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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Jun 19. 2022

도꺼 일기

一人暮らし(67)


날이 더워지자 섬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주말이면 섬 전역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바닷길을 달리며 짭조름한 남해의 해풍을 마신다. 그들의 차가 꼬리를 문다. 여름이 되면 평일에도 여행객이 몰린다. 황량한 겨울을 제외하고 섬은 사철 사람을 불러 모은다. 유람선 선착장 주차장은 만원이고 장승포 산책로 아래 갯바위에 낚시를 던지는 사람이 는다. 동네야 갈 곳이라면 능포항, 양지암 등댓길, 벚꽃 산책로, 조각공원 등 바다를 끼고 풍경은 넉넉하게 펼쳐진다. 반년을 살며 수없이 발자국을 찍은 곳이다.


사람이 붐비는 주말엔 외출을 삼가는 편이다. 방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 쓰기로 시간을 보낸다. 섬에 내려오면서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로 했지만 독거 생활에서 TV 또한 동무가 된다. 영화 채널을 본다. 반년 동안 본 영화만 수십 편이다. 영화도 트렌드다. 옛날 영화 중 명작을 주로 보는데 요즘 영화는 SF에 총질하는 게 대부분이다. 주만지, 쥐라기 공원, 해리포터는 동심을 불러일으킨다. 좋아하는 소피아 로렌이 나오는 '해바라기', '안나 카레니나' 등 명작을 보았다.

최근엔 '자연인' 채널을 틀어 놓는다. 자연인처럼 살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그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한다. 병과 마음의 아픔을 딛고 그들이 사는 모습은 대단하단 생각이다. 난 마을의 귀퉁이에서 텃밭을 가꾸며 마을 사람과 어울려 사는 평범한 시골사람을 꿈꾼다. 읍내의 도서관과 수영장에 다니고 스케치 여행을 하는 느끼한 일상을 그린다.


내려와서 알게 된 사람 대부분이 여성이다. 수영장과 화실 사람들인데 거의 여성이다. 내가 쉰다고 바다에 가자고 연락하기 어렵다. 오래 살아 허물없는 관계라면 모르지만 조심스럽다. 그래서 주말엔 방콕이다. 냉장고 반찬통을 하나씩 비우며 집에 돌아갈 날을 센다. 겨울에 한 번은 내려와야 할 입장이다. 거기까지만 역할을 하고 나대로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물론 언제고 들릴 수 있다면 오고 싶은 섬과 사람들이다. 객지 생활을 하면 새로운 관계가 거미줄처럼 늘어난다. 삶의 목적이 관계는 아니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인생을 풍성하게 한다. 소중한 만남이지만 관계가 언제나 좋은 건 아니다.


나이 든 사람은 자식이 잘 되면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다. 불운한 자식은 공개하지 않는다. 자신의 현재가 별 볼일 없을수록 자식을 내세운 만족을 즐긴다. 들어주는 사람이 추임새라도 맞춰주면 봇물 터진 듯 콸콸 청산유수다. 왜 사람은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고 자식이나 남의 얘기를 들먹일까. 자식도 타인이다. 경쟁 사회에서 고단한 일상을 꾸리는 사냥꾼이다. 부모의 칭송은 부담이거나 관심 밖이다.


행복은 지금 무엇을 하며 삶을 즐기는가에 달렸다. 공동체의 포지션이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고 물질의 풍요가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행복은 모두가 만족하는 사회다. 의식주와 질병, 전쟁 걱정 없이 평범한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것의 실현을 통해 생명을 누리는 게 행복이다. 공동선(共同善)은 다른 누군가에겐 최악일 수 있다. 누군가는 동식물, 생태를 아우른다. 그러니 행복은 아예 불가능의 속성을 지닌다. 현실의 재연인 영화에선 국민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인류와 지구의 지속을 위해 총질하고 죽인다. 타협은 없다. 남은 건 폐허와 무덤 속의 어둠뿐이다.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건 나이브한 낭만적 발상이다. 모두 죽음을 맞이할 준비는 하지 않고 채울 수 없는 갈증만 요구한다.


약속이나 한 듯 먼데 사는 동생 둘이 전화했다. 내가 짐 싸는 걸 본 것처럼. 목소리로 통화하는 이는 두 사람이 전부다. 노동에 치이면서 삶을 버티는 사내들이다. 일 년에 한 번은 얼굴을 보고 가끔 통화하니 반가운 얼굴이다. 나와 두 사람의 삶이 영사기 화면 같이 오버랩된다. 생활력 강하고 참을성은 나의 갑절이다. 삐걱대는 삶을 버텨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언제 무슨 얘길 나눠도 듣고 말하는 친구는 흔치 않다. 한때 함께 일하고 술 마셨던 사이였는데 지금은 각지에 흩어져 산다.


짐을 싸다 느낀 건 너무 많은 걸 지닌다는 거다. 없어도 될 것들이 일상의 구석을 차지한다. 다음 행보에는 반만 줄여도 될 것 같다. 화요일 화실 동료들에게 작별을 알리고 수요일 밤 어반 스케치 마지막 강좌를 듣고 (실제 종강은 다음 주다) 원룸에 돌아와 차에 짐을 싣는다. 집에서는 한밤중에 오지 말고 출근한 뒤 낮시간에 도착하라고 한다. 잠을 설치기 때문이다.


 짐을 풀어 정리하고 읍사무소에 전입 신고를 한다. 수영장의 다음 달 자유 이용권을 끊는다. 이튿날부터는 대대적인 살림 버리기다. 방과 뒤란을 뒤져 안 쓰는 물건을 죄다 버린다. 줄이고 줄여 캠핑, 그림, 수영 장비만 남긴다. 이후론 하반기 일을 찾으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해는 점점 뜨거워지고 아무렇지 않은 듯 시간은 흐른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고 한다. 신음소리는 일상의 쾌락에 묻힌다.

아, 섬이여 바다여! 내륙의 진부한 욕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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