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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Jul 08. 2022

김희정 시집 「서사시 골령골」

김희정 시집「서사시 골령골」


예술이 삶을 담는 그릇이라면 시인은 삶을 고발하고 예언하는 자다. 미의식은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절망 속에서 빛을, 공허한 희망을 분별하는 의식이다. 문학을 비롯한 회화와 음악, 여타 장르의 예술은 삶이 기반이며 삶에 복무하는 속성을 지닌다. 보편적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삶의 고통을 통과하는 모든 존재를 아우른다.


김희정 시인이 쓴 「서사시 골령골」은 죽은 자의 노래다.

느닷없거나 터무니없는 죽음을 당한 원혼은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세상을 향한, 죽인 자들에 대한 피 맺힌 전언을 멈출 수가 없다.  영매의 역할을 자처한 시인은 망자의 전언을 고발한다. 근대 이후 국가는 공포를 이용해 폭력을 행사했다. 죽음의 공포는 산 자의 일상을 지배하고 그들의 꿈을 포박한다. 살기 위해 권력의 편에 기댄 집단은 국가가 규정한 적을 향해 무차별 혐오를 퍼붓는다. 살인과 폭력은 정의로 포장되어 일상 행위가 된다. 폭력의 칼날을 숨긴 이데올로기는 집단 무의식을 부추겨 타인의 생명과 삶을 간단하게 무화시켰다.


국가의 총탄에 쓰러진 원혼은 떠나지 못하고 이승의 자리를 맴돈다. 아버지와 아들, 딸을 황망히 떠나보낸 가족은 빨갱이의 낙인이 두려워 숨죽인 세월을 살았다. 망자는 국가와 총칼에 화해를 요청하는 것도 용서를 던지는 것도 아니다. 말없이 떠나온 가족에게 미안한 말 한마디, 기억하는 가족의 온기를 불러내 긴 줄무덤의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다.


골령골 학살 사건은 한국 전쟁 도중 대전형무소(현재 대전광역시 중구 목중로 34, 출입국 관리사무소 위치)에서 일어난 학살을 말한다.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6일까지 대한민국 군경[1] 이 대전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좌익사범, 재소자, 미결수, 보도연맹원들 등을 인근 산내면 야산에서 학살한 사건이다. 보도연맹 학살사건, 여순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충청도 지역 일부 보도연맹원과 여순 사건 당시 일부 수감자들이 대전형무소로 이감되었기 때문이다.


학살의 원인은 전쟁 발발 이후 보도연맹원이 북한군과 내통할 우려가 있다고 이승만과 수뇌부들이 성급히 생각해서 그렇다. 상부에서는 보도연맹원을 모조리 붙잡아 처단하라는 지시를 하달하였고, 당시 전국에서 군인이나 경찰이 동네에서 보도연맹원을 소집하여 인근 형무소에 집어넣거나 바로 학살했다.


골령골•첫 번째

'꿈에서 엄마를 보았다. 행복해 보여 마음 놓였다.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룰 줄 알았는데'


'무작정 끌려와 이렇게,

골을 메우는 죽음은 아니다'


'사람이다

나는 사람이다......

집으로 가고 싶다 '


골령골 서른 번째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우리는 학살이라 부른다 국민을 이유도 묻지 않고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국민을 골짜기로 끌고 가 도살하듯 총 춤을 추었다는 것은 악마의 또 다른 이름이다'


'기억은 몸으로 하는 것이다 몸이 있어야 말을 할 수 있다 몸이 있어야 춥고 덥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몸은 아랫목이 그립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지천이다 이곳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꽃바람이 산등성을  골짜기로 골짜기로 밀려오지만 사상의 밧줄에 묶여있다'


'이제, 국가 차례이다'


뜨거운 몸에서 솟구치는 피와 부서져 흩어진 뼈는 칠십여 년의 시간 속에 풍화되어 사라졌다. 그렇다고 사실이 묻히는 것도 기억이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가족은 대를 이어 통한의 상처를 닦고 문지른다. 전국에서 벌어진 광란의 학살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진행되었다. 원혼의 신체가 드러날 때마다 국가는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며 뒤늦은 진혼제를 올리지만 진정한 반성 없는 과오는 되살아날 숙주를 기다릴 뿐이다.


