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인 Jun 29. 2022

단상

단상


오전 아홉 시에 가서 한 시간 수영한다. 열 시부터는 강습이다. 난 자유 수영이라 강습 전에 나온다. 중급 레인에서 쉬지 않고 핀 수영을 하는데 종종 앞사람에게 막힌다. 미리 봐서 추월하기도 하는데 벽이 가까우면 머리를 들고 전방을 확인한다. 바다나 강에서 오픈 수영할 때 방향을 확인하는 연습이 된다.


 섬사람들과 비교해 내륙 사람의 수력이 짧으니 수준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겠으나, 무식해서 수영장 예절을 지키지 못하는 건 짜증이 난다. 레인을 오갈 때 영법이 서로 다르면 지나칠 때 동작을 좁혀 충돌을 예방하는 건 기본이다. 벽을 차고 출발할 때는 레인을 타고 있는 사람과의 거리를 감안해 출발하는 것도 지켜야 할 상식이다. 뻔히 상대와 부딪칠 걸 알면서 직전에 스타트하면 추월하는 상대방은 피곤하다. 실은 나도 수영장 초보 시절엔 그랬다. 우측통행을 몰랐고 간격을 유지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려주는 이가 있었는데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수영장 벽에 써 붙이면 좋을 텐데. 샤워장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건 예사다. 탈의실까지 물을 끌고 와 바닥이 흥건하다. 관리하는 이에게 노고를 씌우는 행위다. 한 번은 누군가 탈의장 선풍기 위에 젖은 티를 걸쳐 놓았다. 선풍기는 젖은 옷을 머리에 이고 혼자 힘겹게 돈다. 제 집의 선풍기도 아닌데 꼴 사납다. 티를 던지고 바람을 쐬며 몸을 말려 옷을 입었다. 나갈 때 선풍기를 껐다. 잘코사니!


이십 대 때 팔당 댐 아래 덕소에서 친구들과 한강을 건넜다. 강 폭은 백여 미터로 좁고 여울이 많고 물 흐름이 빨라 견지낚시의 포인트였다. 물살을 타고 대각선으로 모자비헤엄(橫泳)과 송장 헤엄(背泳)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건넜다. 어느 늦가을 한탄강을 다시 건넜는데 그때는 제대로 된 영법이 아닌 젊은 치기로 도강(渡江)을 감행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고 사람을 살리는 대상이지만 마을과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가물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고 한다. 해마다 장마가 오면 수마(水魔)가 휩쓴 자리에 남아나는 건 없었다. 섬의 장승포 길가에 추모비가 있다. 1961년에 집중 호우로 산사태가 나서 주민 육십여 명과 경찰 아홉 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난하고 못 살던 시절에 일어난 자연재해의 참극이었다. 그때 부모를 잃은 아이가 환갑을 넘었다. 섬사람들은 당시의 참극을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숨이 가빴다. 동작이 잘못되었는지 물에서 점검했다. 숨을 마시고 코로 뱉는 양이 많은지 숨을 빨리 마시는 건지 확인했다. 문제는 둘 다 해당한다. 가늘게 뱉고 길게 마셔야 했다. 장거리 수영은 글라이딩과 스트록, 호흡이 부드럽게 이어져야 한다.


크롤 영법으로 나아가면서 여러 가지 동작을 머릿속에 가늠한다. 다운 스윕(down swipe)으로 물을 잡는 하이 엘보 캣치 동작부터 풀-피니쉬-리커버리, 팔 꺾기- 글라이딩의 스트록 동작과 4비트 킥의 발차기, 코어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수면 가까이 띄우고 유선형 자세를 유지하며 나아가고 호흡할 때 고개는 세 시 방향을 보되, 한쪽 눈은 물속에 잠긴 상태여야 하는 등 셀 수 없을 정도의 동작이 한꺼번에 조화를 만들어야 완벽한 수영이 된다. 발차기의 물거품은 뽁뽁 소리가 날 정도로 크라운 모양의 물보라를 수면 바로 아래에서 만든다. 물을 잡아당기는 근육은 손바닥과 전완근이 되도록 물감을 느껴야 하고, 광배근을 이용해 당긴다. 어깨의 삼각근을 되도록 쓰지 않으려면 다운 스으로 물을 잡아야 한다. 억지로 빨리 물을 잡으려고 팔을 꺾으면 어깨 삼각근에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코어(아랫배)에 힘을 줘야 유선형 자세를 유지한다. 허리에 힘을 주면 엉덩이와 다리는 가라앉고 물의 저항을 받아 힘만 들고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자세가 된다. 구구절절 말로 늘어놓으면 뭐하나. 실제 풀에서 동작을 연습하는 게 제일 낫다.


영법 중에서 자유형이 가장 일반적이고 어렵다. 자유형을 완벽하게 익히면 다른 영법을 수월하게 익힐 수 있다. 난 장거리 수영이 목표이기 때문에 영법이나 속도엔 욕심을 낼 까닭이 없다. 천천히 오래 가는 게 목표다. 세 시간 이상을 수영해서 십 킬로를 완주한다면 더한 바람은 없다. 수영은 할수록 힘들고 재미있는 운동이다. 당 수치는 절반으로 떨어졌고 배는 편평해졌다. 팔십 킬로를 유지하던 몸무게는 칠십오를 찍더니 칠십사와 칠십삼을 넘본다. 내 키에 칠십 정도면 알맞다. 몸무게가 너무 빠지면 힘쓰는 데 체력이 달린다. 시골 수영장에는 청년보다 장년들이 많다. 매일 물을 튀기며 팔다리를 휘저으니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 자칫하면 나도 오래 사는 건 아닐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처럼 가치와 의미 없이 오래 사는 건 산송장이나 다름없다. 생성과 사멸, 때 되면 사라지는 게 자연의 이치고 생명의 도리다.


몸 풀기가 끝나면 벽을 찬다. 처음엔 일 킬로미터 이십 분을 염두에 두지만 컨디션이 좋으면 삼십 분, 사십 분으로 늘인다. 섬의 수영장에서는 한 번에 육십 분 동안 내리 수영해서 삼 킬로를 완주했으나 여기서는 힘들다. 막아서고 부딪치고 장해물이 수시로 출몰한다. 그래도 매일 가방 들고 수영장으로 가는 기분은 즐겁다. 수영인인 작가 보니 추이(Bonnie Tsui)는 「수영의 이유」에서 '물에 들어가는 행위는 죽음 그 자체에 대한 미약한 저항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죽음뿐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에도 저항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잡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