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옥남 1

by 소인

탁옥남(卓玉男)①


선대의 집안 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흥미롭다.

역사의 굽이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당시의 상황과 조건에서 가졌던 꿈과 이상, 가문의 부침과 함께 명멸했던 가족사.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은 선대의 역사를 과장과 포장으로 꾸며 미화하는 점이다. 부끄러운 과거는 숨기고 남의 공적을 끌어다 윤색하는 행위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역적이 공신으로,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로 바뀌기도 한다. 내겐 똑별난 뿌리 의식이 없다. 가문의 영광과 치욕의 역사를 들추어 밝힐 생각도 없다. 다만 근대사의 격랑을 헤쳐온 사람들의 정신과 호흡을 객관적 시선에서 일별하고 싶은 마음이다.


할머니의 고향은 강원도 횡성이다. 강원도 일대 통틀어 이름난 부자였는데 처음부터 부자는 아니었다. 할머니의 아버지, 내 아버지의 외조부는 원주 중앙시장 통에서 한복의 부속을 만드는 어머니의 일을 돕던 총각이었다. 고대 잉카인들의 허리띠 츄피와 비슷한 여자들 한복 속에 은장식 달린 속치마가 내려오지 않도록 차는 허리띠 만드는 일이었는데, 성실하게 가게일 돕는 총각을 할머니의 외조부께서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시집올 때 아버지의 외할머니는 패물과 함께 원주 횡성 일대의 드넓은 논을 함께 데리고 오셨던 거였다.

게다가 아버지의 외조부는 타고난 성실함으로 결혼 후 동네 개울가에 방축을 쌓기 시작했다. 그것도 장비나 인부 없이 새끼로 만든 삼태기 하나로 말이다. 새벽별 보고 나가서 밤이슬 적시고 들어왔으니 시작한 지 십수 년만에 개울가 자갈밭이 기름진 논으로 바뀌어 갔다. 정조(正祖) 사후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 그리고 1862년(철종13) 진주민란 이후 전국 각처의 농민 항쟁으로 나라가 혼란스런 판에 제대로된 토지법이 시행될 리 없었다. 스스로 몸 놀려 개간한 땅은 자기 것 되는 세상이었다. 더군다나 왕버들 줄지어 서 있던 횡성천은 해마다 여름이면 낮은 흙둑을타고 황톳물이 넘어 물난리로 막심한 피해를 입던 무렵이었다. 홍수도 막아주고 너른 옥답도 생긴 일거양득의 수확인 셈이었다. 아버지의 외조부, 할머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횡성읍에서는 성대한 노제를 베풀어 생전의 공덕을 기리기도 했다고 한다. 구한말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은 한 집안의 얘기다.

윤심덕과의 재회

맏이인 할머니는 원주에서 중학교 마치고 평양 정의여고로 유학 갔다. 그러나 그곳의 하숙집에서 맨날 조밥만 주는 통에 할아버지는 하숙비 올려주며 쌀밥을 먹이고자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할머니의 아버지는 다시 할머니를 경성의 숙명여고로 보낸다. 경성에서 서양음악에 빠진 청년, 나의 할아버지를 만나 혼인하게 된다.
할머니가 평양의 정의여고를 다닐 즈음 갈품 물결 치는 부벽루 아래 대동강물 위에 가을 물든 돌단풍 떠내려갈 무렵 평양 시내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일제 강점 이후 서양의 선교사와 함께 신문물이 다투어 발 들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의 우에노(上野)음악학교 성악과의 유학에서 돌아온 윤심덕(1897~1926)이 무대에 올라 가곡을 독창했는데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로 '사의 찬미'를 부르고 현해탄에서 애인와 함께 몸 던진 비극의 여주인공 그 윤심덕이었다. 윤심덕이 1923년 귀국해서 가난한 형편과 풀리지 않던 음악에의 열정으로 어렵던 시절 잠시 할머니의 고향인 횡성집에 머문 적 있었다. 경성여자보통학교 나와 강원도 원주에서 일여 년 교편 잡기도 했던 윤심덕은 맏이인 할머니와 동생들의 가정교사를 하며 서너 달 기숙한 인연이 있었던 거였다. 할머니는 음악회 끝나고 무대 뒤의 대기실에서 윤심덕과 반갑게 재회했다. 당시 윤심덕은 함경도의 재력가와 혼담이 오가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마뜩치 않은 눈치였다고 했다.
삼년 후 1926년 8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윤심덕이 전라도 갑부였던 동갑내기 유부남 김우진과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관부연락선에서 현해탄의 격랑 속으로 몸을 던져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두 사람은 일본 유학 시절 순례극단 동우회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싹 틔웠다고 한다. 그러나 어긋난 시대를 만난 두 사람의 사랑은 함께 생을 떠나는 것으로 비극적 최후를 마쳤다. 할머니는 윤심덕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와 시원한 몸매에 사슴처럼 깊은 눈망울 가진 그녀의 젊은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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