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숙소로 돌아왔다.
오래된 아파트를 팔려고 수리한 집이라 말끔하다. 가구는 없고 도시가스도 연결하지 않아 블루스타로 국 끓인다. 여분의 밥솥을 가져와 밥하기는 편하다. 집을 통째로 내준 이웃의 마음이 고마워 방을 쓰지 않고 거실 구석에 침낭을 깔고 자기로 했다. 빨래 건조대를 세워 옷장으로 사용하니 싱크대에 흩어진 그릇이며 냉장고 대용인 아이스박스 등속이 마치 난민촌 살림이다. 처음 경험하는 코로나 풍속이다.
전쟁을 피해 사막을 건너는 시리아 난민, 나라 없이 산간 계곡을 떠도는 쿠르드족, 수치의 묵인 아래 학살을 겪으며 밀림을 헤매는 미얀마의 로힝야족.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의 디아스포라를 시작으로 인류는 역사 이래 숱한 난민의 고통을 겪었다. 반목과 증오, 전쟁과 침략은 민족끼리의 끊임없는 학살과 고통을 낳았다. 우리는 어떠한가. 살길을 찾아서, 독립운동으로 만주로 연해주로 떠돌았던 영혼들은 청청히 빛나는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하와이 농장 노동자로 팔려가고 전쟁 미치광이 일본의 총칼에 휘둘려 징병, 징용으로 꽃다운 여성들을 위안부로 끌고 가 학살과 굶주림으로 타국의 정글에서, 섬에서 고혼으로 떠도는 영령들의 다아스포라는 처절한 절망이었다.
살면서 많은 일을 했다.
이력서를 쓸 때는 되도록 간략하게 썼다. 대별하면 건설회사, 광고회사, 수목 작업 세 가지가 주된 밥벌이였다. 결혼 전에는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싸돌아다녔다. 남도를 경운기 몰고 고물을 사러 다녔다. 가락엿과 빨랫비누를 고물과 바꿨는데, 말 그대로 엿장수 마음대로였다. 바닷가 마을엔 고장 난 스크루, 폐그물이 나오기도 했는데 스테인리스 봉인 스크루봉은 돈이 되었다. 어떤 날은 전기 공사하는 인부들이 남은 자재 묻은 곳을 알려줘 구리선과 동판을 무더기로 발굴(?)하는 횡재수를 만나기도 했다. 고물은 재활용이 되는 물건이다. 고추씨, 우뭇가사리, 헌책, 막걸리병, 소주병, 부서진 재봉틀 다리, 숯불 다리미... 그야말로 인간 세상에 처녀 불알만 빼고 뭐든지 사고팔았다. 한 번은 모녀가 사는 집에서 책을 쓸어 담았는데 그중에 청마 시집이 섞여 있었다. 초판인지 표지 디자인이 조악(粗惡)했는데 고이 갖고 다니다 잃어버렸다.
고물의 분야에서 박사는 없다. 종류도 가지가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스테인리스도 24종, 47종에 따라 철이 섞인 게 있고 흔히 보는 구리 색깔을 띤 전화선은 구리가 아니다. 모르고 샀다간 낭패 보기 일쑤다. 비철로 값이 나가는 종목은 구리, 청동(신쭈), 노비(알루미늄)이고 쇠꽂도 재질에 따라 상철과 하철로 나뉘고 단가가 다르다. 폐지, 빈병 등은 부피만 나갈 뿐 돈이 되지 않는다. 주물(鋳物、いもの)은 재봉틀 다리가 주로 나온다. 재수 좋으면 경운기 대가리나 고장 난 모터가 나오기도 한다. 주인이 고물을 찾아보라고 허락하면 먼저 뒤란을 돌아본다. 그러면 닳고 닳은 녹슨 보습이나 시간의 더께가 앉은 농기구들이 먼지 쓴 채 볕을 기다린다. 더운 입김 토하며 배고픈 세월을 시난고난 살아온 선대의 사연이 녹슨 농기구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얘기하다 보니 고물이 줄줄 달려 나온다. 벽돌공장에서 벽돌을 찍다 여수 국동항에서 중선배 타고 동지나해에서 갈치, 아귀, 갑오징어를 잡았다. 그물을 올릴 때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갈매기떼가 왁자하게 떠들며 음험한 꿈 죽지에 감추고 나타났다. 서울로 돌아와 건설회사 삼 년 동안 노조 활동에 전념했다. 동아리를 조직하고 육백 명의 조합원에게 기타 치며 노동가를 가르쳤다. 여성 조합원 동지들이 결혼식 축가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불러주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지금은 다른 나라에서 사는 큰형, 작은형이 광고업계에 있었다.
자연스레 나도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카피를 쓰고 광고 시간을 사러(Media Buyer) 방송국 출입을 했다. 광고업계 십 년 동안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로 바뀌었지만 도시 생활은 내겐 지옥이었다. IMF가 터지고 부하직원을 잘랐다.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내려가 숲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어린 남매와 젊은 아내를 끌고 내려온 시골살이의 밥벌이는 캄캄절벽이었다. 숲 가꾸기 공공근로를 하다 아연 광산에서 원석이 실린 광차를 밀었고 숯가마에서 부장대 들고 하얗게 재를 뒤집어쓴 백탄을 꺼내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똑별난 성격은 무시로 집을 뛰쳐나갔다. 뒤통수 피딱지가 떨어질 무렵 문학에 눈을 떴다. 문학은 또 다른 확장의 세계였으며 도피처였다. 세상 엿보기로 돌아다녔다. 낯선 도시의 공사장 건물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자면서 베개만 한 두꺼운 국어사전을 안고 잤다. 사막 땅으로 떠나는 꿈을 품고 직업훈련소에서 미장을 배웠다. 실습 나가던 무렵 빛고을의 도시 광주에서 폭도들이 총을 들고일어났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세상이 한 번 뒤집혔으면 좋겠단 생각을 품었던 시절이었다. 결국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지만 역마직성은 늘 곁에서 맴돌았다.
오늘 작업은 야영 데크의 펜스 틈에 돌 채우기다.
휴양림 담당자가 멧돼지를 본 후로 야영 데크 주위로 펜스를 쳤는데 바닥에 공간이 생긴 거였다. 데크 주변에 널브러진 뾰족돌을 주워다 틈을 메운다. 고라니는 수직으로 점프해서 일 미터나 되는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있다. 멧돼지는 주둥이로 단단한 땅을 파헤쳐 나무뿌리를 캐먹기도 한다. 마음만 먹으면 이깟 펜스 정도는 쉽게 넘고 공간을 메운 돌무더기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오후에 출근하자마자 펜스 틈에 돌을 채웠다. 큼직한 돌로 큰 구멍을 막고 잔돌로 빈틈을 채운다. 남자 셋이서 오십여 미터를 채워나갔다. 숙소에 손님이 들지 않은 날엔 바깥일을 한다. 풀 뽑기, 마당 쓸기, 무너진 곳 보수하기, 풀베기, 죽은 나무 베기 등 할 일이 많다. 야간근무는 순찰이 주 업무다. 한아름이 넘는 60년 생 낙엽송 둥치가 호위하듯 데크를 따라 줄 섰다. 전쟁과 땔감 남벌로 민둥산이었던 강토가 두 세대 사이에 울창한 수림으로 변했다. 쉴참 계곡의 수목을 통과한 바람이 등줄기를 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