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일기 11

by 소인


계곡에 매미가 운다.
소나무와 잣나무, 천연림으로 이루어진 문수산 숲의 수목은 한낮의 햇살 아래 청청한 빛을 뿜어낸다. 관리실에서 틀어놓은 올드 팝송이 계곡의 적요를 잘게 부수며 흐르는 중이다. 휴관일인 월요일은 일요일에 들어온 탐방객이 퇴실한 오전부터 휴양림은 고요에 잠긴다. 매미 소리, 풀벌레 소리가 배경으로 깔린 솔숲의 바람은 쾌적한 반면에 퇴실한 객실 청소로 관리인은 바빠진다.

경사로를 오르내리며 숙소 청소하고 나면 땀으로 후줄근하게 젖는다. 손님들의 사용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쓰레기는 안내실 앞의 분리수거함에서 처리하게 되어 있으니 대개의 손님은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와서 버린다. 어떤 객실은 음식물 쓰레기, 빈 술병, 페트병이 넘쳐나고 이부자리는 허물 벗은 뱀처럼 널브러져 있다. 자기 집이라면 이럴까. 내 돈 쓰고 간다고 상식을 내던지는 꼴이다. 청소차는 매주 수요일 오던 걸 주말 지난 월요일과 수요일 두 번 오기로 바꿨다. 객실 청소의 패턴은 여느 숙박업소와 다름없다. 먼저 이부자리와 주방, 욕실을 철저히 점검한다. 개수대의 음식 찌꺼기와 휴지통, 이부자리와 바닥의 얼룩, 머리카락 한 올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세탁물은 세탁공장으로 보내고 유실된 비품이 없는지 비품목록을 대조 체크한다. 아무리 완벽하게 청소해도 벌레와 먼지는 틈으로 들어온다. '숲나들e' 홈페이지로 숙소 예약이 들어오면 입실 전날 재점검하는 건 필수다. 전국 휴양림 예약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홈피는 코로나 시대에 호황이 예상된다.

창호의 개폐와 방충망의 파손 유무를 점검한다. 숲 속이라 날벌레, 벌 등의 출몰이 잦다. 다족류 곤충인 그리마가 수시로 나타나 바닥에 뒹군다. 청소기와 대걸레로 바닥을 밀면 청소가 마무리된다. 비누, 화장지, 식기류 등은 분실되기 일쑤다. 손님이 두고 간 물건은 연락하여 처리한다. 싱크대와 세면대, 욕실 바닥의 물기까지 말끔히 닦아 마른 상태를 유지한다. 야영 데크의 공동 개수대와 공동 샤워장은 수시로 점검해서 항상 청결 상태를 유지한다. 특히 처마나 돌 틈의 벌집은 수시로 제거한다. 말벌이나 땅벌 등 맹독성 벌은 나타나지 않지만 벌독에 예민한 사람은 사소한 벌의 공격에도 치명적이다. 가을까지 번식하는 벌의 생리 상 벌집 제거는 휴양림 관리 업무 가운데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휴양림 관리 중 상시 작업이 조경관리다.
봄부터 가을까지 생육하는 식물의 관리는 휴양림을 찾는 이들에게 쾌적한 공간과 아늑한 풍치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제초 및 가지치기, 낙엽 청소 등 철마다 작업종이 다르고 연장도 예초기를 포함해 기계톱, 전정기, 송풍기, 세척기 등 다양하다. 수목 작업 경력이 이십 년이니 웬만한 일머리는 다 꿴다. 국유림 영림단, 산림조합 산림 작업과 수목 관리를 했고, 소나무 전정이 전문이다. 아직 근력은 왕성하나 체력의 빈곤을 느낀다. 장년의 기력은 죽지 않았으나 경험에 비추어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열대 우기로 기후가 바뀐 듯한 올여름 잦은 비로 풀 오르는 기세 맹렬하다.

유럽 형•아프리카 형 변종 바이러스가 확산 추세다.
변종 바이러스는 확산 속도가 빨라 질대본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가 공표되었지만 종교 시설, 다단계 판매 등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소규모 확진이 연일 뉴스로 뜬다. 해외여행이 막히자 국내로 방향을 돌린 사람들은 바다, 산으로 몰린다. 대구에선 가짜 양성으로 판명되어 시장이 TV에 나와 징징댄다. 그는 진단검사 실수로 학교가 휴교되고 가짜 환자가 치료에 들어가는 등 법석을 떨었는데 사과를 마치 남의 일처럼 떠벌린다. 단체장의 책임 있는 자세는 공동체 신뢰의 기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일관되게 보여준 행위로 이미 그는 지도력의 밑천을 드러냈다. 팬티 차림으로 승객에 섞여 탈출한 세월호 선장처럼 자신의 앞가림에 급급한 수장은 공동체의 불안과 아픔을 헤쳐나가기엔 자격 미달이다. 딸은 고양이 사료를 채워주는 것 외엔 마당조차 얼씬 하지 않고 독거 중이다. 아내는 수시로 보일러실 냉장고에서 아이스팩과 반찬을 나른다. 보건소에서 음성 문자가 와서 안도했지만 격리 기간 후의 일상도 조심해야 하리라.

며칠 전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수리부엉이를 본 숲 아래 경사면에 도라지꽃이 피었다. 계곡에는 야생화가 숨은 채 고개 내밀고 있어 찾아 즐기는 재미가 있다. 안내실 오른쪽 계곡에는 산수국이 우점종이다. 십자형 꽃잎을 사방에 달고 있는 모습이 드론 같다. 화단의 수국과 달리 수줍은 꽃판이 돌담 너머 시골 처녀의 미소처럼 질박하다. 산딸기는 빨간 열매를 오종종하게 달고 초여름의 햇살을 이파리 듬뿍 끼얹는다. 잣나무 임상(林相)의 산자락에 계곡을 돌아친 바람이 쓸고 간다. 우듬지의 잣송이가 파란색 도화지 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움찔대며 흔들린다. 나뭇가지 위를 미끄러지듯이 타고 움직이는 청솔모가 보일 듯도 하다. 그늘에 앉아 땀 식히니 풍경에 묻혀 싸목싸목 졸음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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