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人暮らし(37)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 보는 게 아니다.
책을 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눈이 흐려져 돋보기를 벗고 쉬어야 한다. 책 읽는 시간이 길수록 자주 쉬어야 하는데, 쉬어도 시력이 제자릴 찾으려면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산책을 가는 것도 한두 번이다.
오늘 바다에 나갔더니 어제보다 물결이 더 일었다. 파도는 테트라포트를 찰싹 때리고 물러났다 다시 달려든다. 끈질기게 싸움을 거는 건달 같다. 짠물이 기름처럼 느껴졌다.
오래전 제주도에 갔을 때 처음 두 달은 바닷물이 기름처럼 느껴졌다. 갑갑증이 일었다. 뭍사람이 섬에 갇힌 느낌일까. 탈출하고 싶었지만 갈 데가 없었다. 갑갑증은 두 달이 지나고부터 없어졌다. 바다를 봐도 데면데면한 심정이 되었다.
제주도에서 막일을 하며 반년을 지냈다. 마늘 까는 일을 부업으로 삼으며 사는 동료의 형수는 날 서울 총각이라 불렀는데, 담근 술에 취한 나는 비틀거리며 신산물 골목의 비린내를 피해 하숙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하숙방 벽에 창호지를 붙이고 반야심경을 베껴놓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변변한 쓸모없는 범용(凡庸)한 존재여서 무엇을 하겠다는 일이나 이상은 뚜렷하게 없었다. 삶의 고비마다 주어진 역할을 채우느라 허덕였을 뿐이다. 속(俗)도 비속(非俗)도 아닌 미지근한 열정이 가슴을 온통 휘젓고 있었다.
바람은 차고 산책 나온 사람이나 낚싯꾼은 꽁꽁 싸매고 어깨를 움츠린 채 방파제를 오갔다. 책을 오래 볼 수 없으니 눈도 쉴 겸 텔레비전을 켠다. 삼십 분쯤 멀거니 화면을 본다. 서부의 악당들이 총질을 해댄다. 도시에서 추격전을 벌이며 기관총을 난사한다.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깔린다. 영화는 도무지 폭력을 멈출 줄 모른다. 더 강한 자극이 튀어나와야 점수가 올라간다. 액션이 액션을 까뭉개고 부순다. 자극은 카타르시스를 불러올까. 선한 폭력의 순환은 폭력 자체로 폭력을 부른다. 적극적 불복종의 비폭력 저항은 평화주의자들의 대담집에서나 나올 법하다. 서부의 총잡이들의 세계나 현대의 사냥터나 닮은꼴이다.
막다른 노인이면 도시에서 폐지나 재활용품을 주워 생계비를 버는 것보다 산촌에 들어가 채소를 기르는 게 나을지 모른다. 농촌은 갈수록 빈집이 늘어나는데 막상 도시의 노인들은 도시에 특화되어 시골의 생존 방식에 서툴다. 그들은 게릴라처럼 도시의 그늘에 숨었다가 소리 없이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파르티잔처럼 골목을 빠져나와 화장터로 향한다.
섬이라고는 해도 여긴 원룸 숲의 도시 한가운데다. 주민 등록을 옮겨 왔지만 난 도시 속의 불가시적 존재다. 원룸은 보이지 않는 해자(垓字)로 둘러싼 개인 주거 공간일 뿐 삶이 교차하는 관계를 상실한 지 오래다. 공동체의 '더불어 살기'는 주민센터의 화두일 뿐 각자도생의 엄혹한 생존의 사냥터다. 자다 죽어도 아무도 관심 없는 공간만 실재한다.
산책하면서 마트에 가면서 노인들의 표정을 살폈다. 다른 도시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는데 노인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채색이다. 그들이 보는 나의 얼굴도 마찬가지 일 거다. 목질화된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석고상처럼 변화가 없다. 주름진 살 거죽으로 튀어나온 광대뼈, 움푹 들어간 눈동자는 허공을 바라보거나 땅을 보고 있다. 주위의 물체엔 일체의 호기심이나 관심 없이 살풍경스럽다. 농촌이라면 낯선 얼굴에 한 번쯤 시선을 던지겠지만 여기선 그런 충돌이 없다. 도시에서 스쳐가는 노인들은 그림자인 양 말이 없다. 어쩌다 힐끗 던지는 시선에 약한 빛이 반짝였다가 사그라든다.
젊은 사람들은 현실주의자이면서 현실을 모르거나 냉소를 띠며 외면했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는 사라졌다. 이주자거나 뜨내기는 정주(定住)에 대한 서사가 없으니 당연한 건지 모른다. 유동하는 서사만 존재한다. 나보고 여기에 계속 살라고 강요한다면 아마 그때부터 탈주의 욕망이 기지개를 켤지 모르겠다. 출퇴근으로 바삐 걷는 일정한 보폭 외에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 미래에 대한 낙관도 비관도 아닌 암울한 감성의 소유자는 아닐지라도 한 가지에 빠진 몰입은 시야가 막힌 숙소의 문 앞에서 끝난다.
종교의 종말론은 불확실한 미래의 포자를 퍼뜨리듯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세상의 끝날 신도들은 날개 달린 수레를 타고 낙원으로 가는 다리를 건널 때 손을 흔들어 배웅하리란 마음은 여전하다. 나 정도 따윈 최소한 도덕적 염결성에서 그들의 자격에 해당하지 않는단 걸 알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책을 넘기며 사나흘에 한 번 도서관에 가는 것 외에 외출은 동네 주변의 산책으로 일관했다.
섬 일주를 마친 건 아니지만 섬의 반을 돌아오면서 느낀 건 어디서나 똑같은 풍경의 판박이였다. 포구와 펜션과 횟집, 아무렇게나 펼쳐진 밭, 간간이 나타나는 계단식 논과 겨울에도 푸르댕댕한 색깔을 매단 상록의 나무.
여기다 미술관이나 연주회장을 차렸다면 석 달도 못 가 굶어 죽을 판이다. 개인 미술관은 섬의 서쪽 도시에 몇 군데 있었다. 동백꽃은 만개의 절정을 보일 듯 말 듯하면서 피었다 지는데 보는 사람의 애가 탈 정도로 활짝 핀 모습을 감추는 것 같았다. 섬이나 제주도엔 만개한 동백이 지천이라는데 여기는 소문을 기다리는 사람만 마른풀처럼 무성하다.
이젤과 화판을 주문했다.
살 것도 여축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섬에서의 체재 날짜는 꾸역꾸역 지나간다. 육 개월이든 일 년이든 무심히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 마음은 벌써 조바심을 치고 있다.
이달 초부터 수영장이 문을 닫았고 바이러스 확진자는 솜사탕처럼 부풀기만 한다. 재택 치료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팔십 대 노인이 길에서 죽었다. 그는 코로나 확진자였다. 지인이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심한 독감에 걸린 정도라고 위로하는 사람이나 자신이나 어두운 구름이 깔린다. 거리두기를 풀기도 애매한 정부에선 주판알만 튕기고 있는 모양인데 소상공인에게 돈을 준다는 뉴스가 공허하게 들려온다. 돈으로 목숨을 연장할 수도 불안도 살 순 없다. 인간은 절망 섞인 꿈으로 산다.
백 년 전 스페인 독감이 덮쳤을 때 식민지 조선에서도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흑백사진에는 유럽의 가족과 함께 마스크 쓴 고양이가 있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수많은 국지전을 거치면서 인류의 문명은 죽은 자가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발전을 거듭했지만 바이러스의 저지레에 맥없이 당하고 있다.
섬에 내려오자 일상은 시시하게 꼬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