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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Jan 08. 2023

Covid 일지(1)

COvid 일지(1)


COVID 확진 이틀째 아내는 목소리가 변했다며 고통스러운 기색이다. 딸과 나는 매일 저녁 감기약과 타이레놀을 먹고 잔다. 딸아인 증상이 없다고 하고 난 오늘 저녁 머리가 조금 아프다. 내일 CPR검사를 받아야 할까. 자고 나면 증상이 구분될라나. 일터에다 계약기간까지 일하겠다고 말했다. 새로 온 팀장과 담당자는 성가신 일을 덜었다는 듯 좋아한다. 사람 하나 다시 뽑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오후에 퇴근하자마자 시내로 달려가 한 달치 약을 받아왔다. 약물 치료 덕에 증상이 호전됐다고 하니 젊은 의사의 표정이 밝다. 이번에도 정리한 메모를 보여주었다. 금연은 물 건너갔지만 어쨌든 내일 금연약도 받아야 한다. 두었다가 마음이 편할 때 시도할 생각이다. 스트레스 받으며 담배 끊을 생각은 없다.


도서관에 신청한 희망 도서가 도착해 어제 오늘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와 「폭력의 역사」를 읽었다. 현대사를 기점으로 한국전쟁 전후와 독재정권 아래 학살, 의문사당한 증언에 소름 끼친다. 책을 덮은 후에 우울감이 물감처럼 번진다. '대한민국의 지난 시절에 수많은 개인들에게 벌어졌던 죽음들을 접하다 보면 얼얼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너무 많다.' 어떻게 이렇게 무수한 폭력들이 수행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폭력의 궁극적인 주체가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어째서 그토록 자유롭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을까? 그 폭력이 국가 제도와 체제로서 작동했기 때문이다.'(편집자 해제)

전쟁의 광기가 몰고온 학살은 지구촌 곳곳에 송곳 꽂을 틈 없이 널렸다. 우리 산하 구석구석의 역사를 톺아보면 피바람이 비켜간 곳은 한 뼘도 없을 터다.


지인의 안락사 현장을 다녀온 작가는 다녀오고 나서 기독교로 회심(回心)했기에 안락사 반대로 돌아섰다. 유물론적 사고로서 죽음 이후를 철저한 무(無)라고 생각한 데서 신이 주신 생명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을 불인정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튼 것이다. 누가 옳다 그르다는 성부른 판단이다. 다만 작가 개인의 의견을 경청할 뿐이다. 말기 암환자의 시한부 삶, 끊어낼 수 없는 고통 앞에 인간의 선택은 부정되어야만 할까 의문이다. 살아온 날보다 죽을 날이 가까운 현재에 죽음을 생각하는 건 삶을 무탈하게 마무리 하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 심리인데, 내 경우엔 참회와 반성의 짐밖에 남은 게 없다. 고백은 용기를 말함인데 내겐 용서를 구할 용기조차 없어 보인다. 성찰은 자기 만족을 위한 구실에 불과하고 깨달음이란 어둠을 떠도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를 저주한 적도 있었다. 숨을 쉬고 살아 있는 날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뻔뻔하게 잡문을 끼적이고 현학(衒學)을 앞세웠다. 이 정도면 가히 구제불능 아닌가.


인간은 불완전함에 기대어 있다. 태생이 우연투성이에다 삶의 과정도 우연의 연속이다. 부정성, 불완전성은 실존의 바닥일지 모른다. 본질조차 헤아리지 못하는데 실존에 진력을 다하기에도 모자란다. 생은 욕망과 불안으로부터 시작한다. 공교롭게 인간은 자만과 자존의 동물이라 언제나 자신의 생각과 제도가 최상의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탄탄한 이념과 사회 제도는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하고 새롭게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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