몸이 짐짝처럼 던져졌다 알지도 못한 사람들의 몸과 몸이 포개졌다 우리를 보호해야 할 사람들 손에 '사람'이라는 뜻이 순식간에 찢겨졌다 조금 전만 해도 온기가 돌던 몸이 가축보다 못한 운명이 되었다......(27쪽)


역사학자 한홍구는 「대한민국사 01」에서 '민간인 학살만큼이나 끔찍스러운 일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100만 명가량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 학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모르는 척하거나 정말로 모른 채 반세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같은 하늘 아래 이런 엄청난 일들이 묻혀 있음을 애써 외면한 채, 또는 전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먹고, 마시고, 잠자는 일상의 삶을 살아왔다. 수십만 명의 죽음을 50년 간 외면해온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는 학살 그 자체는 아닐지라도 학살 은폐의 방조자가 됨으로써 사람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광범한 학살이 휩쓸고 지나간 이 땅에서 피해자도, 가해자도, 유가족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전체 구성원은 모두 사람일 수 없었다. 학살이란 바로 이런 것이며, 우리가 다시는 이 땅에 학살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라고 하며


'과연 학살은 한국의 사회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한국사회에 오랜 기간 군사독재가 유지되고, 군사독재가 물러간 뒤에도 반공주의, 보신주의가 횡행하는 것은 다 학살의 무덤 위에 한국사회가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또 가족의 생존과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신가족주의나 살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가치관의 전도 역시 학살이 남긴 상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학살의 진상을 밝히는 작업은 이렇게 한국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지배하고 있는 전도된 가치관의 해부와 청산으로 이어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곳에 줄을 엮어 사람들이 글을 씁니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 외쳤는데 알고 있나 봅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죽어야 했냐!"

얼마나 많은 시간 외쳤는지 모릅니다 국가는 더욱 더 모를 겁니다......(111쪽)


작가 김훈은 '영광과 자존만으로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통과해온 한국 현대사는 성취와 자랑만이 아니라 반성과 고백의 기조 위에서 쓰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고백은 용기의 다른 말이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성장하길 바라는 건 사유 없는 진화다.


일제 강점과 한국 전쟁을 거친 한국 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오늘에 이르렀다. 사회의 가치와 국가의 가치는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는 지배와 복종으로 시민을 다스리며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한다. 국가의 명령은 자유로운 개인의 집합인 공동체를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다. 또한 국가의 규율에 위배되는 대상은 격리하거나 처벌함으로 국가를 존속시킨다. 배제의 폭력이다.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가진 개인을 국가의 잣대를 적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침묵은 동조와 묵인으로 폭력이 된 거였다.


전쟁을 거치면서 사상과 진영의 논리로 무장한 국가는 시민을 솎아내 처형하기 시작했다.  마치 아리안족의 혈통 우수성을 내세워 열등한 시민, 정치범, 장애인, 외국인을 국가의 구성체에서 배제한 나치의 폭력과 닮았다. 외국인 혐오는 유태인에게 화살을 돌려 수많은 유태인이 가스실로 보내졌다. 불가시적 존재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집단의 폭력성은 오늘날 지구 도처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골령골•마흔아홉 번째


이승에서 사십구일이 되면 떠나야 한다 사십구일이 열 번 지나고 그 사십구일이 또 열 번 지나 열 번이 지난 사십구일이 절반을 넘었다 어떤 아픔 안아도 불귀의 객이 되지 않으려면 발길 잡아야 했는데, 갈 수가 없다

......

"사랑한다!"는 말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느껴진다 엄마, 아버지한테 먼저 와 미안하다는 말 못했다 만나면 꼭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아직 나는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엄마, 아버지를 만나 "사랑한다! 그리고 죄송하다!" 말하고 싶다


이제, 국가 차례이다(127쪽)


시인은 힘주어 말한다.

'이제, 국가 차례이다'

정작 무서운 건 지금도 일상의 밑바닥에는 빨갱이의 서슬 퍼런 낙인이 유령처럼 떠돈다는 거다. 국가는 그것을 이용해 권력을 틀어쥐고 무소불의의 폭력을 무시로 행사한다. 소수를 짓밟고 일어선 다수의 평화가 과연 평화일까. 말하지 못하고 숨죽여 눈치 살피는 단합이, 만장일치가 옳은 공동체의 길일까.


전쟁과 학살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변하지 않은 건 우리 안의 사상 검증이다. 사상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이성적, 논리적 성찰이다. 이성이 부재한 감정의 무사유는 항상 반대편에 대한 무차별 폭력이 존재한다. 물신을 신앙으로 숭배하는 사회에 과거에 대한 반성과 치유는 오로지 당한 사람의 몫이 되었다. 최소한의 시늉이 국가의 역할이었다  


현재는 과거의 얼굴이고 미래는 과거의 피와 살을 씹으며 다가온다. 나와 너는 누구이며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얼굴 없는 국가는 무사유 무지성의 집단을 내세워 반인간, 반생명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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