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35)
능포항 공원에서 책 보다 집으로 가기엔 이른 시간이라 건너편으로 갔다.
낚시 데크에서 낚시하는 사람 둘이 있다. 좀 전의 빨간 등대에서는 대여섯 명의 낚시꾼이 있었는데 간간이 학꽁치를 낚았다. 남자들 틈에 아줌마가 끼었는데 캐스팅 자세를 보니 그녀는 베테랑이었다. 앉은 채로 대를 휘둘러 정확하게 포인트에 안착시킨다. 학꽁치가 올라오자 면장갑으로 집어 재빨리 바구니에 넣었다. 옆의 남자는 올리다 떨어뜨렸다. 테트라포트 사이 떨어진 학꽁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부리나케 달아난다. 바다로 돌아간 학꽁치는 미끼의 유혹을 견뎌낼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들과 함께 수면에서 노는 찌를 노려봤다. 부력 찌 앞의 작은 찌가 물속으로 들어갈 때마 낚싯대를 쥔 낚싯꾼의 어깨가 움찔했다. 길 가다 물만 보면 두근거렸던 예전의 취미는 이미 사라졌다. 윤회가 있다면 난 더러운 물에서 노는 붕어로 태어날 거다. 그러다 푹푹 찌는 여름날 하릴없는 백수 낚싯꾼의 바늘에 걸려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리는 운명.
어제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가 바람에 떨어져 이웃집 슬라브 주택에 떨어졌다. 실은 아침에 햇볕에 널려고 올라간 건데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능포항에 나갔는데 바다라 그런지 바람이 더 사나웠다. 옥상의 빨래가 걱정되어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뿔싸, 골목에서 올려다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펄럭이는 빨래가 툭 떨어지는 게 아닌가. 마치 바람 부는 날엔 옥상에 널지 말란 경고 같았다. 옥상에 올라가 나머지 빨래를 걷어 방에 던지고 이웃집으로 갔다. 벨을 누르고 불러도 반응이 없다. 오래된 주택은 여기저기 페인트 칠이 벗겨지고 기다란 화단에는 껑충하게 자란 종려나무 혼자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노인이 누굴 찾느냐며 골목 입구에 나타났다. 사정을 말하니 이 집 사람들은 밤새 일하고 지금을 잘 시간이라며 문을 두들겨 보라고 했다. 한참 부르다 도로 방으로 올라갔다. 밤새 일한다면 술집을 하나. 두어 시간 후 주인을 만나기 어렵다면 대문에 메모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메모에 테이프를 달고 다시 내려갔다. 대문 옆 담장 틈으로 고개를 들고 살피는데 한 여자가 현관문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여자는 아!...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며 사정을 말하니 문을 열어준다. 여자는 메모는 볼 필요 없는데 손을 내밀었고 엉겁결에 나도 메모지를 건넸다. 떨어진 빨래는 하나가 아니었다. 슬라브에 하나, 뒤란 바닥에 두 개가 떨어졌다. 들고 나오는데 여자가 저런... 안됐다는 표정이다. 한 서른 후반쯤 됐을까. 고맙다고 하며 나왔다. 골목에서 오래 산 사람이라도 원룸 사람이면 평생 가도 이웃과 말 섞을 일은 없을 거다. 부모가 살던 집일지 모른다. 노인이 사정을 아는 걸 보니 주민인 듯했다. 나 역시 뜨내기지만 이웃사람과 얘기한 건 처음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얘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물결이 일었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타인과의 분위기는 감정적으로도 느끼기 마련이다. 언어로 인식되지 않은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 인간의 감정이다. 대화는 관계의 시작이다. 소통은 그다음 단계다. 빨래를 일찍 돌려받아 다행이었다.
뒤편 오르막길은 양지암 등대로 통하는 길인데 가보지 않았다.
맨몸으로 지팡이만 들고 가려다 바람이 차서 차에 돌아와 귀마개와 장갑을 꼈다. 천천히 콘크리트 깔린 가풀막을 올라갔다. 콘크리트 포장길 오른쪽은 경사로 이어진 숲이고 왼편은 바다로 이어지는 짧은 거리다. 양쪽 모두 해송과 측백나무인지 기다랗게 자란 교목이 자란다. 한겨울에도 양치식물의 푸른 잎이 싱싱하다. 네이버 렌즈로 유사 측백나무를 검색하니 헛갈린다. 산책객은 둘씩 짝 지어 나타나더니 앞으로 나간다. 천천히 걷는 건 나밖에 없다.
에움길 돌아 내리막을 가다 허기를 느꼈다.
삶은 계란과 초코파이로 점심을 먹었는데 그새 배가 고팠다. 양지암까지 0.9km 남았다. 고작 오백 미터를 걸었을 뿐이다. 백팩도 없으니 넣어둔 사탕도 없다. 체크무늬 울 양복을 걸쳤을 뿐이다. 외출복은 점퍼와 양복 상의가 전부다. 점퍼 입는 걸 싫어했는데 여기 와선 편하다. 신발은 운동화가 아니라 끈 없는 스니커즈를 신었다. 다음에 오기로 하고 바다가 보이는 정자에 올랐다. 요즘 들어 포기가 빠르고 단념하는 버릇이 생겼다. 허기를 안고 왕복 이 키로를 다녀오는 도중에 저혈당이 올지도 몰라 지레 포기한 거였다. 점심을 든든히 먹거나 백팩에 도시락을 넣고 와야겠다. 바닷바람 때문인지 시계는 언제나 투명하다. 섬의 연육교와 P시의 옆구리가 보였다. 울트라 마린 물살을 헤치고 고깃배가 지나간다. P시에 살다 고향 Y읍으로 이사 간 시인에게선 연락이 없다. 논문이 마무리되면 내려오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바쁜 모양이다.
작은 글씨는 돋보기안경이 없으면 포기한다. 수영할 때도 무리해서 거리를 늘리진 않는다. 할 수 있는 걸 하고 할 수 없다 싶으면 접는다. 뭘 이루려는 욕심도 키우지 않는다. 그게 편하고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다. 수영이나 그림을 배우려는 건 운동과 취미인데 목표는 정하지 않는다. 장거리 수영이 목표라면 목표고 그림은 어둠과 빛의 대비를 사물과 풍경으로 그려보고 싶어서였다. 화려한 수사 뒤에 가려진 현상의 내면을 살펴보고 싶은 거다. 의지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의지 대로 이루어질 리도 없는 게 세상 이치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여기가 무덤 속인지 현실인지 헛갈릴 나이는 멀었지만 잘 산 것 같지는 않았다. 싹이 트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다 열매를 맺는 수목 같은 과정이었다. 초년의 실수와 아픔은 기승전 가족사였고, 사는 내내 발목을 조였다. 어쩌면 내가 섬으로 내려와 홀로 지내는 것도 물리적으로나마 떨어져 있고 싶은 심정인지 모르지만 고통은 가슴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미안함과 반성의 시간이 오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족은 내게 여전히 먼 섬이었다. 가끔 먼저 떠난 사람들 생각이 났는데 인생은 정리라는 것과 원래부터 무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오니 학교 앞 속도위반 딱지가 우편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