개업빨이 세긴 세다. 한두 군데 정도 빌 줄 알았던 생각은 착오였다.

당직실에서 컵라면에 밥 말아 저녁 먹고 공동 샤워장과 개수대를 돌아본다. 샤워실은 상태가 양호했으나 개수대 수챗구멍에 야채와 음식 찌꺼기가 가득했다. 하나씩 꺼내 비닐봉투에 털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은 쓰레기로 남는다. 먹어야 즐길 힘이 나지 않겠는가. 텐트 주변을 깜빡이 불로 장식한 캠핑족이 보인다. 경사로에 깔린 매트 양쪽의 텐트를 점검하며 물탱크로 올라갔다. 취사는 바베큐장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텐트마다 휴대용 가스로 고기를 굽거나 밥을 먹고 있다. 바베큐장엔 한 팀도 없다. 맨 위 12번 데크에서 젊은 연인이 음악을 틀어놓고 고기를 굽는다. 데크 앞에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내려놓고 조용히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휴양림 관리인입니다. 쉬시는데 죄송합니다만 야영자에서는 불을 사용한 취사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두 남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다른 휴양림에서는 캠핑장에서 취사가 가능하다며 의아한 표정이다. 난 문수산 휴양림의 규칙을 내세웠지만 실은 별도리가 없다. 한둘도 아니고 거개가 휴대용 가스를 쓰니. 숯불은 없냐고 물었다. 물론 없단다. 가스불 사용에 최대한 주의를 당부하고 내려왔다. 개수대에서 젊은 여자가 수면바지 차림으로 설거지한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귀가 시 안내실 앞의 수거함을 이용해 달라고 정중히 말했다. 수고하시라며 돌아서는 여자의 표정이 밝다.

산림휴양관, 묵상의 집, 숲 속의 집으로 명명한 숙소 베란다에는 외등 아래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고성방가나 떠드는 소리 없이 차분한 분위기들이다. 일찍 저녁을 마친 일행은 휴양림 주변을 산책한다. 산등이 거뭇한 실루엣으로 바뀌고 가로등이 켜진다. 숙소 창문마다 불이 들어오고 계곡 물소리, 산새 소리가 섞여 갈앉는 느낌이다. 카톡을 연신 보내던 딸아이는 보건소 담당자와 연락이 되어 동대구역에서 구급차를 탄단다. 내일 오전에 보건소에 가서 바이러스 검사도 해야 한다. 새벽 출근이 오후 밤 근무로 이어지고 다음 주엔 야간 근무다.

미국, 멕시코에서는 삼사월의 이탈리아, 스페인을 능가하는 사망자가 속출한다. 변종 바이러스의 펜데믹을 염려하는 질병관리본부 담당자는 TV 속에서 심각하다. 바닷가에는 젊은이들이 모여 고기를 굽고 노래방에서 얼싸안는다. 도시의 예배당에서는 마스크 쓰고 찬송가를 부르고 확진자는 스멀스멀 불어난다.

여덟 시 반경 남자가 사무실 문을 노크한다.
겁에 질린 얼굴의 남자는 야영 데크 위쪽에서 짐승 소리가 나서 무서워 철수한단다. 고라니 소리냐고 하며 흉내 냈더니 그 소린 아니란다. 분명 개 비슷하게 컹컹대는 게 불만 섞인 개소리 같단다. 분명 개소린지 아리송하다. 담당자에게 연락하니 대수롭지 않은 대꾸다. 전화기 너머로 술 취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어린 남매를 뒷좌석에 태우고 대구로 귀가한단다. 옆에 앉은 젊은 부인은 개 소리 같은 건 별거 아니란 듯 웃으며 인사한다. 조심히 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랜턴을 들고 야영장으로 올라가는데 차 한 대가 불 켜고 내려온다. 손짓해 세우니 아까 본 십일 번 데크 손님이다. 일정이 바뀌어 나간단다. 이래저래 초저녁에 만석이던 데크는 세 곳이 비었다. 숙소 앞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모여 얘기를 나눈다.

딸아이는 열두 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했고 우리도 열두 시가 다 되어 텐트를 쳤다. 멍게 안주로 소주 한 병을 비웠다. 내려다본 숙소 주변은 대낮처럼 환하다. 마치 전원주택단지 한가운데 텐트 치고 있는 느낌이다. 조명을 몇 개 꺼주었으면. 빛은 안도의 상징이다. 칠흑 같은 어둠은 천지분간이 없는 무명의 상태. 지하 칠백 미터 수직 암굴의 아연광산에서 광차를 밀었다. 원석을 실은 광차가 케이지를 타고 동료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가면 홀로 남는다. 헬멧의 케이프 불빛에 의지해 벽과 바닥, 천정을 분별했다. 안전등을 꺼보았다. 손에 묻어날 것 같은 어둠이 느껴졌다. 암흑의 우주 공간도 이럴까. 존재의 유무조차 적멸한 무무명의 공간. 시공의 의미를 초탈한 경지는 도대체 무엇으로 나타나나. 지상의 공간은 이승이고 지하의 암흑은 무덤 속의 무명. 지상의 일들이 스크린처럼 지나갔다. 나는 왜 여기서 암흑을 응시하는가. 그때 아슴푸레하게 소리가 났다. 딱따그르르... 태초의 공명. 거미줄처럼 뚫린 암반에서 터지는 발파 소리다. 납의 무게를 지닌 아연 원석은 콩알만 한 알갱이라도 수백 미터를 낙하하면 치명적이다. 지하수가 쏟아지는 막장에서 우비를 입고 삽질했다. 우지끈! 헬멧에 부딪는 원석 알갱이는 난폭했다. 주먹만 한 게 떨어지면 뒷일은 불감당이다. 헬멧을 스친 알갱이가 뒤통수의 피부를 찢는다. 물과 피가 섞여 밍밍하게 몸을 타고 흘렀다. 안전과장은 작은 상처라도 보고해야 한다고 주억거렸다. 상처를 보더니 하루 쉬라고 하며 등을 두드렸다. 덕대 사장이 생산한 원석의 무게와 지폐를 저울질하는 동안 안전과장은 도솔암으로 떠났다. 광산 사택과 집을 오가며 밥을 벌었다.

밤새 소쩍새가 울었다.
이슬 젖은 새벽 숲은 순한 짐승 같다. 신갈나무 이파리가 희부연 하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물 없이 마신 술로 속이 쓰렸다. 실로 오랜만의 숙취다. 텐트에서 기어 나와 커피물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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